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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 소설 작업실

[창작단편] 방문객

by 멀티공작소 2017. 1.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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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문객

 

 

그날은 상당히 무료한 일요일 오후였다고 생각한다.

아침에 잠에서 깨어나자마자 무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의 인생에서 얼마나 더 이렇게 따분하고 무료한 일요일을 맞게 되는 걸까? 그런 따분한 생각을 하면서 나는 자리에 일어났고 베란다에 나가 나와는 아무 상관없는 날씨를 확인했다.

화창했다. 만약 내게 가족이 있고, 또는 사랑하는 연인이 있었다면 기를 쓰고 밖을 나가려고 했을 것이다. 역사적 사명까지 운운하면서. 하지만 그런 것은 없었다. 지긋지긋한 따분함 외에는.

 

어쨌든 뭐라도 해야겠기에 그동안 일 때문에 하지 못했던 빨래를 하고 제일 가까운 슈퍼로 가 떡볶이 재료를 샀다. 떡볶이? 그저 불현듯 떡볶이를 먹고 싶어서였는데 선택은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몸을 좀 움직이니 그럭저럭 시간이 오후로 넘어가고 있었다.

 

조금은 맵게 된 떡볶이를 꾸역꾸역 먹고 나서 -그럼에도 남아버렸다- 다시 침대에 누워 책을 보다가 문득 평일에 그렇게 바쁘던 사람이 일요일이라고 이렇게 달라진다는 것은 어쩐지 기묘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뫼비우스의 띠 같군. 조금씩 다른 위치지만 가다보면 제자리다. 다른 사람들의 삶도 그럴까? 그런 무의미하게 생각되는 따분한 생각을 또 하며 부질없이 휴대폰을 확인하고 -역시 아무 변화가 없다!- 책을 막 덮는데 초인종이 울렸다.

 

집에 찾아올 사람이 있을 거라고는 전혀 기억되는 것이 없어서 그냥 잡상인 내지는 전도를 나온 교인이라 생각하고 좀 있으면 알아서 가시겠지, 모른 척 있었는데 웬걸? 초인종은 마치 누가 이기나 해보자 라고 선언이라도 하듯 계속 울려댔다.

나는 슬슬 짜증이 솟았다. 결국 나는 침대에서 몸을 일으켜 현관문으로 나가며 대단하군. 당신은 반드시 판매왕감이야! 아니면 전도왕!’ 하고 생각했다.

 

내가 다소 신경질적으로 현관문을 벌컥 열자 문 앞에 있던 사람은 흠칫 놀라며 뒤로 약간 물러섰다. 그곳에 서 있는 것은 지금까지의 내 생애에서 처음 보는 묘령의 여자였다.

어깨쯤 내려오는 단발을 약간은 뾰족하게 보이는 귀 뒤로 넘긴 채 고정시켰고 화려한 색깔의 브릿지가 인상적으로 보였다. 그리고 그녀는 반팔의 면 티셔츠에 진을 입고 있었는데 전체적으로 생명력이 넘쳐 보였다. 인상적인 것은 목에 가죽으로 된 띠를 두르고 있었는데 꼭 세일러 문을 연상시켰고 얼핏 봤을 때 나이는 고등학생쯤이 아닐까 싶었다.

그녀는 나를 보고는 큰 눈을 움츠리며 귀여운 눈웃음을 치고는 가볍게 목례를 했다.

 

누구시죠?”

 

내가 외모에 혹하지 않고 퉁명스럽게 말하자 그녀는 잠깐 주위를 둘러보고는 조용히 말했다.

 

괜찮다면 잠시 안에 들어가서 말씀을 드려도 될까요?”

 

나는 문의 손잡이를 잡은 채 잠시 그녀를 멍하니 바라봤다.

 

무슨 일이신데요?”

 

혹시 ....씨 아니신가요?”

 

어라? 분명히 내 이름이었다. 생전 처음 보는 여자의 입에서 내 이름이 나오는 소리를 들으니 나로서도 호기심이 생기지 않을 수 없었다.

 

. 이름은... 맞는데.... 누구시죠? 전 모르겠는데...”

 

나는 그렇게 물으면서 내 기억 속에 있는 인명사전을 계속 검색해 봤지만 눈앞의 여자는 도통 기억이 없었다.

