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의 이름 (Le Nom De La Rose , The Name Of The Rose ,1986) / 암흑의 시대와 이성(理性)의 빛
이번 포스팅에서 추천해 드릴 영화는 움베르토 에코의 소설 <장미의 이름>을 영화화한 장 자크 아노 감독, 숀 코네리와 크리스찬 슬레이터가 주연의 1986년작 <장미의 이름> 입니다.
▣줄거리
1327년, 프란체스코 수도회의 수사 월리엄과 그의 수련 제자 아드조는 이탈리아 북부에 위치한 베네딕트 수도원에 도착하게 됩니다.
그들이 이곳에 온 이유는 교회의 청빈을 주장하는 프란체스코 수도회와 이를 반박하는 교황청및 다른 교단과의 충돌을 해결하기 위해 토론을 하려고 온 것인데요.
사람들이 모여드는 이때에 맞춰 이 수도원에서는 그림을 그리는 채식 수사 아델모의 시체가 발견되면서 미스테리한 분위기로 술렁이기 시작합니다.
평소부터 논리와 이성적인 판단력을 소유한 월리엄 수사는 이 사건을 비롯해 수도원을 둘러싸고 있는 여러 기묘한 분위기를 느끼는데 수도원장은 그러한 윌리엄 수사에게 아델모의 죽음에 대한 조사를 해주기를 요청합니다.
그런데 죽음은 아델모에게서 그치지 않고, 그리스어 번역사를 비롯한 다른 여러 수도원 수사들이 계속해 요한 계시록의 예언을 연상 시키는 연쇄 살인 사건이 일어나고 수도사들은 악마의 소행이라고 생각하며 그들의 신앙적인 관점으로 판단을 합니다.
하지만 윌리엄 수사는 계속해서 사건을 관찰하고 냉철하게 이성적인 논리로 접근하며서 내밀히 사건을 수사해 나가는데요. 그는 이 사건이 수도원의 서고에 있는 책과 연관이 있다는 것을 파악하게 되고 그 비밀스런 서고를 들어가기 위해 방법을 찾게 됩니다.
한편 아즈조는 우연히 주방을 침입한 가난한 마을의 처녀와 조우를 하게 되고 그녀와 정사를 갖게 되면서 연민과 사랑이 싹트게 되는데요.
그렇게 시간이 흐르면서 교황청의 인물들이 도착하고 그중에는 과거 윌리엄과 악연이 있던 이단 심판관도 오게 됩니다.
이런 와중에서도 윌리엄과 아드조는 계속해서 단서들을 추적하고 풀어내어 마침내 비밀서고에 잠입하는데 성공하게 되고 사건의 실체에 다가가게 됩니다.
그러는 중 사건의 수사를 맡은 이단 심판관은 주관적 관점으로 이단 심문을 통해 2명의 수도사와 바로 아드조와 정사를 가졌었던 마을의 처녀를 마녀로 선고해 화형을 시키려 합니다.
그렇게 화형식이 진행되는 사이에 월리엄 수도사와 아드조는 서고에 다시 잠입해 결국 연쇄 살인 사건 범인의 정체를 알게 되고 그의 뒤를 추적하게 되는데요....
▣움베르토 에코(Umberto Eco) 의 원작 소설
영화 <장미의 이름>은 움베르토 에코의 원작소설을 각색하여 만든 작품입니다.
원작 소설을 읽어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아직 읽어보지 않으신 분들에게는 강력 추천! 꼭 읽어 보세요~), 사실 이 소설이 읽기가 그렇게 녹녹치 않은 소설입니다. 뭐, 그의 다른 소설들도 비슷하지만 말이죠.
우선 분량이 꽤 나가는데다, 소설을 읽고 있자면 신경을 좀 노곤하게 만드는 구석이 존재하고 중세 수도원의 폐쇄적이고 스산한 분위기가 이야기를 압도하고, 매 페이지 줄줄이 달린 주석과 때만 되면 등장하는 온갖 언어들에 복잡한 중세의 카롤릭 사상과 교리, 역사, 게다가 여러 철학까지....
