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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 소설 작업실

[창작 연재 소설] 길에서 만나다 - #1

by 멀티공작소 2018. 5.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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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꿈속에서 아마도 난 길을 걷고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 길은 여느 길과 다름없이 그냥 평범한 그런 길이었다. 바닥은 요즘에는 보기 힘든 보통의 흙길로 되어 있었고 길 양 옆으로는 여러 점포들이 쭉 늘어서 있었다. 그 중에는 슈퍼마켓도 있었고, 세탁소도 있었고, 미용실도 있었고, 조그맣게 음악이 흘러나오는 테이크아웃 카페도 있었던 것 같다.

지극히 평범한 길이었다. 예전에 세상 어디나 널려있던.

그런데 그 길을 걸으면서 앞을 바라보고 있는 나에게는 그 길의 끝이 보이지가 않았다. 길은 한도 끝도 없이 앞으로 뻗어 있었다.

나는 걸음을 멈췄다. 그렇게 멈춰 서서 그 끝도 보이지 않는 길을 잠시 바라보고 있자니 알 수 없는 슬픔에 가슴이 메어왔다. 갑작스럽게 방향 감각을 잃어버린 느낌이 들었다. 더듬이가 없어진 것이다.

그렇게 갈피를 못 잡는 슬픔에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을 때 난 눈을 떴고 꿈에서 깨어났다.

살짝 열려 있는 창문 틈으로 빗소리가 들려왔다.

어둠 속에서, 나는 손을 뻗어 휴대폰을 들고 전원 버튼을 눌렀다.

새벽 35분쯤.

가위에 눌려 깬 것은 아니었다. 이렇게 새벽에 비가 오는 날은 곧잘 눈이 떠지곤 한다. 아마도 빗소리가 의식을 일깨우기 때문인 것 같았다.

 

- 자다가 새벽에 듣는 빗소리가 좋아요.....

 

마치 광고 카피를 읽는 듯 한 목소리가 멍한 의식에서 울려 퍼졌다.

그 말은 누군가가 과거에, 생각도 나지 않는 먼 과거에 나에게 건넸었던 얘기 같았다. 그런데 그것이 누구였더라.... 다른 때 생각을 떠올렸었더라면 금세 알 수 있었겠지만 자다 일어나 아직도 몽롱한 머릿속으로는 떠올려 지지 않았다.

나는 천천히 침대를 빠져나와 창가로 가서 창문을 활짝 열었다. 희미하게 들리던 빗소리가 쏴-아하며 볼륨을 높였고 시원한 바람에 빗내음이 실려 와 폐 속 깊이 들어왔다. 상쾌했다. 잠 속에 빠져있던 몽롱함이 점점 뒷걸음질 치고 있었다.

나는 잠시 창가에 기대 어둠을 가르며 내려오는 빗줄기들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세상은 고요했다. 지구라는 별이 모두 잠들어 있는 것 같았다. 이 밤에 이렇게 수고하고 있는 것은 저 멀리 어둠 속에서 점점이 빛을 반짝이고 있는 전기 불빛들뿐이다.

나는 뒤돌아 방안을 살펴보았다. 날마다 보는 방안이지만 새삼 낯설음이 또 느껴졌다.

엄밀히 말한다면 이집의 주인은 내가 아니니까.

나는 슬며시 미소가 나왔다.

그 애.... 지금은 평범한 여고생으로 돌아간 그 애는 지금 무었을 하고 있을까. 아마 자고 있을 확률이 많겠지. 확률이라.... 확률로 따지는 세상. 인간에게는 거의 있을 수 없는 100%라는 것. 어디에나 반드시 존재하는 예외. 예외의 존재들.

아직도 그 애는 100일 만에 끝내는 영어를 들여다보고 있을까? 그리고 여전히 “I'm fool... 나는 풀이다. 찐득찐득한 풀이다.” 라고 읊조리고 있을까?

 

내가 전생에 마릴린 먼로였다는 것 알아?”

 

지금 생각해 봐도 확실히 그 애는 마릴린 먼로와 비슷한 외모를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 애는 그 사실을 알기나 하는 걸까. 전생의 자신이 겪었던 그 미스터리 한 죽음을.

인간의 죽음은 모두 미스터리한 부분을 가지고 있다. 아니, 정확히 말한다면 죽음 그 이후의 세계가. 사람은 죽음을 망각하고 살고 있지만 그것은 당연할 수밖에 없다. 인간은 타인의 죽음만을 볼뿐 자신의 죽음을 자신의 눈으로 볼 수는 없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그건 자신의 일이 아닌 거다.

비 내리는 새벽에 깨어나 어둠 속에서 죽음이란 걸 생각하고 있자니 공연히 스산한 기분이다.

난 다시 침대 위로 기어 올라가 이불 속으로 푹 몸을 담궜다.

그 애는 추방당했지. 여기서. 섬이라 곧잘 부르곤 했던 이 609호에서. 그리고 지금은 내가 다시 와있다. 모든 것은 변했고, 모든 것은 사라져 갔다. 모두 어디로 가버린 걸까.

 

그거야 나도 모르지. 언젠가, 어딘가로 무엇이든 사라질 수 있는 거야....”

 

그 애의 목소리가 어둠 속에서 내 귓가에 속삭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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