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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 소설 작업실

[창작 단편] 사랑의 식욕

by 멀티공작소 2016. 12.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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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사랑의 식욕

 

 

 

 

 

가든파티는 따분했다.

 

애초부터 파티초대라는 것을 받았을 때부터 뭐 그리 기대를 했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한 시간쯤 지나자 나는 도대체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것인가 하는 괜한 자괴감마저 들기 시작했다.

 

한 가지 그나마 위안이 되는 것은 억지로 사람들과 대화를 하고 있지 않아도 분위기가 그다지 어색하지는 않다는 것, 그리고 해질 무렵 정원의 미묘한 빛깔로 그럭저럭 주위의 풍경이 편안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다행스러운 건 음식이 비교적 쓸만하게 맛있다는 거였다.

 

뷔페식으로 차려져 있는 음식은 종류도 매우 다양했고 실력 있는 요리사가 조리를 했는지 그 맛도 상당히 흥미로웠다. 입맛이 까다로운 내 식성에도 거부감이 없었으니 말이다.

 

먹을 것도 먹을 만큼 먹었으니 슬슬 꺼져줘야겠다고 생각하며 몸을 일으키는데 파티의 주인공인 그녀와 함께 어떤 낯선 사내가 내게로 다가왔다.

 

여기 있었구나? 못 올 줄 알았어.”

 

오늘 파티는 그녀의 영화제 주연상을 축하하는 자리였다.

 

영화배우인 그녀를 내가 알게 됐던 건 그녀가 연기자의 길을 걸어가기 훨씬 이전이었다.

대학 다니던 시절 영화 동아리 활동으로 우리는 알게 됐었다. 이성간이긴 했지만 죽이 잘 맞았고 별 볼일 없는 작품이긴 했지만 그녀는 내가 연출을 했었던 단편영화에서 주인공을 하기도 했었다. 지금은 원본이 어디로 사라져 버린 지도 알 수 없는 작품이지만 그 작품을 하면서 그녀와 더욱 가까워졌던 것은 분명했다. 그리고 그렇게 꾸준히 지내온 게 어느덧 수년이 됐고 그녀는 배우로 점차 얼굴이 알려지면서도 내게 간간히 연락을 해오고는 했었다.

오늘 파티 역시 내가 굳이 올 자리는 아니었지만 그녀가 얼굴이나 보자면서 초대를 했었던 것이다.

 

별로 재미없지?”

 

그녀는 장난기 어린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유명인들 보는 재미는 있지.”

 

그녀는 내 말에 쿡 웃고는 옆에 서 있던 허우대가 멀쩡한 사내를 돌아보며 말했다.

 

인사해. 비공식 내 남친.”

!”

 

나는 그와 인사를 나누며 악수를 나눴다.

그는 나의 손을 잡고는 씩 미소를 짓고는 자신의 이름을 말했다. 사람 좋은 인상이라는 표현의 전형을 보여주는 듯 했다.

 

잠깐 다른 쪽에 인사 좀 하고 올 테니 얘기 좀 나누고 계세요. 두 사람....”

 

그녀는 연기할 때와는 다른 지극히 자연스런 눈웃음을 하고는 다른 사람들이 모여 있는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확실히 그녀는 어떤 행동을 하건 배우로서의 자기 에너지가 충만한 느낌이 풍긴다.

그와 나는 잠시 그녀의 뒷모습을 보고 있다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자리에 앉았고 그는 얘기도 하지 않았는데 내 빈 잔에 맥주를 따라주었다.

 

남자친구가 있는 줄은 몰랐는데요?”

 

내가 가볍게 말하자 그는 잠시 무슨 말인가 생각하더니 자신이 들고 온 진 토닉을 한 모금 마시고는 입 끝을 올렸다.

 

좋은 여자입니다. 우린 결혼을 생각하고 있죠.”

 

그는 시원스럽게 말하고는 내게 다가와 조그만 소리로 덧붙였다.

 

기자들에게는 아직 비밀입니다.”

 

나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파티는 어떠신가요?”

 

나는 그의 물음에 잠시 주위를 둘러보고는 어깨를 으쓱했다.

 

나쁘지는 않지만 제 취향에 그렇게 맞지는 않아서.... 음식이 맛있어 그나마 다행이라 생각하던 중이었죠.”

 

그렇군요. 확실히 여기 음식은 좋습니다.”

 

그는 인정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식탁 위로 펼쳐져 있는 음식을 한번 쭉 훑어봤다.

