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이 소설은 분량이 그렇게 긴 작품은 아닙니다. 작가의 장편소설들 대부분이 좀 긴 분량을 가지고 있는 반면 이 소설은 상당히 콤팩트한 분량을 가지고 있죠. 그래서 상당히 속도감 있게 읽어 나갈 수 있고, 책을 읽는 데에 소비되는 시간도 그렇게 오래 걸리지 않습니다. 한 마디로 가독성이 뛰어난 소설이라 할까요. 하지만 그런 뛰어난 가독성은 단순히 분량에만 기인하지는 않습니다. 무엇보다 작가가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글의 형식과 드라마의 구성, 전개가 그만큼 흥미진진한 까닭입니다.
스토리에는 한국 사람들에게도 익숙한 소재인 아이에 대한 부모들의 교육열, 이것이 중요한 모티브이자 소재로 등장합니다. 조금 다르다면 대학입시가 아닌 중학교 입시라는 차이점이죠.
중학교 입시를 앞둔 남자 아이들 4명과 그 아이들의 부모들인 네 쌍의 부부, 그리고 아이들의 과외를 위해 함께 온 강사, 이들이 방학을 맞아 입시 과외 겸 휴가 겸 한적한 호숫가의 별장으로 오게 됩니다.
언뜻 보면 이 인물 구성이 복잡해 보일 수도 있지만 이야기의 주 흐름은 이들 네 쌍의 부모들을 중심으로 펼쳐집니다. 아이들은 거의 보이지 않다가 후반부에 가서야 제대로 등장을 하죠. 하지만 그나마도 이야기의 중심인물인 순스케의 의붓 아들인 쇼타만 돋보이는 편입니다.
작가의 스토리 구성의 전략적인 측면에서 본다면 (장르의 특성상) 이렇게 아이들을 후면에 가리는 것은 나중에 드러날 결과의 충격적인 진실에 더욱 임팩트를 주기 위함은 아니었겠는가 생각됩니다.
이러한 배경의 틀로 스토리는 조금씩 진행을 해 나갑니다.
스토리의 주인공인 순스케가 이 별장으로 오는 첫 부분부터 뭔가 쟂빛 하늘같은 비밀스러움이 번져 오죠. 아내인 미나코를 만나고 다른 부부들의 모습도 보면서 순스케는 점차 별장에서의 분위기를 익혀갑니다. 그런데 이곳으로 뜻밖에 순스케의 부하직원인 에리코가 찾아옵니다. 어쩐지 외부인의 침입 같은 그녀의 등장은 더욱 은밀한 느낌을 가중시키고 게다가 그녀와 순스케가 내연의 관계라는 사실은 독자로 하여금 흥미를 끌게 합니다.
그런데 그 에리코가 얼마 지나지 않아 살해당하고 맙니다. 여기서 이야기는 이제 본격적인 긴장감을 발휘하기 시작합니다. 에리코를 죽인 것이 순스케의 아내인 미나코라고 드러나게 되면서 부터요.
미나코는 자신이 에리코를 죽였음을 순순히 실토하고 순스케는 경찰에 자수를 설득하지만 뜻밖의 제안을 받게 됩니다. 바로 다른 부모들로부터죠. 상황을 모두 알고 있는 다른 부모들은 이런저런 이유를 들어 이 사건을 덮어 버릴 방법을 말합니다. 여기서 이 이야기는 크게 혼란스런 상황으로 빠져 들게 되죠. 주인공 순스케가 느끼는 혼란과 마찬가지로 말입니다. 그리고 이제 시신의 유기가 벌어지는 과정과 사건을 감추어 내려는 과정 속에 조금씩 상황은 예상치 못한 곳으로 튀어 버립니다.
이 소설의 매력은 바로 이러한 많은 신기루들로 독자들을 현혹하고 있다는 데에 있습니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사건의 진실을 가리기 위해 아주 영리한 신기루들로 이중 삼중의 막들을 쳐 놓은 것이지요.
