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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로운 영화관

바이센테니얼 맨 (Bicentennial Man , 1999) -볼만한 고전영화 추천 No.14

by 멀티공작소 2018. 2.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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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이센테니얼 맨 (Bicentennial Man , 1999) / 인간이 되고 싶은 로봇

  

이번 올드 앤 굿 무비에서는...

크리스 콜럼버스 감독, 지금은 고인이 되신 명배우 로빈 윌리암스 주연의 <바이센테니얼 맨>에 대해 이야기 합니다~

 

 

▶어떤 내용?

NDR-114라는 명칭의 인간 형태의 안드로이드가 리처드(샘 닐)의 가정으로 배달 되어 집니다. 이 로봇은 갖가지 집안일은 물론이고 무엇이든 인간을 돕는 일을 할 수 있는 첨단 기술의 기계로 만들어진 로봇.

안드로이드라는 단어에 착안해 앤드류(로빈 윌리암스)라는 이름까지 받게 된 로봇은 리처드의 가족들과 함께 지내게 됩니다.

그런던 중 어느 날 우연한 기회로 앤드류가 보통의 다른 안드로이드와는 다른 호기심과 개성을 갖고 있는 점을 발견한 리처드는 진짜 인간과 같이 앤드류를 대하게 되고 가족들에게도 그렇게 할 수 있도록 얘기합니다.

그렇게 한 사람의 가족 구성원처럼 리처드의 가족과 지내게 되는 앤드류.

리처드는 계속해서 앤드류가 인간의 지식과 경험을 습득할 수 있도록 여러모로 도와주고 앤드류는 그렇게 독서, 조각 등 여러가지 경험을 하게 되면서 차츰 인간에 대한 이해와 스스로 인간이 되고 싶다는 욕망을 느끼기 시작합니다.

시간이 흘러가면서 리처드도 죽게 되고, 앤드류가 처음 왔던 어린 시절부터 애틋한 관계를 갖고 있던 작은 딸 아만다(엠베스 데이비츠)도 생명을 다합니다.

그러던 사이 로봇 기술은 더욱 발달해 앤드류는 점차 외모를 기계의 모습에서 인간의 모습으로 개조시켜 바꿔 가고, 리처드의 손녀이자 아만다의 딸인 포샤(엠베스 데이비츠 1인2역)와 만나게 되면서 앤드류는 급기야 그녀를 사랑하게 되는 감정까지 느끼게 됩니다.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욕망들을 더욱 많은 부분에서 갖기를 원하는 앤드류의 바램은 루퍼트(올리버 플랫)라는 과학자의 도움을 받아 계속해서 스스로를 인간화 시키는 개조를 거듭하게 되고 결국은 포샤와의 결혼을 위해 인간 사회에 법적으로 스스로를 인간으로 인정 받기를 원하지만 인간의 법정은 그러한 로봇 앤드류의 청을 받아 들이지 않습니다.

나이가 들면서 서서히 늙어가고 죽음을 받아 들일 준비가 되어있는 포샤지만 앤드류는 과거 가족들의 죽음과 앞으로 다가올 포샤의 죽음까지도 너무나 슬픈 일이라 생각해 결국 스스로도 죽음을 맞을 수 있도록 만들어 주길 루퍼트에게 부탁을 합니다.

그렇게 인간처럼 늙어가 이제 죽음을 눈 앞에 둔 앤드류. 그는 마지막으로 똑같이 늙어있는 포샤와 함께 마지막 법의 결정을 기다리게 되는데요....

 

복잡한 기계처럼 복잡한 질문이 가득한 영화

 이 영화는 가족 영화같은 외피를 두르고 있지만 실상 내용을 꼼꼼히 들여다 보면 상당히 복잡한 질문들을 지니고 있는 영화라는 느낌을 들게 합니다. 이를테면 생각해 볼만한 점이 많은 영화라는 뜻이죠.

크게 이 영화를 관통하고 있는 처음과 끝은 바로 인간과 로봇(안드로이드)의 근원적인 관계 설정이라 할 수 있는데요.

처음 리처드의 집으로 배달 된 앤드류는 그저 인간의 편의를 위해 개발되고 만들어진 기계에 불과했지만 인간의 영향을 받기 시작하면서 스스로 진화를 하게 되고 그 결과 점차 인간화(化)가 되어 가기 시작합니다.

물론 그러한 설정은 영화적인 상상력이겠지만 실제 현실에서도 로봇의 중추인 인공지능(AI)은 눈부시게 발달되어 가고 있는 것이 사실이죠.

얼마 전 알파고와 이창호 기사의 바둑 대결도 그러한 인공지능의 척도를 가늠할 수 있는 부분이라 할 수 있겠는데요. 그런 걸 볼 때 인간과 더욱 비슷한 로봇의 출현이 어느 시점의 미래에는 이뤄질 수 있는 것이라 생각됩니다.

인간은 어차피 자신들의 편의와 이익을 위해 계속해서 인공지능, 로봇의 기능을 발전시키고 시도하고 있으니까요.