 

그런 그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불쑥 내 머릿속에는 재단사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왜 그 말이 떠올랐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그의 말끔한 외모와 칼날 같은 이미지가 반듯하고 절제 있게 느껴져서 그랬던 것 같다.

 

하지만 최고라고 부를 정도는 아니죠.”

 

그런가요?”

 

확실히 그렇습니다. 전 최고의 음식을 여러 번 먹어본 경험이 있거든요.”

 

그는 꽤 확신 있게 말했지만 난 대수롭지 않게 받아 들였다.

 

어차피 음식 선택의 기준도 사람마다 제각각의 취향인지라 서로의 기준이 얼마든지 다를 수 있는 거라고 생각하고 있으니까.

 

그건 어떤 음식이었나요?”

 

그다지 궁금하진 않았지만 얘기를 계속이어가야겠다는 생각에 내가 물었다. 그러자 그는 정말로 그 맛을 결코 못 잊겠다는 표정으로 감회에 젖는 듯하더니 조용히 말했다.

 

사랑이죠. 더 정확히 말하면 지극한 사랑이 깃든 음식.”

 

사랑하는 사람이 만들어준 음식이군요?”

 

아니죠. 사랑하는 사람이 음식입니다.”

 

나는 무심코 고개를 끄덕이다가 동작을 멈추고는 그의 얼굴을 멍하니 응시했다.

 

방금 뭐라고....?”

 

그는 나를 보며 씩 웃고는 주위에 서 있는 여자들을 쳐다봤다.

 

사랑하는 여자를 먹어보셨나요?”

 

사랑하는 여자를 먹어?

 

, 죄송합니다. 표현을 하자니 어째 저속한 성적 표현같이 돼 버렸군요. 제가 말씀드린 뜻을 아시겠죠?”

 

그래서 더더욱, 나는 할 말을 잊어버렸다.

 

그런데 나는 잠시 그를 바라보며 생각하다가 곧 피식 웃음을 지었다. 나는 그가 농담을 하고 있는 것이라 여겼다. 그렇게 생각하니 나는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 말했다. 까짓 거 받아줘 버리면 되지, .

 

.... 먹는다는 게 혹시 식인(食人)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맞습니다!”

 

그는 만족스런 미소를 지었고 나는 흥미롭다는 표정을 지었다.

 

제가 듣기론 글을 쓰신다고 얘기를 들었는데 제 이런 얘기가 꽤 흥미롭지 않으신가요?”

 

아주 잠깐 어쩔까 하다가 난 고개를 끄덕였다.

 

흥미롭습니다. 자세히 듣고 싶군요.”

 

그는 가까이 있는 얼음을 꺼내 잔에 넣고는 다시 한 모금을 마셨다.

 

지금까지 세 번의 음식이 있었죠. 음식의 재료가 된 그녀들은 모두 제가 무척 사랑하는 여성들이었습니다.”

 

다른 사람은 안 먹습니까?”

 

묻기는 했지만 어쩐지 멍청한 질문 같았다. 그는 웃음을 지었다.

 

전혀요! 전 식인종이 아닙니다! 아무나, 아무거나 먹는 것이 아닙니다. 음식이라고 표현은 했지만 제가 먹은 건.... 뭐랄까요, 그야말로 극대화된 사랑의 식욕 같은 거라 할 수 있겠죠.”

 

그러니까 상대를 사랑하는 것이 증폭되어 거침없는 식욕으로 발전한다는, 그런 의미 인가요?”

 

내가 추리하듯 그렇게 말하자 그는 감탄의 표정을 지어 보였다.

 

맞아요. 역시 표현이 좋으시네요. 그런 거죠. 조금 합리화 시켜서 말하면 난 그녀들을 너무도 사랑한 거죠. 너무나 사랑한 나머지 먹고 싶은 식욕이 일어난 겁니다. 완벽한 하나. 서로 다른 두 육신이 하나의 피와 살로 되어지는 그것. 바로 그거인 겁니다. 그녀들과 나. 둘 중 누가 누구를 먹는다고 해도 솔직히 전 상관없었습니다. 첫 번째 사랑했던 여자에게 그런 얘기를 했었죠. 하지만 그녀는 날 먹는 것을 거부했습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제가 먹었죠. 두 번째, 세 번째 여자도 마찬가지였지만.”

 

상상해보면 끔찍한 일이지만 그의 말은 묘하게 설득력이 있었다. 너무나 사랑했기 때문에 완벽한 하나가 되고 싶어서 먹었다, ....

 

먹은 후에.... 그러니까.... 뭐랄까, 후회나 죄책감 같은 건 들지 않던 가요?”

