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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로운 영화관

택시 드라이버 (Taxi Driver, 1976) - 고독과 광기의 이중주

by 멀티공작소 2010. 11.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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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는 시작과 함께 1970년대 뉴욕의 밤거리를 비춥니다. 흐느적거리는 듯한 느낌의 영상으로 표현된 화면에 한 남자의 외로움이 짙게 베여있는, 또는 쓸쓸히 관조하는 듯한 눈길이 그 영상 위로 오버랩 되어 보여 지면서 톰 스캇의 색소폰 연주가 흐릅니다.

(영화의 전체 OST는 버나드 허만이 담당)



영화는 불면증으로 심야 택시 운전을 시작하는 트래비스 비클이라는 사내의 행적을 계속 쫓아다닙니다. 카메라의 시점은 거의 그의 시점이나 감정선과 일치되어 흘러가는 것으로 보여 집니다. 

폴 슈레이더의 시나리오는 시나리오 형식적으로도 독특한 부분이 있지만 내용상으로도 처음부터 이 트래비스 비클이라는 캐릭터의 집요한 관찰을 서술합니다.


 

TRAVIS BICKLE, age 26, lean, hard, the consummate loner. On the surface he appears good-looking, even handsome; he has a quiet steady look and a disarming smile which flashes from nowhere, lighting up his whole face. But behind that smile,

around his dark eyes, in his gaunt cheeks, one can see the ominous stains caused by a life of private fear, emptiness and loneliness. He seems to have wandered in from a land where it is always cold, a country where the inhabitants seldom speak. The head moves, the expression changes, but the eyes remain ever-fixed, piercing empty space....

 

(트래비스 비클. 26, 마르고, 강한 완벽한 외톨이. 외모는 준수하며 미남으로 보이기까지 한다. 조용하고 차분한 분위기이며 어디에서 오는지는 알 수 없는 악의 없는 미소가 얼굴 전체를 비추고 있다. 하지만 그 미소 뒤에는 인생의 공포와 공허감, 그리고 외로움의 흔적이 있음을 어두운 눈과 수척한 뺌을 통해 알 수 있다. 그는 마치 추위와 말을 잃은 사람만이 사는 나라에서 방랑을 하다 온 것처럼 보인다. 머리가 움직이고 표정이 변해도 그의 눈은 항상 빈 공간을 뚫어지게 쳐다보는 고정된 상태로 남아있다....)


 



결국 시나리오의 단계에서부터 이 영화는 바로 트래비스 비클이라는 인물에 집중되어 있고 그 캐릭터가 뉴욕이라는 도시의 사람들, 도시의 풍경, 상황 등을 바라보는 시점이 바로 중요한 원동력으로 스토리를 이끌고 간다고 볼 수 있는 것이지요.

그럼 도대체 트래비스 비클 이라는 인물의 시점이 무엇인가? 그것이 바로 이 캐릭터의 난해함이며 또한 영화의 난해함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한편의 영화는 시나리오나 감독이 영화 전체로 표현할 때 분명히 의식적으로 주입하는 것이 있겠지만 실제 관객에게 보여 지면 굉장히 다양한 해석과 설명이 나올 수 있는 매체입니다. 그것이 창작자와 비슷하던 그렇지 않던, 그것 자체로 의미는 있죠. 그래서 저도 제 나름의 의미 분석을 한번 해볼까 합니다.

 

우선 택시 드라이버 이 영화를 전반적으로 지배하고 있는 분위기는 뉴욕이라는 공간의 느낌과 인간의 소외에서 오는 고독감입니다.

트래비스가 심야의 택시를 몰고 구석구석 돌아다니는 대도시 뉴욕은 사실 엄청나게 복잡하고, 혼란스러운, 사실 고독과는 좀 거리가 있는 풍경이죠. 하지만 그렇게 수많은 사람들과 왁자지껄 속에서 오히려 인간은 소외감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영화 속 뉴욕의 곳곳을 질주하는 트래비스의 택시는 굉장히 외로워 보입니다. 마치 한밤중의 바다를 홀로 떠다니는 한 척의 배같이 말입니다.

