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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로운 영화관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嫌われ松子の一生, 2006)-그녀는 무엇을 주고 갔는가?

by 멀티공작소 2009. 11.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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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가치는 말이야.... 다른 사람에게 뭘 받았는지로 정해지는 게 아냐. 다른 사람에게... 뭘 줬는지로 정해지는 거야..."

 
영화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은 제목 그대로 마츠코라는 한 여성의 삶을 연대기순으로 보여준다.

카메라가 판타지와 현실을 넘나들며 그녀의 삶의 궤적을 쫓는 동안 스크린에 비치는 모습을 지켜보는 사람은 참으로 불편한 심정을 감출 수가 없다.

'어찌 저렇게 삶이 곤고하고, 꼬이며, 무기력 할 수 있을까....?"

그런데 그렇게 객관적으로 보여지던 한 여자의 삶은 실상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이 일상의 고통에서 느끼는 심정적인 부분과 겹치고 있으며 그것이 몹시도 불편한 마음을 갖게 만든 다는 것이다...

마츠코의 삶을 힘겹게 만드는 요인은 어디에 있는가?

그것은 바로 '가족, 친구, 사랑' 으로 요약 할 수 있는 바로 주변 사람들과 맞닿아 있을 것이다. 개인의 인생에서 이 세가지는 일생의 순간 순간을 결정짓는 결정적 요소가 될 수 있다.

 

드라마이기에 작위성의 냄새를 풍기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마츠코의 일생은 처음부터 심하게 요동친다. 그녀는 가족을, 동료들을, 사랑하는 사람을 어떻게 해서든 붙들고 싶어하지만 항상 그들로부터 밀려나고 고통의 나락으로 추락한다. 그리고 그 종말은 결국 비극적이며, 어이없는 죽음이다.

 

하지만 영화는 그렇게 그녀를 괴롭히면서도 한편으론 그녀에 대한 배려를 아끼지 않는다.

이대로 현실에만 발을 붙여 끝까지 마츠코를 괴롭혔다면 상당히 짜증스런 영화가 될 수도 있었겠지만 판타지적인 요소를 도입하여 그녀의 내면을 펼쳐 보인다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뮤지컬 형식. 그리고 동화적인 CG 비주얼(미장센)이다.

 

 

뮤지컬 형식을 이용한 캐릭터 내면의 판타지 구현(너무도 현실과 대조되는) 은 예전에 영화 '어둠 속의 댄서'에서도 보였었던 형식으로 극명한 은유다. 비극적인 영화속 현실의 삶은 캐릭터가 꿈꾸는 화려한 색채에 미장센을 보여주는 경쾌한 뮤지컬로 충돌하고 현실의 비극을 더욱 비극적으로 느끼게 만든다.

 

 

이 영화가 거기서 한발 더 디딘 것은 그 경계선조차 영화속에서 모호하게 보이도록 허물어 버렸다는 점.
거기에 더해 일본 영화 특유의 만화적 감수성을 빼놓을 수 없다. 형식과 내용, 거기에 캐릭터까지 모든 부분에서 그 강력한 만화적 요소들은 영화 전체를 덧칠하고 드라마의 비극성을 오히려 대비되게 보이게끔 만든다.

 

 


그것은 다분히 이 영화가 추구하는 관객을 향한 전략적인 방법이라 생각된다. 그리고 그 전략은 적어도 이 영화를 독특한 작품으로 만드는 데에는 성공한 듯 보인다. 

  스틸이미지


서두에 쓴 저 대사는 이 영화가 마츠코라는 인물을 보여 주면서 무엇을 드러내 보이고 싶었던 것인지 말해준다.

이 영화는 결국 마츠코라는 여자와 그녀를 둘러싼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의 이야기이고 그 관계로 보여지는 사람이라는, 한 개인이라는 개체가 갖는 사람으로서의 가치는 어디에 있는 것인가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라 생각된다.

영화 라스트에 노래와 함께 흐르는 일련의 빠른 시퀀스의 진행은 바로 그 주제의식에 방점을 찍는다.

 스틸이미지




성경 속에 돌아온 탕자는 결국 현실에서 해피엔딩을 맞지만 우리의 돌아온 마츠코는 그렇지 못하다. 하지만 그 마음은 결국 해피엔딩으로 회귀를 한다.

한번 흐른 현실은 현실 속에서 되돌릴 수가 없다. 그래서 인간은 순간 순간 스스로의 인간으로서의 가치를 되돌아 봐야 할 필요가 있다.

영화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은 바로 그것을 이야기 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언니, 어서 와."

"다녀왔습니다...."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 Movie trail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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