 

내가 조심스럽게 묻자 그는 곧바로 아니라고 대답했다.

 

전 오히려 이보다 더 아름다운 사랑은 없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 어떤 사랑의 짜릿한 쾌감도 그 행위를 따라올 수가 없죠. 전 확신합니다. , 그런 동물들도 있잖습니까? 교미가 끝나면 수컷을 잡아먹는. 사마귀도 그렇고 검은 과부 거미(Black widow spider)는 거미의 이름을 보아도 알 수 있듯이 암컷이 교미하고 난 뒤 수컷을 잡아먹는 종이죠. 인간에게도 그런 욕구가 충분히 있다고 봅니다.”

 

허어, 거참...

나는 어쩐지 점점 그의 말이 사실로 받아 들여졌다.

 

음식으로서 사람의 맛은 어떤가요? .... 아직 그런 경험이 없어서....”

 

그는 잠시 소리 내서 웃고는 부드러운 음성으로 차분히 말했다.

 

어떻게 조리를 하느냐에 따라 다릅니다. 그리고 사람으로 만들 수 있는 요리는 수십 가지도 가능하죠. 각각의 특성이나 부위에 따라 다르겠지만 제 취향에는 옆구리에서 허벅지로 이르는 부위가 가장 맛있었습니다. 대부분 여성들이 많이 신경 쓰는 부위라 지방도 적절히 포함되어 있고 육질도 부드러운 게 아주 좋죠. 그곳을 기름에 살짝 튀겨 제가 개발한 양념소스로 함께해서 먹으면.... , 정말 기가 막힙니다.”

 

그의 말에 나도 모르게 군침이 살짝 돌았다.

 

, 그리고 뇌가 있군요. 뇌는 조리법이 한정돼있고 만들기가 까다롭지만 다른 요리에서는 맛볼 수 없는 세상 하나밖에 없는 맛을 선사해 주는 곳입니다. 굉장히 내실 있는 음식 재료랄까.... 가장 영양가 있고 또 형이상학적인 의미가 있는 부위입니다.”

 

나는 그의 얘기에 계속 몰입해 있다가 주위를 지나다니는 사람들의 모습을 지켜봤다. 어쩐지 살코기들이 걸어 다니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재밌기도 했지만 끔찍하기도 했다. 너무나 비현실적인 얘기고.

 

문득 그녀의 얼굴이 떠올랐다.

 

내 친구인 그녀는 그런 사실을 알고 있나요?”

 

설마요. 이런 건 솔직한 거지만 떳떳한 건 못되는 거죠.”

 

나는 그녀가 어쩐지 걱정스러워졌다.

 

마지막으로 그 식욕을 발휘한건 언젠가요?”

 

그는 잠시 생각해 보고는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그 최고의 맛을 본 게 벌써 삼년 전 얘기군요.”

 

혹시 그건 주기 같은 게 있는 건가요?”

 

그런 건 아니죠. 인간의 사랑엔 주기라는 것이 없잖습니까?”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농담처럼 웃으며 그녀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런데.... 설마 그녀도 먹으려는 건 아니시겠죠?”

 

그는 잠시 나를 물끄러미 보더니 고개를 저으며 부드럽게 웃었다.

 

그녀는 아름답고 좋은 여자죠. 전 그녀를 좋아하긴 하지만 아직 사랑까지는 아닙니다. 앞으로는 모르겠지만...”

 

그럼 사랑하게 되면 먹겠다는 얘기?

 

나는 그녀가 걱정스러웠고 어쩐지 그가 두려워졌다. 차라리 그녀가 이 사람과 헤어져 버리는 게 낫지 않을까 싶었다.

 

그런 마음으로 나는 그가 다른 여자에게 시선을 가져갔으면 좋겠다는 어렴풋한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 혹시 오늘 여기 오신 여자분들 중에 맘에 드는 다른 여성분은 없나요?”

 

나는 적당히 그의 눈에 찰 여자들을 마음속으로 서너 명 꼽은 후 그에게 적극 추천 하리라 생각을 하고는 그렇게 물었다.

 

그는 정원 여기저기에 있는 여자들을 쭉 한번 보고는 나를 돌아보고 눈빛을 빛내며 조용히 웃었다.

 

아까부터 맘에 든 분이 한 분 있긴 했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여자가 아닙니다.”

 

그렇게 말하고 그는 자신의 창백하고 부드러운 손을 탁자위에 놓인 내 손등 위로 조용히 감싸듯 올려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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