하지만 기묘하게도 어느 정도 이야기의 흐름에 올라서기 시작하면 큰 흡입력으로 독자를 끌어 들이죠.
소설 내용의 중세 수도원에서 이레 동안에 벌어진 사건에는 신의 이야기보다는 인간의 이성(理性)과 사유(思惟)를 이야기 하고 시대의 흐름을 이끄는 커다란 요인들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방대한 분량과 속에 담긴 내용들을 두 시간여 되는 영화로 압축하여 풀어 낸다는 것이 분명 쉽지 않은 일이었을텐데요.
장 자크 아노 감독은 비교적 소설의 기본적인 스토리 텔링을 놓치지 않으면서도 살인 사건 현장의 미장센과 수도원의 모습 등을 통해 중세 수도원의 암울하고 은밀한 분위기를 잘 연출해 낸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지만서도 확실히 소설을 읽지 않은 채 영화만을 보게 된다면 영화의 내용에 대한 이해가 가끔씩 비어있다는 위화감을 약간은 느끼게 되죠.
아직 영화를 보지 못하신 분이시라면... 전 먼저 소설을 보신 후에 보는 것을 추천 드리고 싶습니다~
▣요한 계시록과 연쇄 살인 사건
영화 <장미의 이름>에 주된 스토리의 줄기는 중세 수도원에서 일어나는 원인 모를 연쇄 살인 사건을 해결 하기 위해 화자인 수련사 아드소와 그의 스승 윌리엄 수도사가 추리를 벌이며 사건을 해결해 가는 과정이 내용입니다.
이를테면 윌리엄 수도사가 홈즈가 되겠고 아드소는 왓슨의 역할을 하는 셈이다.
수도원에서 벌어지는 살인 사건은 수도원이라는 배경에 걸맞게 성서의 요한 계시록에 나오는 일곱 가지 재앙에 맞춰 일어나는데요.
성서의 요한 계시록을 읽어보신 분은 아시겠지만 이 부분은 신이 인간의 세상을 멸망으로 심판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아마겟돈' 이라는 단어도 이 요한 계시록에서 나오는 단어죠.
역사상으로 중세를 우리는 암흑의 시대라고 얘길하곤 하는데 그 시대의 신(카톨릭 종교의 신)은 모든 인간의 사고와 생각, 사회적인 시스템, 즉 모든 세상의 중심점이었습니다. 교황이란 존재는 그 신과 소통하는 최고점에 위치한 인물이었고요.
이러다보니 치명적 상황들이 벌어지는데 신의 뜻을 곡해하고 아전인수로 해석하는 인간들이 득실득실 하다는 것이 문제인 것이죠. 그런데 또 그러한 인간들이 권력의 정점에 서서 그것을 휘두른다는 것이 더욱 큰 문제였던 겁니다.
이 영화에서도 교황청의 이단 심판관의 행동을 보시면 알 수 있죠. 그래서 이 영화 <장미의 이름>을 보면 수도원이라는 폐쇄된 공간에서 벌어지는 이야기이지만 사실 중세 시대의 축소판이라 생각을 해도 될 듯 합니다.
왜 살인 사건이 일어나고, 왜 그 방법이 요한 계시록이어야 하냐는 것은 단순한 것이 아닌 이 영화의 배경이 되는 시대의 분위기와 아주 밀접하게 연관이 있다는 것입니다.
▣폭압적인 지배의 세계관과 인간의 충돌
이 영화를 보시면 여러가지 철학적 논쟁들이 벌어지는 것을 볼 수 있는데요.