그녀는 잠시 내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난감한 표정으로 지었다.

 

이렇게 서서 얘기하는 건 좀 곤란하네요.”

 

그녀의 말에 나는 잠시 생각하고는 그녀를 안으로 들어오도록 했다. 설사 그녀가 안으로 들어와 갑자기 돌변해 손들어! 한다 해도 실상 내 집에는 별로 가져갈 것도 없다. 아니, 내가 도둑이나 강도라면 아예 없다고 여길 것이다.

 

안으로 들어온 그녀는 잠시 집을 둘러보며 호기심 어린 눈빛을 하고 있을 뿐 별다른 행동을 보이진 않았다.

거실 겸 주방에 있는 간이식탁에 앉은 그녀는 자신이 들고 있던 가방을 식탁위에 올려놓고는 조용히 앉아있었다. 어쨌든 외부인이 왔으니 나는 집주인으로서 뭐라도 내놓는 것이 자연스러울 것 같아 그녀에게 차를 권했다.

 

커피가 아니라면 뭐라도 상관없습니다.”

 

꽤 공손한 말투로 그녀는 내게 말했고 나는 티백에 든 가루로 복숭아 홍차를 만들었다.

 

, 이제 좀 얘기를 듣고 싶은데요. 날 아시는 분인가요?”

 

내가 그녀의 맞은편으로 앉으며 차를 내려놓고 다소 급하게 말하자 그녀는 빙긋 웃었다.

 

물론입니다. 우린 아주 친한 사이였어요.”

 

나는 잠시 멍한 기분이 되었다. 친한 사이였다?

평소에 내 자신을 평가해 봤을 때 난 기억력이 그리 좋은 편이 아니라는 걸 스스로 알고 있었다. 하지만 사람을 기억하는 건 자신 있었다. 이름은 가끔 잊을지언정 한번 만난 사람의 외모는 잊지 않는다. 아무리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 만난다 하더라도. 그렇지만 눈앞의 그녀는 전혀 떠오르지 않았다.

 

그럼, 우리가 예전에 만난 적이 있다는 건가요?”

 

그녀는 또 웃었다.

 

만난 적이 있는 것뿐만 아니라 함께 살았었죠.”

 

나는 점점 우롱당하는 기분이었다. 어이없는 웃음이 흘러나왔다.

 

함께 살았다고요?”

 

, 분명히 함께 살았었어요.”

 

그녀는 컵을 들고 차를 한 모금 마셨다.

, 나는 머릿속이 뒤죽박죽 돼버리는 기분이 되었다. 내가 아는 기억의 한도 내에서는 난 분명 여자와 동거를 해본 적이 없다. 내가 좋아하는 목련에 걸고라도 그런 일은 맹세코 없었다.

 

하지만 전.... 도무지 기억이 나지 않는데요....?”

 

그녀는 식탁위에 자신의 두 손을 가지런히 올려놓고 짧게 한 숨을 쉬었다.

 

제가 얘기를 하게 되면 아마도 좀.... 당황하시거나 놀라게 되실 거 같기는 합니다만 일단 찾아온 목적을 말씀드리려면 얘기를 해야 하는 것이 순서이니까 사실을 말씀드리도록 할게요. 전 과거에 였습니다.”

 

나는 잠시 그녀를 멍하니 쳐다봤다.

 

실례지만....?”

 

개요. 아마 영어로는 ‘dog’ 라고 하죠?”

 

나는 어이없는 표정으로 그녀를 보고 있었다. 따분한 일요일 오후에 갑자기 찾아온 한 여자가 자신을 과거에 개였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분명 내 귀에 이상이 없다는 것은 확인했다. 난 팔짱을 끼고는 그녀를 빤히 보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이것을 어떻게 받아 들여야 할까.

 

물론, 이 말이 어이없는 얘기라는 건 저도 알아요.”

 

당연히 그렇다. 내가 생각하는 개의 모습이 틀림없다면.

그녀는 의외로 차분한 음성으로 말하고 있었다.

 

오해는 말아주셨으면 합니다. 저는 정신병자도 아니고 그렇다고 동물 애호가나 상징적인 의미로 말씀드린 게 아니에요. 말 그대로 전 과거에 개였습니다. 지금부터 약 24년 전쯤 되겠네요.”