그 막들이란 바로 이런 것입니다. 이 소설은 맨 처음 삼각관계의 치정극을 연상 시킵니다. 순스케와 미나코, 그리고 에리코의 등장으로 말이죠. 에리코가 살해되면서 그런 느낌은 더 강해지는데, 조금 더 진행이 되면 이번에는 어쩐지 부부들의 은밀한 스와핑이 있는 것 같은 분위기를 풍깁니다. 순스케도 그런 느낌 때문에 에리코에게 미나코의 조사를 부탁했던 거죠.
그리고 이제 에리코의 시신을 호수의 물속으로 암매장하는 과정에서 굉장히 하드보일드 한 느낌을 줍니다. 그리고 이제 순스케가 이 밤에 벌어지는 모든 상황들에 조금씩 의구심을 가지면서 추리물의 성격을 드러내죠.
그리고 이제 그러한 순스케의 추궁에 부모들의 고백이 이뤄집니다. 하지만 여기서 모든 진상은 드러나는 듯 하다가 또 한 번 미궁에 빠져 버립니다. 바로 아이들의 존재 때문에요.
자, 제가 이 소설을 앞서 굉장히 콤팩트한 느낌이라고 얘기했지만 이 콤팩트한 분량에는 실로 많은 이야기가 쉴새없이 커브를 틀면서 진행이 됩니다. 그래서 저는 이 소설에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들 중 굉장히 강한 인상을 많이 받았던 것이라 생각합니다.
게다가 이 소설은 한정된 공간과 시간, 그리고 한정된 인물들 안에서 벌어지는 사건과 이야기를 다루고 있죠. 이건 개인적인 취향이겠지만 제가 이런 요소들을 좋아합니다. 이런 요소들을 가진 스토리는 만들어내기는 어렵지만 그만큼 이야기의 집중도를 높이고 긴장감을 치밀하게 엮어낼 수 있는 장점들이 있죠. 이 소설은 그런 요소들을 아주 잘 만들어낸 수작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 소설에는 추리소설의 형식을 갖추고 있지만 형사나 경찰이 등장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보통의 부모들, 보통의 남녀들이 등장하죠. 그러다보니 그들이 사건을 맞닥뜨려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들이 경찰이나 형사, 탐정이 수사를 하는 느낌과는 다소 차이가 있습니다. 부모들 자신들이 모두 가해자이면서 피해자이기 때문에 그 뉘앙스가 사뭇 차이가 있죠. 그러한 점도 이 소설의 중요한 느낌 중 하나가 아닐까 합니다.
이런 이유들로 저는 이 <호숫가 살인 사건>을 같은 작가의 다른 소설들도 좋지만 유난히 좋아하는 편입니다.
엄밀히 말하면 이 소설은 입시라는 상황을 둘러싼 부모들의 지나친 교육열, 아이들의 과도한 서열의식이 빚어낸 하나의 살인극이라고 볼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이런 도식적인 테마에 작가는 다른 요소들을 첨가함으로 굉장히 다채로운 느낌의 소설을 만들어 낸 것이지요. 장황하지도 않으면서 말입니다.
소설은 살인을 다루고 그것을 추격하는 과정을 다루면서 혈연이 아닌 사회적 부자 관계인 순스케와 쇼타의 함께하는 장면들에서 애틋한 분위기를 만들어 내기도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소설은 가족을 배경으로 합니다. 당연히 부모, 자식, 부부 이런 인간적 관계들을 건드리면서 전진하죠. 그런 속에서 그 관계에서만 느껴질 수 있는 연민을 그리면서 말입니다.
이런 다양한 요소들을 하나의 작품 안에서 녹일 수 있다는 것, 그것이 아마도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가로서의 가장 큰 역량이겠죠.
이야기가 결말에 이르고 책을 덮으면 비로소 히가시노 게이고가 펼쳐놓은 막에서 빠져 나올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진실을 보게 됩니다. 그 진실을 보고 작중 인물에 공감을 할 수도 있고 못 할 수도 있겠지만 숨가쁘게 진행돼온 긴장의 여운은 뇌리에 남습니다.
아마도 이것이 그의 소설을 읽게 되는 묘미가 아닐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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