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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12

[창작단편] 방문객 방문객 그날은 상당히 무료한 일요일 오후였다고 생각한다. 아침에 잠에서 깨어나자마자 무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의 인생에서 얼마나 더 이렇게 따분하고 무료한 일요일을 맞게 되는 걸까? 그런 따분한 생각을 하면서 나는 자리에 일어났고 베란다에 나가 나와는 아무 상관없는 날씨를 확인했다. 화창했다. 만약 내게 가족이 있고, 또는 사랑하는 연인이 있었다면 기를 쓰고 밖을 나가려고 했을 것이다. 역사적 사명까지 운운하면서. 하지만 그런 것은 없었다. 지긋지긋한 따분함 외에는. 어쨌든 뭐라도 해야겠기에 그동안 일 때문에 하지 못했던 빨래를 하고 제일 가까운 슈퍼로 가 떡볶이 재료를 샀다. 떡볶이? 그저 불현듯 떡볶이를 먹고 싶어서였는데 선택은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몸을 좀 움직이니 그럭저럭 .. 2017. 1. 2.
[창작 단편] 사랑의 식욕 [단편] 사랑의 식욕 가든파티는 따분했다. 애초부터 파티초대라는 것을 받았을 때부터 뭐 그리 기대를 했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한 시간쯤 지나자 나는 도대체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것인가 하는 괜한 자괴감마저 들기 시작했다. 한 가지 그나마 위안이 되는 것은 억지로 사람들과 대화를 하고 있지 않아도 분위기가 그다지 어색하지는 않다는 것, 그리고 해질 무렵 정원의 미묘한 빛깔로 그럭저럭 주위의 풍경이 편안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다행스러운 건 음식이 비교적 쓸만하게 맛있다는 거였다. 뷔페식으로 차려져 있는 음식은 종류도 매우 다양했고 실력 있는 요리사가 조리를 했는지 그 맛도 상당히 흥미로웠다. 입맛이 까다로운 내 식성에도 거부감이 없었으니 말이다. 먹을 것도 먹을 만큼 먹었으니 슬슬 꺼져줘야겠다고 생각하며 몸을.. 2016. 12. 26.
[창작단편소설] 킬러 (Killer) 고즈넉한 고궁에는 새하얀 벚꽃 잎들이 눈송이처럼 휘날리고 있었다. 그 아래로 놓여있는 벤치에 한 60대 정도로 보이는 할머니가 조용히 책을 읽고 있었다. 선선한 바람과 따사로운 햇살사이로 간간히 산책을 나온 사람들, 애견을 데리고 나온 사람들, 다정한 연인들 등이 지나치곤 했지만 거의 소음이라는 게 없을 정도로 주위는 조용했다. 그때 어디선가 굴러온 축구공 크기의 노란색 고무공이 할머니의 발쪽으로 와서 ‘툭’ 부딪쳤다. 책을 보고 있던 할머니는 시선을 공쪽으로 두다가 고개를 들어 공이 굴러온 방향을 바라봤다. 그리고 그녀의 앞에는 건장한 체격의 짙은 선글라스를 낀 사내 하나가 우두커니 서 있었다. 할머니는 웃으며 책을 덮고는 그에게 물었다. “당신이 케이?” “그렇소.” 사내는 사무적인 얼굴로 벤치에 걸.. 2011. 1. 18.
[창작단편] 살의의 시대 이제 온 세상의 사람들은 죽임을 당했다. 피가 끓는 것처럼 살의에 몸부림치던 사람들도 이제 여섯 명만이 남아있다. 그 바이러스가 어디에서 시작된 것인지는 나도 알지 못한다. 다만, 바이러스에 감염된 우리들은 끊임없이 살의에 몸을 맡겨야 했고 타인을 죽임으로써 그 악독한 욕망의 끝을 보기를 원했다. 그 후라는 것은 아무도 생각하지 않았다. 오로지 살인! 어떻게 해서든 타인을 죽임으로써 자신들은 안심할 수 있는 끔찍한 시기인 것이다. 어쩔 수가 없었다. 타인들의 존재는 자신들에게 위협의 존재였다. 언제 어디서 그들은 살인자로 돌변해 자신들의 숨통을 끊어 놓을지 몰랐고 언제 자신들을 쓰레기를 짓밟듯이 눌러버릴지 알 수 없는 불안감은 오로지 내가 살기 위해서는 타인의 존재를 없애버려야 한다는 강박감으로 변했다... 2011. 1. 10.
[창작단편] 양 세는 소녀 “엄마, 잠이 안와....” 소곤거리듯 들리는 목소리에 잠에 빠져 있던 화연은 깜짝 놀라며 눈을 떴다. 불이 꺼진 방안의 어둠 속에서 까만 망막에 비친 두개의 빛이 그녀를 쳐다보고 있었다. 멍해있던 화연은 조금 지나서야 침대 옆에 서있는 조그마한 실루엣이 채린이임을 알아챌 수가 있었다. 화연은 자신의 치렁거리는 머리를 뒤로 넘기며 상체를 일으켰다. “채린아, 왜 그래?” “잠이 오지 않아. 엄마.....” 채린이가 조그만 목소리로 힘없이 말하자 화연은 가만히 아이를 내려다보다가 천천히 한숨을 내쉬었다. “오늘 낮에 잠잤었구나?” 채린이는 빼꼼이 화연을 쳐다보며 고개를 저었다. “음, 그럼 왜 잠이 안 올까?” 화연의 표정이 부드러워지면서 채린이를 가만히 쳐다봤다. 채린이는 발가락을 꼼지락거리며 뭔가 망설.. 2011. 1. 8.
[자작단편] 도시의 섬, 609호 (※아무 생각 없이 그저 생각나는 대로 몇 십분에 써 갈긴 글. 아마도 스스로 자학을 하고 있던 것은 아니었을까. 그때에,,,) ① 길거리에서 몬로를 만나다. 어느 우중충한 오후. 길을 걸어가고 있었다. 그날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아니 무슨 일 때문에 그곳을 걸어가고 있었는지.... 기억 없음. 맞은편에서 머리가 - 더 정확히는 머리카락이 - 금색으로 물들어있는 여자.... 음, 17세쯤의 소녀다. 걸어오고 있다. 목욕탕을 다녀오는 듯 파란 바구니 통에 수건과 싸구려 샴푸와 때수건, 보통은 이태리타월이라고 부르는, 이태리에는 없지만. 그런 잡동사니들을 들고는 나와 가까워지고 있었다. 내가 빤히 그녀의 얼굴을 보고 있자 그 애도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두 사람의 거리는 점차로 가까워졌고 근접해지자 그 애는.. 2010. 12.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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