그렇기에 택시라는 사물에 담긴 채 뉴욕(외부)과 차단되어 있는 트래비스라는 인물 역시 고독해 보이죠. 더군다나 택시라는 것을 잘 들여다보면 택시 드라이버는 항상 택시 안에 머물지만 손님은 언제나 드나드는 역할을 수행합니다. , 그들은 왔다가 떠나는 존재들인 것이죠. 택시 안의 잠시나마 존재하는 소통은 승객의 하차로 다시 칸막이가 쳐집니다. 트래비스는 그렇게 외부와의 소통이 되지 않고 소외 되는 고독한 존재로서 영화 내내 분위기를 압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느낄 수 있는 장치들로 트래비스의 택시에 탑승하는 승객들을 보면 알 수 있을 겁니다. 그의 택시에 오르는 사람들은 정말 밤거리의 갖가지 인간 군상들로 가득 합니다.

 

어린 창부가 있고, 그 창부를 억압하는 포주가 있으며, 흑인과 바람난 아내를 매그넘으로 날려버리려는 백인의 사내(이 배역을 연기한 사람이 바로 마틴 스콜세지 감독!), 그리고 공허하고 가식적인 인상의 차기 대통령 후보 등등.

그 모두가 트래비스에게는 한통속의 쓰레기로 보일 뿐이고 뭔가 외부와의 소통으로 고독함을 벗어나고자 하는 그에게 실망감만을 줄 뿐인 것입니다.

  

그렇게 외부와의 단절과 무엇으로도 소통되지 못하는 트래비스의 고독감은 점층적으로 쌓이고 혼돈을 일으키다가 결국 두 개의 출구를 바라보게 되는데 그게 바로 베시와 아이리스라는 두 여자와의 관계입니다. 하지만 이 소통은 여러 가지로 불안정한 요소들을 갖고 있습니다. 트래비스에게는 상당히 안타까운 일이겠지만 말이죠.

영화의 스토리에서 보이듯 두 사람과의 소통은 출구를 열기가 쉽지 않습니다. 타인, 특히 이성(異性)과의 커뮤니케이션은 남성들에게 그렇게 쉬운 것이 아니지요. 하물며 영화 속에 등장하는 트래비스의 캐릭터를 본다면 더욱 그러한 요소들이 눈에 뜨입니다.

 

 

우선 베시 쪽부터 본다면 그녀에게 접근하는 트래비스의 감정이 영화상으로 느끼기에 굉장히 난해합니다. 어떻게 보면 애틋한 연애 감정같이 보이고, 어떻게 보면 고도의 작업(?)을 거는 것 같이 느껴지는데 이 부분은 또한 정치적 의미로 읽힐 수 있는 여지도 가지고 있습니다. 베시의 직업이 바로 대통령 캠페인 사무실에서 일하는 여성이기 때문에요.






한편, 아이리스에 대한 부분을 보자면 그녀는 베시와는 완전히 반대급부의 위치에 존재하고 있는 여자입니다. 한참 학교에 다녀야 할 사춘기의 그녀는 매춘부 생활을 하고 있죠. 험악한 기둥서방까지 두고서 말입니다. 

 

사실 아이리스에게 트래비스가 갖는 감정은 베시와는 약간의 차이가 있습니다. 그는 그녀에게 어떤 정의감이나 도덕적 책무 같은 것을 느끼는 것으로 보여 지지요. 하지만 그 요소들도 가만 보면 어쩐지 자기 합리와 같은 느낌도 듭니다. , 트래비스는 자기식대로의 도덕적의무감에 충만해 있는 인물이기 때문입니다.  

 

트래비스라는 캐릭터는 이렇듯 영화 속에서 굉장히 난해한 캐릭터로 그려지고 있지만 의외로 그는 지극히 단순하기도 한 면모를 보이기도 합니다. 그는 늘 뉴욕이라는 도시에 반감을 표시합니다. 쓰레기들을 씻어 냈으면 좋겠다는 극단적 표현까지 쓰면서요. 그런 그에게 잔뜩 구겨진 5불짜리를 택시 뒷좌석에 던져 놓은 포주에게 끌려간 아이리스의 모습은 그를 서서히 광기로 몰아가는 기폭제의 역할을 합니다. 아이리스에게 트래비스는 구원해 줘야할 도덕과 정의를 실천하는 상징의 요소로 다가오는 것이죠.