 

비교적 또렷하게 말하는 그녀의 언행이나 눈빛으로 봐서는 그녀의 말대로 도저히 정신병자 같은 느낌은 들지 않았다. 일단 나는 그녀의 말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얘기를 해보자고 생각했다.

 

좋습니다. 그렇다면.... 어떤 종()이었죠?”

 

얘길 하고나서도 난 내 이마를 딱! 치고 싶었다. 맙소사. 이런 마당에 종이라니?

 

, ()이요. 후에 인간이 되고서 알게 됐지만 사람들은 좋은 말로 토종견이라는 말을 쓰더군요. 또는 잡종이라고도 하고. 최고로 안 좋은 말은.... 아시죠?”

 

나는 그녀가 지칭하는 것이 X개를 얘기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 물론 나는 그 말을 함부로 내뱉을 수는 없었다. 그녀에게 있어선 그건 가문을 욕하는 것이나 마찬가지 아닌가?

좋아. 일단 인정해 보자.

 

그런데 어떻게 개에서 사람이 될 수 있었습니까?”

 

무엇보다도 난 그것이 신기했다. 그리고 그 방법이 너무나도 궁금했다. 문득 생각나는 것은 단군 신화였다. 그녀도 마늘과 쑥을 들고 햇빛이 안 드는 동굴에서 100일 동안 보냈던 건가?

그녀는 그런 내 생각을 알아채기라도 했는지 나를 보고 방긋 웃고는 말했다.

 

이렇게 얘기하면 좀 허무하실지 모르겠지만 어느 날 그렇게 돼버렸습니다. 아무런 징조도 없었어요. 단지 얘기한다면 제 자신이 인간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강렬한 욕망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 전부죠.”

 

허어- ”

 

나는 그렇게만 반응을 보이고는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뭔가 일이 있었지만 혹시 기억을 못하는 것일 수도 있지 않을까요?”

 

내가 팔짱을 끼고 뭔가 추리를 하는 행동을 취하며 그렇게 말하자 그녀도 수긍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수도 있겠죠. 만약 구체적인 그 방법을 안다면 제가 다른 제 동족들에게 알려줄 수도 있었을 테니. 누군가의 은총으로 그런 일이 벌어진 거라면 더욱 그랬겠죠.”

 

그랬을 것이다. 만약 내가 그런 능력을 갖고 있다면 당연히 그렇게 뒤처리를 했었을 것이다. 그렇게 해야 혼란을 일으키지 않았을 테니까.

하지만 그녀와 쭉 얘기를 나누면서도 난 완전히 믿기지가 않았다. 내가 지금 인간이 된 개와 얘기하고 있다니, 이거야 말로 지나가던 개가 웃을 일이 아닌가.

 

그렇게 생각을 하다가 일단 그녀가 개인지 아닌지에 대한 판단은 유보했다. 그 대신 나는 다른 궁금증을 물어 보았다.

 

좋아요. . 그 부분은 그렇다 치고 그런데 그 쪽이 내게 찾아온 이유는 뭘까요? 설마 아무에게나 내가 과거에 개였습니다, 하고 말하려는 건 아닐 테고.”

 

그녀는 내 말에 다소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설마요. 그렇게 광고하고 다닐 만큼 전 사람이 된 게 썩 좋지만은 않아요.”

 

죄송합니다. 제 말이 좀 과했다면....”

 

난 일단 사과했다. 그녀는 나를 똑바로 쳐다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 물론 제가 이곳에 당신을 찾아온 것은 이유가 있습니다.”

 

, 드디어 본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잠시 말을 멈추고 곰곰이 말의 순서를 정리하는 듯 생각에 잠겨 있다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이유를 말씀드리기 전에 다시 한번 여쭤보고 싶네요. 아직도 제 얼굴이 낯설어 보이시나요?”

 

나는 그 말에 그렇지 않아도 아까부터 어딘가 익숙한 구석이 있었음을 고백했다. 좀 전에도 언급했지만 난 비교적 사람을 기억하는 데에 일가견이 있었던지라 누군가를 만난 적이 있다면 금방 생각해 내고는 했는데 그녀는 기억이 날 듯 말 듯 하면서 좀처럼 명확하게 기억의 상자에서 끄집어 낼 수가 없었다.

 

도저히 모르겠군요.”

