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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로운 영화관

현실의 지옥인가, 사후의 지옥인가? 당신의 선택은? - <지옥소녀(地獄少女)>

by 멀티공작소 2009. 12.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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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은 고통의 세계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살고 있는 여러 고통과 악, 이를테면 환경오염, 전쟁, 질병, 빈곤, 폭력, 마약 등이 넘치는 이 세계는 바로 살아있는 지옥 아닌가....”

언젠가 지옥에 대한 자료를 뒤지던 중에 어느 책에서 봤던 문구.


기괴한 매력의 소녀 ‘엔마 아이’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일본 애니메이션  <지옥소녀>는 매 회마다 등장하는 각각의 다른 인물들에게 힘든 딜레마를 안겨준다.

현실의 지옥을 택할 것인가, 아니면 사후의 지옥을 택할 것인가....

이것이 결국 <지옥소녀> 의 모든 내용을 관통하는 화두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매 회 다른 인물의 다른 상황을 다루고 있지만 에피소드마다 이야기 구조는 엇 비슷하다.
각 에피소드의 등장하는 인물들은 어떤 상황과 이유로 인해 또 다른 인물들에게 원한을 갖게 된다. 그러면 그들은 소문으로 들은 인터넷을 통해 지옥통신이라는 곳에 접속을 하고 (자정에, 꼭 사무치는 원한을 가진 자라야 접속이 이루어진다! 아마도 고감도 원한 센서라도 달린 것일까...) 그곳에 원한을 갖게 된 대상의 이름을 적는다.
그러면 '펑!' 하는 소리와 함께 연기가 자욱 해지며 나타나... 는 것은 아니고, 홀연히! 지옥 소녀 ‘엔마 아이’ 가 나타나 나른한 음성으로 매뉴얼을 알려주며 짚 인형을 건네주는데 그 인형에 감겨있는 붉은 실을 풀게 되면 지옥소녀와 이른바 계약을 맺게 되는 것이다.
 
계약의 내용은 이렇다.


“네가 정말로 원한을 풀고 싶다면 그 붉은 실을 풀면 돼. 그럼 나와 정식으로 계약을 맺게 돼. 원한의 대상은 바로 지옥으로 끌려가게 될 거야. 단, 원한을 풀면 네 자신도 댓가를 지불해야 해.”

“댓가?”

“남을 저주 할 때는 자신의 무덤도 함께 파야 해. 계약을 하면 네 혼도 지옥에 떨어져.... 뭐, 죽은 다음의 이야기지만....”



그렇다. 세상에 공짜는 없는 법. 사후의 지옥을 걸고 현실에서 원한으로 겪고 있는 지옥을 벗어나게 해주겠다는 것.

짚인형을 눈 앞에 두고 대부분의 인물들은 갈등을 하게 된다. 현실의 지옥과 사후의 지옥 사이에서.
그리고 그들의 선택은...? 거의 모두가 결국은 붉은 실을 풀게 된다...
아득하게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는 사후의 지옥을 두려워 하는 것 보다는 당장의 눈 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실의 지옥이 그들에게는 더욱 참을 수 없는 까닭이다. 






학교, 직장, 가족, 사회 안에서, 타인과 살아가며 부딪치는 많은 인간 관계 속에서 감정과 감정이 얽히고, 욕망이 얽히고, 이기심이 얽히면서 사람들은 원한을 갖게(사게)되고 결국은 계속해서 지옥소녀를 찾는 것이다.


이런 유사한 에피소드들을 계속해 보여 주는 <지옥소녀>가 애니메이션임에도 불구하고 굉장히 사실적으로 와 닿는 것은 여러 가지 인간 사회의 현실 문제들을 리얼하게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
즉, 에피소드마다 등장하는 ‘원한’ 을 갖게 되는 상황들이 어쩐지 나에게도 있었던, 혹은 있을 수도 있을 법한 이야기들을 들려 주고 있다는 것이다.
이 애니가 갖는 재미는 바로 그런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상황의 리얼리티가 스며들어 있다는 데에 있고 매회의 에피소드가 비슷한 구조이면서도 절묘하게 재미를 만들어 내는 것은 그 리얼리티에서 오는 감정이입과, 각각의 인물, 각각의 상황이 다양한 스펙트럼으로 다가 온다는 장점 때문이다.


저마다의 절박한 상황, 어쩔 수 없는 운명같은 아이러니한 상황들....
그러한 이야기의 디테일들이 섬세하게 짜여 있어서 <지옥소녀>는 애니메이션이면서도 지극히 복잡, 미묘한 사안들을 풀어내고 보는 사람들의 생각을 요구하고 있다. 

거기에 더해  이 애니는 굉장히 많은 장르적 요소들을 수용해 풍부한 재미를 준다.

주인공 엔마 아이를 둘러싼 환경들의 미묘한 분위기는 미스테릭하고, 지옥으로 끌려가는 인물들에게 가해지는 형벌은 잔혹하며 공포스럽다. 에피소드들 속에는 많은 사회성 드라마의 요소들이 풍겨 나오고, 어떤  때에는 애절함(또는 애잔함)이 동시에 흐른다...
이러한 다양한 장치들을 풍부하게 섞어 놓아 <지옥소녀>는 애니메이션임에도 불구하고 버라이어티한 면모를 보여준다.





작화 측면에서는 개인적으로 조금 아쉬움이 남는다.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선호도이지만)
이야기의 성격이나 톤에 걸맞게 조금 더 극화체로 다가간 섬세한 그림이 되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하지만 엔마아이 캐릭터는 그 분위기에 어울리게 미스터리한 분위기가 잘 느껴져서 목소리와 함께 중추적 역활을 하기에 충분한 듯 싶다.
단조롭고 건조한 톤의 목소리로 엔마아이가 말할 때마다 어쩐지 스산한 느낌이 드니 말이다.



“나머지는 네 결정에 달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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