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년 꼴찌 콤플렉스를 가진 히로코는 결혼을 하루 앞두고 살인을 하게 됩니다. 물론 이 살인은 영화의 전반적인 톤에 충실하게 황당하고 어이없는 상황으로 일어나죠. 내일이면 그렇게 소망하던 결혼식인데...
히로코는 결국 선택을 합니다. 시신을 어딘가에 처리하기로. 예상대로 이 시체 처리 여행기는 순탄치 않습니다. 자살 중독자 후쿠코가 여정에 뜬금없이 끼어들고, 단지 도망을 친다는 이유로 뒤를 쫓는 순박한 경관이 등장하고, 만화 캐릭터 같은 폭주족에, 정체 불명의 만담 콤비 같은 외국인 2명까지. 온갖 인물들이 영화 속에는 넘쳐납니다.
영화는 처음부터 판타지를 강하게 드러냅니다. 뮤지컬 형식으로 대강의 프롤로그를 흥겹게 풀어내고 이후로도 만화 같은 편집과 장면 연출, 캐릭터들로 거의 도배를 하죠. 그렇게 생각해 보면 영화는 아주 처음부터 작정하고 판타지를 만들어 냅니다.
그런데 영화를 쭉 보다보면 그런 영화의 전반적인 톤이나 형식이 장면 자체로는 흥미로울지 모르겠지만 그렇게 효율적인지는 의구심이 듭니다. 그것은 영화의 내용이 정돈되지 못한 채 어수선하게 흘러가기 때문입니다. 시체처리라는 하나의 상황에서 물줄기를 타기 시작한 영화는 점차로 드라마가 진행되면서 그 애초의 구심점은 어디론가 가라앉아 버리고 철저하게 캐릭터에 기울어지는 슬랩스틱 코미디로 때워 버리기 때문이죠. 거의 막바지에 이르러서야 히로코라는 인물에게 결혼, 그리고 그녀를 키워준 할아버지에 대한 가족애 같은 것으로 정서를 쏟아내며 급 마무리를 지으려 하지만 이미 공중으로 붕 떠버린 이야기는 좀처럼 지면에 발이 닿기가 힘든 상황이 되어 버려서 영화는 형식이라는 껍데기만 남겨 버린 채 억지 반전의 순환으로 돌아가 버리고 맙니다.
‘시체처리’라는 절박한 상황은 영화의 톤과는 상관없이 조금은 치밀하게 풀어야 했던 상황이 아니었을까 생각이 듭니다. 사실 주인공 히로코가 갖고 있는 여러 정서적 내면이 상당히 의미가 있기도 하고 인간의 콤플렉스라는 드라마틱한 부분을 건들면서 가슴이 짠한 느낌을 갖게 하는 부분은 있습니다. 하지만 영화는 지나친 황당함과 코믹한 묘사들로 키치적 느낌을 강박적으로 몰아가는 듯해서 결국 클라이맥스의 히로코의 오열은 감정적으로 그렇게 와 닿는 느낌이 들지는 않습니다.
예전에 봤었던 비슷한 톤의 일본영화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 이나 같은 감독의 <불량공주 모모코>는 비슷한 형식을 취했음에도 나름의 밸런스를 유지하면서 캐릭터나 그 이면에 깔고 있는 정서들의 조율을 흐트러트리지 않고 드라마를 끝까지 몰고 가는 힘이 느껴졌던 것을 떠 올려 본다면 이 영화는 그러한 부분에서 드라마의 긴장이나 집중도가 떨어지는 아쉬움이 느껴집니다.
하지만 그러한 깊이의 미덕은 열외로 두고 그냥 한편의 유쾌한 좌충우돌 시체 처리기(記)로 가볍게 본다면 <신부의 수상한 여행가방>은 산뜻하게 볼 수 있는 장점은 있는 영화입니다.
그래도 영화의 장면 장면마다 번뜩이는 재치들은 존재하니까요. 영화를 보시는 분이 이런 종류의 코믹함을 좋아하는 취향이시라면 말이죠.
여담 :
영화 속에서 가방을 타고 도망치는 슬라이딩 시퀀스는 이 영화의 백미로군요. 우에노 주리는 <스윙걸스>에서도 멧돼지와 한 장면 하더니 이 영화에서도 멧돼지와 조우를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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