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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 소설 작업실

[창작 연재 소설] 길에서 만나다 - #5~#7

by 멀티공작소 2018. 5.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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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 생각이 많은 사람....

 

누군가 내게로 속삭이는 그 목소리에 나는 잠에서 깨어났다. 그러나 주위에는 아무도 없었다.

꿈을 꿨었나. 뭔가 묵직한 것이 머리에 있는 것은 같은데 잘 끄집어내 지지가 않았다. 신경들이 마구 엉켜있는 것 같았다.

습관대로 시계를 보았다. 오전 1014분쯤.

햇빛은 쨍쨍한 게 하루가 무더울 조짐이 들었다.

휴대폰이 울렸다. 아무 생각 없이 본능적으로 손이 가서 받았다.

 

여보세요?”

“....”

여보세요?”

 

저쪽에선 아무런 얘기가 없었다. 다만 뭔가 혼선이 된 것 같이 요란한 소음만이 어렴풋이 들려왔다.

 

여보세요? 말씀하세요....”

 

침묵. 난 힘없이 끊으려는데 다급한 목소리가 휴대폰에서 들렸다.

 

- 여보세요? 여보세요?

 

나는 다시 휴대폰을 귀로 가져갔다.

 

, 말씀하세요.”

-실례지만 한준영씨 되십니까?

 

휴대폰 속 인물은 정확히 내 이름을 말했다.

 

, 맞는데요... 누구신지.....”

-... 여기 강남 경찰선데요. 저는 최형익 형사라고 합니다.

 

경찰서? 형사?

 

, 그런데 무슨 일로....”

-혹시 채화연 씨라고 아십니까?

 

채화연? 그 이름을 듣는 순간 잠시 머리가 멍해졌다. 그리고 그 이름이 굉장히 낯익게 느껴졌다. 하지만 기억 속에 연결되는 얼굴이 없었다.

 

글쎄요.... 잘 모르겠는데요.....”

 

내가 그렇게 말하자 저쪽에서는 끄응- 하고는 아마도 실망스런 반응을 보이는 듯 했다.

 

-... 그럼 저 바쁘시겠지만 괜찮으시다면 저희 쪽으로 좀 나와 주실 수 없겠습니까?

 

말은 이렇게 했지만 말투에는 어쩐지 명령조가 들어 있었다. 나는 공연히 반발심이 들어 퉁명스럽게 말했다.

 

무슨 일 때문에 그러시는 건데요?”

-....

 

내 말투가 모가 나있자 저쪽도 잠시 망설이는 듯 했다.

 

-전화로 말씀드리기는 좀 그렇군요. 뭐 대단한 일은 아니니 오늘 좀 들려주셨으면 좋겠습니다. (! 이 새끼 끌고 가!) .... 강남 경찰서 오셔서 최형익 형사를 찾으시면.... (, 조서 여기, 여기.) , 그러면 될 겁니다.

 

형사라고 신분을 밝힌 그는 몹시도 바쁜 듯 얘기를 하면서도 중간 중간 다른 쪽에 호통을 치곤했다.

 

하지만 이렇게 뜬금없이 말씀하시니....”

-저희사 수사하는 데에 꼭 좀 필요한 일이라 그러니 협조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럼 제가 좀 바빠서. 이만...

 

저기, 잠깐만....”

 

전화는 끊어졌다.

나는 잠시 휴대폰을 보다가 어이없다고 생각했다.

채화연.... 어디서 들어본 이름인 것도 같았다.

나는 다시 침대로 털썩 누워 천정을 바라보면 한숨을 쉬었다.

도대체 안 좋은 예언은 왜 이렇게 잘 들어맞는 걸까. 나는 눈을 감고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6

 

 

별 수 없이 나는 일단 경찰서를 가기로 했다.

여성이 핸드백처럼 늘 들고 다니는 가방을 어깨에 메고 아파트를 나가 한 백여 미터 떨어진 마을버스 정류장으로 걸어갔다.

녹이 잔뜩 쓴 버스 정류장 표지판과 곳곳에 금이 가 있는 곧 헐릴 예정의 내가 사는 아파트는 듀엣 가수처럼 그럴 듯하게 서로 호흡이 맞아 보였다.

10여분 쯤 오지 않는 마을버스를 기다리며 서 있는데 두툼한 검은 봉지를 든 아주머니 한 분이 나를 지나치며 물끄러미 쳐다봤다.

남의 시선이 익숙지 않은 나로선 무심하게 버스가 올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고 있었는데 아주머니는 내 앞에 우뚝 멈춰 섰다.

 

버스 기다려요?”

? ... ...”

여긴 이제 안 와요.”

?”

사람도 없는데 여기 왜 오겠어? 이 정류장은 없어졌고 저기 한 정거장 아래로 내려가서 타요. 거기까지만 운행한다고 하니까...”

