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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작소설13

[창작 연재 소설] 길에서 만나다 - #8~#12 8 경찰서를 나와 지하철에 올라타 나는 잠시 물끄러미 사람들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사람들은 웃고, 미소 짓고, 편안하게 졸고 있었고, 많은 사람들이 문이 열리면 타고 내리며 자신들의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그들은 모두 행복해 보였다. 누군가 모르는 사람이 살해를 당했다는 사실을 그들은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었다. 나 역시 알지 못하는 사람이지만 묘하게도 그 채화연이라는 여자가 살해당해서 죽었다는 말은 내게 왠지 모를 커다란 충격을 주었다. 채화연.... 채화연... 아무리 생각해도 그 어떤 기억의 흔적에도 떠오르지 않는 이름이다. 그런데 어떻게 그녀는 전혀 알지도 못하는 나 같은 사람의 전화번호를 자신의 일기장에 적어 놓았던 것일까. 그리고 나에게 왜 연락을 하려고 했던 것일까. 혹시 그녀는 내 아는.. 2018. 5. 25.
[창작 연재 소설] 길에서 만나다 - #5~#7 5 - 생각이 많은 사람.... 누군가 내게로 속삭이는 그 목소리에 나는 잠에서 깨어났다. 그러나 주위에는 아무도 없었다. 꿈을 꿨었나. 뭔가 묵직한 것이 머리에 있는 것은 같은데 잘 끄집어내 지지가 않았다. 신경들이 마구 엉켜있는 것 같았다. 습관대로 시계를 보았다. 오전 10시 14분쯤. 햇빛은 쨍쨍한 게 하루가 무더울 조짐이 들었다. 휴대폰이 울렸다. 아무 생각 없이 본능적으로 손이 가서 받았다. “여보세요?” “....” “여보세요?” 저쪽에선 아무런 얘기가 없었다. 다만 뭔가 혼선이 된 것 같이 요란한 소음만이 어렴풋이 들려왔다. “여보세요? 말씀하세요....” 침묵. 난 힘없이 끊으려는데 다급한 목소리가 휴대폰에서 들렸다. - 여보세요? 여보세요? 나는 다시 휴대폰을 귀로 가져갔다. “예, 말.. 2018. 5. 17.
[창작 연재 소설] 길에서 만나다 - #2~#4 2 한 낮에 누군가가 초인종을 눌렀다. 난 처음으로 초인종 소리를 듣고는 이 낯선 상황에 잠시 우두커니 있었다. 초인종은 신경질적인 낌새를 풍기며 다시 여러 번 울리고 있었다. 나는 문을 열었다. 문 앞에는 처음 보는 낯선 사내가 두툼한 노란 서류철을 펼쳐 들고 무료한 표정으로 서있었다. “오승민씨 댁이죠? 본인이세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내 이름은 아니었지만. “이사 날짜는 언제로 정하셨나요?” 사내는 볼펜을 누르고 서류에 기재할 준비를 하면서 물었다. 그런 것을 생각도 못하다가 갑작스레 질문을 당하니 난감했다. “이사... 요?” 내가 되묻자 사내는 오히려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나를 쳐다봤다. “네. 이사를 안 하시니까 저희가 지금 철거를 못하고 있잖습니까? 아직 기한까지 20일 정도 남기는 했.. 2018. 5. 9.
[창작단편] 방문객 방문객 그날은 상당히 무료한 일요일 오후였다고 생각한다. 아침에 잠에서 깨어나자마자 무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의 인생에서 얼마나 더 이렇게 따분하고 무료한 일요일을 맞게 되는 걸까? 그런 따분한 생각을 하면서 나는 자리에 일어났고 베란다에 나가 나와는 아무 상관없는 날씨를 확인했다. 화창했다. 만약 내게 가족이 있고, 또는 사랑하는 연인이 있었다면 기를 쓰고 밖을 나가려고 했을 것이다. 역사적 사명까지 운운하면서. 하지만 그런 것은 없었다. 지긋지긋한 따분함 외에는. 어쨌든 뭐라도 해야겠기에 그동안 일 때문에 하지 못했던 빨래를 하고 제일 가까운 슈퍼로 가 떡볶이 재료를 샀다. 떡볶이? 그저 불현듯 떡볶이를 먹고 싶어서였는데 선택은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몸을 좀 움직이니 그럭저럭 .. 2017. 1. 2.
[창작 단편] 사랑의 식욕 [단편] 사랑의 식욕 가든파티는 따분했다. 애초부터 파티초대라는 것을 받았을 때부터 뭐 그리 기대를 했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한 시간쯤 지나자 나는 도대체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것인가 하는 괜한 자괴감마저 들기 시작했다. 한 가지 그나마 위안이 되는 것은 억지로 사람들과 대화를 하고 있지 않아도 분위기가 그다지 어색하지는 않다는 것, 그리고 해질 무렵 정원의 미묘한 빛깔로 그럭저럭 주위의 풍경이 편안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다행스러운 건 음식이 비교적 쓸만하게 맛있다는 거였다. 뷔페식으로 차려져 있는 음식은 종류도 매우 다양했고 실력 있는 요리사가 조리를 했는지 그 맛도 상당히 흥미로웠다. 입맛이 까다로운 내 식성에도 거부감이 없었으니 말이다. 먹을 것도 먹을 만큼 먹었으니 슬슬 꺼져줘야겠다고 생각하며 몸을.. 2016. 12. 26.
[창작단편소설] 킬러 (Killer) 고즈넉한 고궁에는 새하얀 벚꽃 잎들이 눈송이처럼 휘날리고 있었다. 그 아래로 놓여있는 벤치에 한 60대 정도로 보이는 할머니가 조용히 책을 읽고 있었다. 선선한 바람과 따사로운 햇살사이로 간간히 산책을 나온 사람들, 애견을 데리고 나온 사람들, 다정한 연인들 등이 지나치곤 했지만 거의 소음이라는 게 없을 정도로 주위는 조용했다. 그때 어디선가 굴러온 축구공 크기의 노란색 고무공이 할머니의 발쪽으로 와서 ‘툭’ 부딪쳤다. 책을 보고 있던 할머니는 시선을 공쪽으로 두다가 고개를 들어 공이 굴러온 방향을 바라봤다. 그리고 그녀의 앞에는 건장한 체격의 짙은 선글라스를 낀 사내 하나가 우두커니 서 있었다. 할머니는 웃으며 책을 덮고는 그에게 물었다. “당신이 케이?” “그렇소.” 사내는 사무적인 얼굴로 벤치에 걸.. 2011. 1.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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