월리엄 수도사가 이 수도원에 오게 되는 것부터 교황청과의 논쟁을 위해서죠. 그들은 교회의 청빈에 대한 논쟁을 벌이는 것이 하나이고 또 하나는 수도원의 원로인 호르혜 수도사와 윌리엄 수도사의 웃음에 관한 논쟁이죠.
호르혜 수도사는 그리스도계서는 웃지 않으셨다는 신념의 철학으로 웃음은 사람에게 악마의 바람이 깃들게 하는 것으로 생각하며 수도사들이 웃는 것을 죄악시 했고, 윌리엄 수도사는 평소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을 신봉한 바 '시학' 의 2권 '희극론'을 근거로 웃음이 진리의 도구가 될 수 있다고 대립하죠.
사실 이 대립 장면이 영화 속에서 굉장히 중요한 부분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장면 속에 사실 살인 사건의 주요한 키(Key)들이 담겨져 있거든요.
재미있는 것은 실제 지금 전해지고 있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은 1권인 '비극론' 만이 전해지고 있고 '희극론'은 소실 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영화 속에서는 상상력을 동원하여 시학 2권의 존재를 이 수도원에 있는 것으로 만들었고 유실된 이유도 마지막에 나오죠. (이것은 소설에서도 마찬가지로 원작을 만든 움베르토 에코의 상상력이 희극론의 내용을 비극론을 토대로 만든 것)
즉 인간의 '웃음' 이라는 하나의 특징을 한 쪽은 종교적 신념으로 죄악으로 판단하고 한 쪽은 인간 특유의 개성적인 부분으로 판단을 하는 양쪽의 생각이 부딪치는 것인데 이것이 바로 중세 시대의 분위기이고 시대상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 생각됩니다.
어찌 보면 ‘웃음’ 이라는 인간의 본성을 대하는 호르혜 수도사의 사고는 현재의 우리들에게 황당하게 들리지만 역전시켜 생각해 보면 한 시대를 뒤덮고 있는 이 절대적이며 획일적인 이념의 무자비한 폭력이라는 것이 얼마나 사람을 옥죄는지 생각해 보면 공포스럽지 않은가요? 웃음을 억압하는 사회라니....
▣신앙과 이성의 철학적 사유
이렇게 미스터리 스릴러스러운 장르적 성격을 가지고 살인 사건을 모티브로 전개가 되는 영화의 이야기지만 중세 수도원을 배경으로 모든 이야기가 전개되면서 점점 영화가 다루는 세계는 스케일이 넓혀집니다.
가장 궁극적인 부분은 아마 인간의 이성과 종교적 신앙이 충돌되는 지점이 될 듯 싶군요.
앞서 웃음의 대한 논쟁에서도 보이고 또 스토리가 전개되면서 살인 사건을 바라보는 수도사들의 관점에서도 느낄 수 있지만 중세의 사람들을 지배하고 있는 (또는 억압하는) 종교적 시스템과 인간 개인이 가질 수 밖에 없는 이성적 사고의 충돌과 그 그림자를 이 영화는 다루고 있는 것이라 생각됩니다.
수도원의 연쇄 살인 사건을 통해 영화를 보는 사람들은 보여지는 수도원과 수사들의 모습을 통해 중세라는 한 시대의 축소된 모습을 보고 있는 것이죠. 이 영화가 흥미롭고 재미있는 것은 그러한 것에 있는 것이라 여겨집니다.
한 시대를 지배하는 종교와 정치가 결합한 이 극단적 이데올로기가 그 시대를 사는 인간의 삶에 얼마나 영향을 끼치는가.... 그 가운데에서도 인간의 사고는 계속해서 과학적이고 이성적인 해법을 찾으려 사고하고 사유하는 것 아니던가.... 하는 그러한 부분 말입니다.
결국 영화 <장미의 이름>은 종교적 광기를 이겨낼 수 있는 것이 인간의 이성적 사고라는 것을 영화 전체적인 은유로 보여 주고 있는 것이라 생각됩니다...
오늘 포스팅은 여기까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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