영화 <바이센테니얼 맨>의 특징은 그러한 로봇 기술의 발달, 인간과 흡사한 로봇의 출현을 비판적인 시각보다는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것인데요.

그렇다면 인간은 왜 그렇게 자신과 비슷한 로봇을 만들기 위해 애쓰는 걸까요?

아이러니하게도 그러한 인간의 창조적 욕망을 이 영화는 오히려 로봇의 관점으로 바꿔 물어 보고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  

 

왜 앤드류는 인간이 되기를 원하는가?

영화 상에서 앤드류가 인간이 되기를 열망하는 이유는 로봇인 자신은 갖고 있지 않지만 인간은 갖고 있는 여러가지 생물적 요소들과 감성적 요소들 때문인 것으로 나타납니다.

앤드류는 리처드의 가족들과 생활하면서 인간이 갖고 있는 많은 것들을 접하고 그것들로 인해 자체적인 학습을 합니다.

인간의 역사를 배우고, 인간의 습성과 생물학적 요소들을 알게되는....

하지만 결정적으로 앤드류는 인간의 감정을 터득하게 되어 가는데, 그것이 아마 앤드류가 그렇게 인간이 되기를 욕망하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가 되겠죠.

그 중 가장 핵심적인 것은 아마도 '사랑' 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단순히 남녀간의 에로스적인 사랑뿐 아니라 가족과 이웃, 동료 등을 향한 폭넓은 아가페적인 사랑말이죠.

기계인 로봇이 이러한 감정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은 영화 속에서 앤드류가 갖고 있는 기계적인 이상(고장?)으로 살짝 드러내지만 영화는 그러한 것은 크게 내세우지 않는 반면 앤드류가 리처드 가족들과의 관계와 계속되는 인간화의 학습을 통해 그러한 감정들을 가질 수 있었다고 설명하는 것 같아요.

영화를 보다보면 타이틀부터 시작해서 유독 손을 잡은 컷(CUT)들이 자주 보여지는 것을 알 수 있는데 그러한 컷들을 보면 앤드류가 로봇으로 경험하는 모든 것들이 조금씩 그에게로 스며드는, 그리고 배워가고 익힐 수 있는 것은 모두 이어지고 있는 그 관계들에 의한 것임을 느끼게 해줍니다.

실제 인공지능은 학습으로 점차 발달되어 간다는 것은 앞서 언급한 알파고 예에서도 알 수 있듯 정말 가까운 미래에는 인간보다 월등한 학습능력을 가진 인공지능이 더욱 인간과 가까워질 수 있개 되는 현실이 일어날 수도 있겠죠.

영화는 앤드류가 기계로서 인간이 갖고 있는 것들에 대한 동경과 욕망을 보여줌으로써, 그리고 그가 그렇게 갖고자 하는 인간적인 것들을 위해 모든 것을 쏟아 붓는 것을 보여주면서 오히려 정말 인간다움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얘기해 주고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심지어 인간이 언젠가는 맞닥뜨리게 될 죽음조차... 영화는 인간이 가질 수 있는 고귀한 것으로 얘기하고 소중한 가치로 일깨우고 있다는 것이죠.

 

현실 세계 인간의 아이러니

이러한 영화 속 스토리를 보며 아이러니한 것이 있으니 그건 인간은 오히려 기계가 되기를 원하고 있다는 것이죠

이유는 앞서 말한 바로 인간의 유한한 생명을 조금이라도 무한에 가깝게 늘려보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이기 때문인데요.

영화 속 앤드류의 바램과 다르게 현실의, 아니 오랜 예전부터 인간들은 더욱 오래 살기를 원하고 욕망합니다.

그래서 인간들은 불로초를 구하고, 약을 쓰며, 인공 장기를 쓰면서 더욱 발달하는 의료 기술들로 생명을 조금이라도 연장시키고 무한에 가까워지길 희망하고 있죠.

그래서 급기야 애니메이션인 은하철도 999의 사람들처럼 사이보그가 되기를 열망하는 수준으로까지 갈 수도 있겠지만, 은하철도999가 보여주는 세계관과 마찬가지로 영화 <바이센테니얼 맨>도 그것이 반드시 좋은 것만은 아니라고 말해주는 것으로 읽혀집니다.

오히려 영화에서는 기계로 무한한 생명이 가능한 앤드류가 라스트 즈음에 오히려 인간처럼 유한한 생명을 원하게 됩니다.

이것에서 느낄 수 있는 것이 뭘까요?

죽음도 삶의 일부분이라는 인간의 삶에 대한 영화 속 앤드류의 동경을 보여줌으로, 유한한 인간의 생이기 때문에 인간의 삶과 생명이 더욱 가치를 지니고 있는 것이라고 말해주는 것은 아닐까요... 

그 가치의 값은 아마도 스스로 매기게 되는 것이란 생각이 듭니다...

 

이번 포스팅은 여기까집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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