 

결국은 난 항복해버리고 그녀가 명쾌한 해답을 주길 기다렸다. 그녀는 시원한 미소를 떠올리며 말했다.

 

아까 우리가 함께 살았던 적이 있다고 말씀드렸었죠? 24년 전쯤에... 집에서 개를 키우신 적이 있었죠? 그것으로 얼마 전에 글을 쓰신 적도 있으셨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글을 발표한 지가 그렇게 오래되지 않아 나는 잘 기억하고 있었다. 그 글에서 나는 어렸을 때 키우던 개의 얘기를 썼었는데 지금도 나는 그때의 키우던 그 개에 대해 많은 것들을 떠올릴 수가 있었다.

그런데.... ! 그렇다면....

내가 놀란 표정을 지으면서 그녀의 얼굴을 뚫어질 듯 쳐다보자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재밌다는 듯 웃었다. 맙소사!

 

맞아요. 그때 그 키우시던 개가 바로 저예요. 당신이 나의 주인이었던 거죠.”

 

나는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그녀를 멍하니 바라봤다. 24년 전 키우던 개가 사람이 되서 지금 주인 앞에 와있다?

내가 도저히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을 짓고 있자 그녀는 잠시 손목에 찬 가는 굵기의 시계를 흘낏 보고는 다시 얘기를 계속했다.

 

“24년 전의 주인을 다시 찾아온 이유는 오해를 풀고 싶었던 것이 있기 때문이에요.”

 

나는 당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마땅한 얘기가 떠오르지 않았다. 이거 반갑다고 머리라도 쓰다듬어 주어야 하는 건가 하는데 그녀의 말을 들으니 다시 한번 의아했다.

 

오해?”

 

. 얼마 전 글에도 쓰셨던 그 사건에 대한 오해죠.”

 

그녀가 말하는 그 사건이란 내가 과거 키우던 개에 대한 글에서 언급했던 그 일을 얘기하는 듯 했다. 그것은 내가 어렸을 때 키우던 개와 있었던 일화였는데 대강의 내용은 이랬다.

 

- 개였던 그 당시의 그녀의 이름은 이거였다 - 을 키우던 그때 나는 여섯 살쯤 되었을 무렵이었는데 한참 유치원에 다니고 있을 무렵이었다. 유치원에서 나는 어떤 또래의 여자아이를 굉장히 좋아했었는데 이를테면 내 최초의 첫사랑이라고 할 수 있었다.

 

한번은 그 애를 집으로 데리고 왔는데 그때 쫑이 그 아이를 문 사건이 발생했다. 어찌 보면 단순하게 처리될 수도 있었던 일이 그 여자 아이의 어머니가 들고 일어나면서 사건은 커졌고 결국 우리 집에서 치료비를 물어주면서 쫑을 딴 곳에 팔아 버리는 선으로 일은 마무리가 되었다.

 

그 이후로 당연한 일이겠지만 난 쫑의 소식을 듣지 못했다. 솔직히 그렇게 궁금하지도 않았던 것 같다. 좋아하는 여자아이를 물어 버린 개를 어찌 좋아 할 수가 있겠는가?

 

그 일화를 글로 쓰면서 말하고자 했던 것은 동물도 인간처럼 질투를 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것이 요지였다. 나중에 생각해 보았을 때 난 그때 잘 따른 던 개가 갑자기 그렇게 돌변한다는 것이 그것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그때 일을 떠 올리는 내 얼굴을 보고 알아채기라도 하는 듯 싱긋 웃고는 말했다.

 

분명히 말씀드리지만 전 그때 질투를 했던 것이 아니에요.”

 

그녀는 강조하듯 내게 말했다. 나는 그때의 일을 떠올리면서 흥미롭게 물었다.

 

그렇다면 왜 그랬던 거죠?”

 

내가 반문하자 그녀는 곧바로 말했다.

 

전 알고 있었거든요. 지금처럼 되리라는 것을. 그 여자아이를 좋아하게 되면 주인인 당신에게 아주 안 좋은 영향이 갈 것이라는 것을 말이죠.”

 

나는 그녀의 말을 생각해 보았다.

 

내가 그때 예감했던 것은 그 여자 아이로 인해 앞으로 당신의 인생에 영향을 끼치게 될 큰 상처를 받게 될 것이라는 거였어요. 그리고 결국 그렇게 돼버렸죠. 안 그런가요?”