 

아주머니는 그렇게 말하고는 다시 걸어가기 시작했다.

나는 한숨이 나왔다. 조금 있으면 집을 잃게 생겼는데 난 이제 버스 정류장마저 잃어버린 것이다.

별 수 없지.

난 길을 따라 언덕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7

 

 

경찰서에 도착해 들어가면서 나는 그 육중한 위압감에 잠시 기가 죽었다. 지은 죄가 없어도 경찰서라는 곳은 확실히 오기가 꺼려지는 곳이다.

여기 저기 사람들에게 물어봐 최형익 형사를 만날 수가 있었다. 40대 중반쯤으로 보이는 그는 형사라는 직업과는 어울리지 않는 어딘가 조용한 산중에 묻혀 글을 읽는 선비의 모습을 연상시켰다. 그가 웃음을 지을 때마다 난 난데없이 하회탈 생각이 났다.

 

저는 사실 시인이 되고 싶었습니다.”

 

내가 하고 있는 일이 만화를 그리는 것이라 밝히자 그는 뜬금없이 그렇게 말했다.

 

대학 때까지는 곧잘 썼었거든요. 상도 받은 적이 있었죠.”

 

시를 쓰는 형사라. , 이상할 건 없었지만 어딘가 어울리지 않는 구석이 있는 것은 사실이었다.

 

어디에 연재를 하고 계신 겁니까?”

 

나는 이름 없는 인터넷 사이트라고만 대답을 했다.

 

채화연씨를 정말로 모르십니까?”

 

슬슬 그가 본론을 꺼내자 나는 혹시 변호사라도 구했어야 했는 게 아닌가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정말로 기억에 없는데요. 그런데 그 여자가 누군가요?”

 

그는 잠시 나를 우두커니 보더니 쓰레기통에 캬악하고 가래침을 뱉었다. 속이 울렁거렸다.

 

채화연씨는... 올해 34살로 우체국에서 근무하고 있던 여성입니다. 거기서 일한지는 한 2년 정도 되었다고 하더군요. 집은 신림동이고 혼자 자취를 하고 있었습니다. 원룸에서 말이죠.”

 

주절주절 그는 말했지만 도대체 그게 나와 무슨 상관이 있는 건지 난 도저히 감도 잡을 수 없었다.

 

그 여자가 날 안다고 하던가요?”

 

내말에 형사는 한동안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그녀는 죽었습니다.”

 

나는 그의 말에 잠시 머리가 멍해졌다. 기묘한 느낌이었다.

 

죽어요?”

. 죽었죠. 분명합니다. 아마 이미 가족들이 장례도 치렀을 겁니다.”

 

나는 어리둥절한 기분으로 책상위에 놓여있는 노트북을 바라보았다.

사람이 죽는 것이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니다. 하물며 경찰서에서 그런 말을 듣는 것은 그리 어색한 일도 아니다. 경찰도 늘 사람의 죽음과 상대하는 일인 경우가 적지 않다.

 

그럼 그 여자 분이 죽은 것이 나와 무슨 상관이 있다는 겁니까? 왜 저를 오라고 하신 거죠?”

 

그는 입술을 씰룩였다.

 

그것이.... 그녀의 방에서 일기장이 발견됐는데 거기에 전화번호가 아주 중요한 듯 적혀 있었습니다.”

그럼... 그 번호가...?”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영문을 알 수가 없었다.

 

전 정말 모르겠는데요. 왜 알지도 못하는 여자가 제 번호를 적어둔거죠?”

그건 오히려 저희가 묻고 싶은 거군요. 일기장엔 이렇게 적혀 있었습니다. ‘그에게 연락을 해야 한다. 그의 전화번호를 이제야 알 수가 있었다.’ 하도 들여다봐서 거의 외워 버렸군요.”

 

그는 다시 하회탈 같은 미소를 지어보였다.

 

하지만 전 정말 그녀를 알지 못합니다. 처음 들어보는 이름인걸요. 제가 드릴 말씀은 그게 전붑니다.”

 

형사는 난감한 듯 나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곧 실망한 표정으로 입맛을 쩝 다셨다.

 

- 그거 참....”

더 이상 드릴 말씀이 없으니 이만 가 봐도 되겠습니까?”

 

그들이 날 여기에 붙잡아 둘 이유는 없었다. 난 빨리 이곳을 나가고 싶었다.

 

, 할 수 없군요. 혹시 나중에라도 생각나는 부분이 있다면 연락을 주시겠습니까?”

 

비교적 정중한 말투에 나는 그러마고 대답을 했다. 그는 자신의 명함을 나에게 건네주었다.

 

그런데... 그 여자가 죽었다구요?”

 

나는 호기심이 들어 물었다. 그는 메마른 목소리로 내 물음에 짧게 대답했다.

 

. 살해당했습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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