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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로운 영화관

뮤직 박스(music box.1989)-가족과 역사의 비극적 진실게임

by 멀티공작소 2010. 12.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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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드라마의 틀을 지니고 있는 <뮤직 박스>는 결국 한 가족의 비극적인 드라마이자 아직도 해결하지 못한 채 흘러가고 있는 역사를 되새기게 하는 역사 드라마이기도 합니다.

 

아울러 일제 36년의 역사적 시기를 겪고 아직도 친일파의 존재를 깔끔하게 해결하지 못한 채 넘겨버리고 있는 한국이라는 나라에 이 영화는 사뭇 의미심장한 내용을 던져 주기도 하는 영화이기도 하지요.

그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선 먼저 영화의 내용을 좀 파악할 필요가 있을 듯합니다.  

 

미국에서 일류 변호사로 활동하는 앤(제시카 랭)은 헝가리에서 이민 온 아버지 마이크(아민 뮬러-스탈)와 함께 평온하게 살고 있습니다. 어느 날 앤은 법원으로부터 자신의 아버지 마이크가 과거 헝가리에서 2차 대전 중 독일 나치의 ‘애로우 크로스’라는 경찰조직원으로 많은 양민을 학살하였고 이를 숨긴 채 미국으로 불법 이민을 했다는 통지를 받게 됩니다. 헝가리 정부로부터 전범으로 고발을 당한 마이크는 이제 미국에서 쫓겨나 헝가리 정부의 처벌을 받아야 할 처지가 되어 버린 것이죠.

아버지와 잘 지내던 앤에게 이는 말도 안 되는 청천벽력의 통보였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아버지가 누명을 쓰고 모함을 받는 것이라 믿고 즉각 재판을 시작하면
서 헝가리까지 날아가 조사를 하는 열의로 결국 무죄를 얻어내고 재판에서 승리하게 됩니다.

 

 

앤과 마이크는 무죄를 받은 기쁨의 파티를 열죠.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앤은 아버지 친구의 유품인 뮤직 박스에 담긴 물건을 통해서 결국 아버지의 감춰진 진실을 알게 됩니다.      

내용을 보시면 알겠지만 재미있는 것이 이 영화의 시나리오를 가지고 그대로 한국이라는 나라에 적용해서 생각해보면 흥미로운 드라마가 나올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나치 전범이 친일파 인물로 바뀌는 것만 한다면 말이죠. 하지만 차이가 있습니다.

2차 대전 후 각국에서 나치와 그에 협력한 전범들에 대한 전후 처결이 이뤄지고 지금까지 추격을 벌이며 진실을 규명하려 하는 반면 한국에서는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아니 오히려 화합운운을 하며 면죄부를 주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렇게 엄청나게 많은 (예전 나온 친일파 인명사전만 보더라도) 일제 치하에서의 반민족적 인사들을 여전히 해결하지 못한 채 현재까지 오고 있다는 그 사실. 한 술 더 떠서 오히려 그들이 기득권을 쥐고 여전히 이 나라에서 자신들의 기득권을 행사해 오고 있다는 사실. 이것이 참으로 역사적 비극이지 않은가요?

 

그렇게 설렁설렁 인정 많았던(우리가 남이가 식의) 처리가 지금 이 나라, 이 민족의 꼬라지를 이렇게 만들고 있다는 이 통탄할 진실은 진실 된 역사 앞에 참으로 비극이 아닐 수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영화의 라스트에서 비로소 진실을 알게 된 앤이 결국 어떤 선택

을 하게 되는지 보여 지는 묵직한 결론의 그것을 우리 현실에 맞추어 되새겨볼 필요가 있는 것은 아닐런지요. 

 

예전 포스팅을 했던 아트슈피겔만의 만화 ‘쥐’는 피해자의 시각에서 본 2차 대전의 가족사였다면 이 <뮤직 박스>는 가해자의 시각에서 본 2차 대전의 가족사라고 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전쟁이라는 거대한 회오리 속에서 한 인간은 지극히 나약한 존재일 것입니다. 하지만 인간에게는 선택이란 의지가 있죠. 물론 거대한 전쟁과 이념 대립의 광폭에 휩싸여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휩쓸려가 버리는 경우도 없다고 할 수는 없겠습니다. 하지만 인간이라는 존재의 기본적인 도덕과 양심, 그리고 윤리라는 것, 그것 앞에서는

적어도 스스로에게 부끄러운 것이 없도록 판단하고 행동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요.

 

때론 인간이기에 시행착오를 할 수 있는 스스로의 잘못된 행동과 판단이 있었다면 그것을 시인하고, 뉘우치고,
다시는 같은 잘못이 되풀이 되지 않도록 재단해 내야 하는 것, 그것 역시 필요한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진실을 가리고, 자신의 부끄러움을 부패한 권력과 비열하고 부정한 힘 뒤로 숨어버리는 것은 분명 잘못된 인간의 모습일 겁니다.

 

‘하늘 아래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바라는 것이 사람의 마음이겠지만 그것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닐 것입니다.

하지만 그 부끄러움 앞에 당당하게 나와 그것을 인정하고 뉘우치는 모습을 보이는 것 또한 진정한 용기가 필요한 일일 것이고 사람의 의무일 겁니다. 하지만 그 용기는 쉽게 발휘될 수 있는 것이 아님을 우리는 삶을 통해, 이 영화를 통해 아마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덧붙임 하나! 

다음(DAUM)의 영화 정보를 보니 한국 개봉이 1990 2 24일로 되어 있군요. 그런데 왜 등급이 청소년 관람불가였을까요? 이 영화 어디에도 청소년에게 유해한 내용이나 장면이 있다고는 생각 들지 않는데 말이죠. 그저 짤막한 의문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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