 

 

그녀가 말하는 의미를 조금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글에는 언급을 안했지만 그 이후 난 그 여자아이와 헤어지게 됐었다. 쉽게 말하면 차인 거라고 볼 수 있는데 6살 꼬마에게 그게 뭐 대수로운 것이랴 하겠지만 나의 경우는 그 후유증이 좀 심각했다. 그리고 지금까지 그것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생각했다.

 

난 잘 인지하지 못했지만 그녀의 말이 맞는 듯싶었다. 난 아직도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고 그것으로 인해 상처 받는 것에 큰 두려움이 있다. 그래서 사람이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에 몹시 회의적이고 어쩔 땐 냉담하기까지 하다.

 

난 막으려 했지만 결국 결과는 그렇게 되지 못했죠. 당신은 사람을 사랑하는 능력을 그때 상실하게 된 거예요.”

 

왠지 가슴 한구석이 답답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그녀는 덧붙였다.

 

그때 내가 할 수 있었던 건 그게 전부였죠. 하지만 결과를 바꾸지는 못했구요.”

 

나는 몹시 담배가 피우고 싶어졌다. 하지만 난 담배를 끊은 지가 벌써 6개월이 다 돼가고 있었다. 손끝이 떨리면서 마음이 쓰라렸다. 6살 아동기의 첫사랑의 실패가 지금의 내게 이렇게 큰 슬픔으로 다가올 줄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당신은.... 어떻게 그런걸 알 수 있었죠?”

 

내가 메마른 목소리로 묻자 그녀는 약간 고개를 떨구며 말했다.

 

그 당시의 난 개의 평균 수명으로 따지면 인간의 50대 정도 나이였어요. 모든 걸 어느 정도 관통한 때였죠. 게다가 아시겠지만 개는 인간에 비해 놀라운 청각과 후각을 가지고 있어요. 주위 공기에 예민한 거예요. 그리고 무엇보다 주인에게 충성을 다하죠.”

 

나는 씁쓸히 웃음을 지었다.

 

 

그래서 당신은 내가 당신에게 갖고 있는 그 오해를 풀려고 왔다는 거군요. 24년 만에 이렇게 인간이 되어서.”

 

물론 그게 큰 거죠. 아직도 개로서의 자존심이 조금은 남아 있기 때문에 그런 거겠지만 단지 그것만은 아니에요. 전 주인이었던 당신이 제대로 사람에 대한 사랑을 할 수 있기를 바라는 거예요. 아마 이것도 예전 개로서 가지고 있던 마지막 충성심쯤 되겠네요.”

 

나는 어쩐지 반감이 들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감동스럽기까지 했다. 나는 잠시 탁자위에 두 손을 모은 채 가만히 들여다보다가 미안한 표정으로 말했다.

 

우리 가족들을 많이 원망했겠군요.”

 

그녀는 한번 웃고는 고개를 저었다.

 

곧 탕으로 만들어질 정도의 위기에 처했지만 간절한 바램이 이루어 졌으니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이 없는 거죠.”

 

그녀와 나는 잠시 침묵을 지켰고 잠시 후 그녀가 손목에 찬 시계를 다시 한번 보고는 의자에서 일어섰다.

 

 

이제 그만 가봐야겠네요.”

 

어디로 가는 거죠?”

 

내가 묻자 그녀는 대답 없이 웃기만 했다. 그리고는 현관 쪽으로 걸어갔다.

현관문을 열고 밖으로 막 나가는 그녀의 뒤에서 내가 마지막으로 물었다.

 

인간이 된 게 좋은 가요?”

 

그러나 그녀는 천천히 몸을 돌리고 나를 향해 돌아섰다. 그리고는 잠시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고는 얘기했다.

 

아마도 인간다워 질 수 있다면요.”

 

그녀는 의미심장한 웃음을 지으며 아파트 복도를 걸어가 곧 모퉁이로 사라졌다.

나는 문을 닫고 탁자로 돌아와 의자에 앉은 채 그녀가 마시고 간 립스틱 묻은 찻잔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무료한 일요일 오후에 방문한 그녀와의 대화는 나에게 많은 것을 시사하는 바가 있었다.

하지만 난 아직도 자신할 수가 없었다. 여전히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에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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