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사를 배우면 한번쯤은 들어봤을 법한 '함무라비 법전' 은 보복주의를 특징으로 하는 법 체계를 보여 줍니다. 즉, 말 그대로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인 것이죠. 하지만 그 시절은 철저한 계급주의의 사회이다 보니 그 살벌한 법이라는 것도 '법 앞에선 만인이 평등하' 지는 않은 법이었습니다.
그러면, 현대와 같은 복잡하고 다원화한 사회에서는 훨씬 더 복잡한 법 체계와 잘 짜여진 시스템이 운용이 되고 있을진대 과연 지금의 시대에는 '법 앞에 만인이 평등' 한가요?
영화 <모범시민>은 그러한 법 체계의 불만을 과격한 한편의 복수극으로 보여주는 영화입니다.
영화 속 주인공인 클라이드 쉘턴의 분노는 분명 공감은 갑니다.
그의 분노는 크게 두 가지 요인에서 기인하는데요, 첫째는 눈 앞에서 자신의 아내와 딸을 살해한 2인조 괴한들에게 갖는 것일테고, 두번째는 사후에 벌어진 범인들의 처리과정에서 보여지는 법 체계에 대한 분노입니다.
미묘한 사안에서 법을 집행해야 하는 자들이 적당히 범죄자와 타협하는 그러한 광경은 어쩐지 그리 낯설게만 느껴지지는 않는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마도 클라이드의 분노는 그 가해자들에 대한 것이 크겠지만 그러한 광경을 목격하는 순간 느낄 수 밖에 없는 스스로의 무력감이 그가 복수극을 결심하게되는 더 커다란 동기가 됐으리라 생각합니다.
어쨌든 10년의 세월 동안 이를 갈며 복수극을 준비하던 클라이드는 두명의 범인 중 한 명의 사형이 집행되는 순간을 기점으로 그 복수심을 폭발시킵니다. 가족을 죽인 범인들은 물론 그 재판에 관여해서 이른바 형량을 가지고 '사법거래' 를 한 사람들까지 한데 죽음으로 내모는 것이죠.
이 영화가 기존의 복수극들과 달리 배치한 특이한 장치는 바로 클라이드가 첫 살인이 일어나자마자 순순히 자신의 행위를 인정하고 교도소로 향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스스로가 검사인 닉에게 사법거래를 제안하죠. 이 아이러니한 상황을 보여 줌으로서 클라이드는 자신의 복수극에 스스로 정당성을 부여해 주려는 듯 보입니다.
그리고 이제 클라이드가 교도소에 있다해도 그의 복수극은 멈추질 않습니다. 모든 것은 그가 10년 동안 기획, 연출한 계획대로 흘러가기 때문이죠. 이 영화가 흥미롭게 다가오는 것은 바로 이러한 시나리오적 장치에 있습니다.
교도소라는 밀폐된 공간에서 그가 어떻게 살인을 실행해 나가는가, 라는 의문을 마지막까지 끌고 가면서 이후로 드라마는 클라이드가 앉아서 -실은 열심히 움직이지만- 하나하나 계획을 실행하는 과정과 그것을 막기 위해 뛰어 다니는 검사 닉을 보여주면서 긴장과 액션활극을 보여 주는 것이죠.
결국 영화는 이러한 내용들로 영화적 재미를 이끌어 가면서 나름의 논쟁거리를 제공하는 의도를 보입니다.
그 의도라는 것은 결국 미국의 사법체계에 있을 것이고, 더 넓게는 법이라는 것 자체가 과연 인간에게 말 그대로 적법하게 효용되는 시스템을 갖고 있는가에 대한 의문이겠죠. 물론 영화는 그것에 대한 부정적 견해를 클라이드라는 남자의 생각과 행동을 통해서 보여주는 것이구요.
그렇긴 하지만 라스트에서 결국 클라이드의 죽음으로 이야기를 종결짓는 것은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 물리적 폭력과 살인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부정한다는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 듯 보입니다.
하지만 여전히 <모범시민>에서 제기하고 있는 개인과 거대한 법 시스템의 충돌은 사회가 풀어야 할 숙제임은 분명한 것입니다. 이 영화와는 조금 다른 관점이겠지만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것도 결국은 그러한 법 체계의 맹점을 비꼬는 것이라 할 수 있겠죠.
어느 나라의 법원이든지 그 앞에는 저울과 법전을(어떤 곳은 칼로) 들고 있는 '정의의 여신상' 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저울이라는 것은 결국 법의 형평성을 의미하는 것이겠죠.
그러한 법의 집행이 정당하고, 면밀하게 이뤄져야 한다는 법 체계 스스로의 선서같은 것이겠지만 현실이 그렇지 못하다는 것은 결국 또 다른 어떤 개인에게는 '눈에는 눈, 이에는 이' 라는 고대의 법문이 더 와닿을 수도 있다는 것을 법을 집행하는 시스템은 알아야 할 것입니다.
이 영화 <모범시민>의 클라이드 쉘턴의 경우처럼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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