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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로운 영화관

캐스트 어웨이(Cast Away , 2000) - 사람이 희망을 가져야 하는 이유

by 멀티공작소 2011. 9.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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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편의 영화를 볼 때에 사람들은 여러 가지 느낌을 갖는다. 그리고 영화를 좋아하거나 즐겨 보는 이유도 참 다양하다. 단순히 시간을 때우고 가볍게 웃고, 즐기고 싶어서 보기도 하고, 어떤 때는 현재 자신이 처한 주위 상황이나 감정에 이입하며 영화가 전달하는 감성이나 정서, 사건 등이 미묘하게 겹쳐져 영화가 전달하는 요소들에 더욱 몰입하고 공감을 하게 되는 카타르시스를 느끼기도 한다.

어느 것이든 그렇게 영화라는 매체는 보는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치는 요소들이 존재한다.

 

최근에 개인적으로 힘든 상황들이 많아서 굉장히 심적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그리고 삶이라는 것에 때때로 회의가 들기도 한다. 사람의 인생은 늘 이렇게 힘들어야 하는 것일까. 그런 생각이 불쑥 머리를 내밀고 한다. 그럴 때 모든 것을 던져 버리고 사람이 아무도 없는 곳으로 훌쩍 떠나 버리고 싶은 그런 생각을 할 때가 있다. 그리고 생각한다.

과연 인간에게 희망이라는 것은 정말 존재하고, 믿을 만한 것일까

 

정말 사람이 아무도 없는 무인도에 가서 혼자 지내고 싶다는 그런 생각. 누구나 한번쯤 그런 것을 생각하지 않을까? 그런데 말이다, 그렇게 생각대로 홀로 무인도로 뚝 떨어져 버리면 그런 바램이 이루어 진 것에 만족하게 될까. 아마도 만 하루가 지나기도 전에 당면하게 되는 수많은 문제들이 쏟아져 내리기 시작할 것이다. 바로 이 영화 <캐스트 어웨이>의 주인공 '' 이 처한 그대로 말이다.

 

 

로버트 저메키스 감독, 그리고 톰 행크스, 헬렌 헌트가 출연한 <캐스트 어웨이>는 무인도 표류기다. 로빈슨 크루소류의 이야기다. 그런데 이 영화는 그렇게 무인도로 홀로 떨어진 사내의 무인도 적응기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희망을 놓지 않으려는 한 사내의 고독한 투쟁기로 보는 것이 좋을 듯 하다.

 

그리고 이 영화는 정말 '리얼' 무인도 표류기라고 불릴만하다.

비행기가 추락해 무인도에서 홀로 되어 버린 현대인 '' 의 동선을 쭉 따라 가며 보고 있으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라는 곳이 얼마나 나를 위해 존재하고 있는 곳인지 역으로 실감하게 된다.

그렇게 현실적인 인간의 악전고투를 그리는 이 영화에서 가장 강조하고 있는 것은 '사회적 동물로서의 인간' 의 모습일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본의 아니게 상실했을 때의 인간의 고통.

 

영화 속 '' 이 가장 고통을 느끼는 부분은 그것이다. 무인도에 타인은 없고 오로지 자신 뿐인 철저한 고독감. 그에게는 그러한 심적 고통이 이가 아파 치과에 갈 수 없어 스스로 이를 뽑아 내고, 식량을 구하기 위해 발을 다쳐가며 물고기를 잡는 일보다 더욱 고통스러운 것이다.

자신이 속해 있던 그 사회 속에는 사랑하는 여인이 있고 일하는 직장의 동료들이 있으며 늘 사람들과의 부대낌이 있지만 무인도에서는 오로지 혼자일 뿐이다. 이 사람을 향한 그리움으로 인한 고독과 적막을 견디지 못해 ''은 배구공에 자신의 피로 눈코입을 그리고 '윌슨' 라는 이름까지 붙이며 스스로 친구를 만드는 것이다.

하지만 그로써도 다 채워지지 못하는 외로움에 그는 극단적인 행동까지 벌이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보고 있자면 이 영화에는 '사람(또는 사랑?)이 희망' 이다는 문구를 저절로 떠 올리게 한다.

결국 이러한 희망에 대한 욕망으로 척은 무인도를 벗어날 방법을 잡게 되고 본의 아니게 배구공 '윌슨' 와 작별까지 하는 아픔을 겪으며 다시 사람들의 사회로 귀환할 수 있게 된다.

 

 

희망이라는 마음은 사람을 움직이게 하는 강한 원동력이다. 어쩌면 그것은 타인들의 속에 있던, 아니면 그렇지 않던 분명한 것이리라. 그리고 사람이 사회를 벗어나 온전히 살아 갈 수 없는 존재라면 타인과의 부대낌에 있어서도 필요한 요소일 것이다.

<캐스트 어웨이>는 무인도에 홀로 표류한 한 남자의 이야기로 그렇게 사람의 사회와 사람의 희망이라는 것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는 것이다.

 

 

희망이라는 테마에서 본다면 <캐스트 어웨이>는 영화 <쇼생크 탈출>과 유사한 느낌을 갖는다. <쇼생크..>앤디는 쇼생크 감옥이라는 고립된 공간에 갇혀 그곳에 나가려는 희망을 놓지 않고 끝내 이루어 낸다. <캐스트…>역시 무인도라는 고립된 공간에 갇혀 그 역시 그곳을 나갈 수 있다는 희망을 놓지 않고 파도를 넘어서 마침내 이루어 낸다.

 

 



 그들이 고립된 세계에서 빠져 나갈 수 있었던 원동력이 바로 희망이라 불리는 인간의 마음인 것이다. 그래서 인간에게 있어서 희망이라는 존재는 늘 스스로의 고립된 세계와 철저하게 떨어져 내린 나락에서 스스로를 건져 낼 수 있는 힘이 되어 준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은 늘 희망을 품어야 하는, 또한 희망을 품게 되는 존재인 것이다.

 

하지만 아이러니 하게 인간을 가장 잘 배신하는 것도 희망이라는 것이다.

영화 속의 척은 자신이 품은 강렬한 희망을 이루어 내지만 현실의 우리는 마음에 품었던 많은 희망들로부터 솔직히 배신을 당할 때가 더 많다. 그런 것으로 절망하고 힘이 들 때도 있겠지만 그렇다고 희망을 버리는 순간 아마도 영원히 아무도 없는 무인도와 사방이 둘러싸인 벽에서 결코 빠져 나올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인간은 희망을 가져야 한다.


 비록 앞으로도 많은 배신을 겪을지언정 우리는 그것으로 삶의 계속되는 원동력을 얻을 수 있을테니 말이다. 그리고 실망할 필요는 없다. 분명히 희망은 배신을 밥먹듯 하기도 하지만 언젠가 그 보상 또한 풍성히 준다는 것을. 물론 거기엔 떗목을 만들고, 파도를 넘고, 폭풍우를 넘어서야 하는 강인한 노력이 따라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하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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