어쩌면 트래비스는 베시에게도 비슷한 마음을 가졌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연애의 감정이 주조를 이루지만 그녀가 그토록 존경하는 정치인 팔렌타인은 실상 영화 속에서 보여 지는 모습이 그리 신뢰가 가지는 않는 인물이거든요. (정치인들이 대부분 그렇듯)

어쩌면 스콜시지 감독은 이러한 정치에 대한 견해를 어떤 프로파간다를 통해서가 아니라 이러한 표현으로 부정적 견해를 밝힌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좋아하는 여자의 존경하고 신뢰를 보내는 정치인의 그런 모습을 보는 트래비스로서는 큰 실망을 느꼈을 것입니다.

그렇게 베시와 아이리스라는 여성들과의 관계에서 트래비스는 다시 한번 스스로에게 좌절감을 느낍니다. 다르게 본다면 그것은 남성으로서 트래비스가 갖는 어떤 남성성의 좌절감으로 읽혀질 수도 있겠지만 저 자신은 조금 더 다른 의미의 좌절로 생각하고 싶네요. 즉 트래비스는 베시와 아이리스라는 여성들과의 관계에서 스스로가 느끼는 군중 속에서의 고독과 가치관이 좌절당하는 쓰라린 상처를 입는 것, 그것은 바로 자신의 존재를 인정받을 수 없는 소외라고 생각할 수 있는 것이죠. 그리고 결국 그는 스스로 해결 방법을 찾습니다. 그것이 바로 물리적 폭력이죠.

그렇지만 영화 속에서 트래비스의 폭력은 계획적으로 보이는 듯 하면서도 어쩐지 즉흥적인 임팩트를 가진 폭발로 보여 지기도 합니다.

 

정치()에 대한 실망에 그 정치인을 거세시키려는 그의 암살 시도는 좌절되고 그는 대신 스스로의 손으로 쓰레기를 처단하고자 곧바로 아이리스의 포주를 찾아갑니다.
영화의 클라이맥스이기도 한 이 시퀀스는 잔인한 폭력의 모습을 아주 저돌적으로 묘사합니다. 형식적으로는 굉장히 리얼한 묘사를 하면서도 가끔씩 슬로우 모션을 이용하면서 역동성이 강한 몽타주를 느낄 수가 있는 것이고 마틴 스콜세지 감독은 전체에서 보면 짧은 분량이지만 이 시퀀스를 굉장히 세밀하고 파괴적으로 연출해 보입니다.


그렇게 분출된 트래비스의 응징(?)은 그에게도 상처를 남기지만 결국 그는 뉴욕이라는 도시에 화제가 됩니다. 신문에서는 아이리스를 구해낸 트래비스의 기사를 내고 그 기사는 스크랩되어 카메라 팔로우(follow)로 보여 집니다. 느낌상 트래비스는 전혀 이러한 것을 의식한 캐릭터는 아닐 겁니다. 이 또한 비판적 시각으로 본다면 언론에 대한 냉소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죠.

하지만 그 사건 이후 트래비스의 고독과 소외가 조금은 보상을 받은 듯 보이기도 합니다. 마지막에 트래비스의 택시에 오른 베시의 미묘한 모습을 본다면 말입니다. 물론 영화는 두 사람이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이라는 결론은 결코 내리지 않은 채 끝이 나긴 하지만 말입니다.

 

개인적으로 마틴 스콜시지 감독의 영화를 좋아하게 된 첫 계기가 이 택시 드라이버를 보고였습니다. 그리고 캐릭터를 너무나 잘 녹여 그 시니컬하기도 하고, 온화해 보이기도 하는 미소를 만들어낸 불세출의 배우 로버트 드니로의 존재를 좋아하게 되는 계기가 되기도 했구요. 





택시 드라이버는 지금 봐도 새로운, 여전히 오픈된 영화라는 느낌이 듭니다. 어느 하나로 규정짓기 힘든 다양한 요소들이 이 영화 속에는 스며들어 있다는 느낌 때문이죠.

다시 또 본다면, 그땐 또 다른 느낌과 감상이 나올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며 포스팅을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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