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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도서관

사랑이라는 이름의 치료약, <푸른 알약>

by 멀티공작소 2009. 12.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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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 가정해 보자...

 

남자인 당신의 눈앞에 한 여자가 나타난다. 그리고 조금씩 그녀에게 호감을 갖게 되고 결국 사랑에 빠질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그런데 어느 날, 그녀가 말한다.


“난 에이즈 환자에요...”


남자는 이 순간을 ‘절벽에서 떨어지는 아찔함.’ 이라고 생각한다...



<붓으로 쓱쓱 그린 듯 한 자유분방한 그림체가 인상적이다>

 



프레데릭 페테르스의 그래픽노블 <푸른 알약>은 자신의 실제 이야기다.


열아홉 살의 프레드는 자신보다 두 살이 많은 연상의 카티를 친구의 집에서 본 후 처음 호감을 느낀다.

그 후 6년 뒤, 그는 그녀를 우연히 다시 만나게 된다. 그때에 카티는 이미 혼자 아이를 키우고 있는 이혼녀. 이후로 그들은 점차 가까워지고 사랑이 조금씩 둘 사이에 물들어 간다.

그런데 이게 웬 청천벽력? 카티는 자신과 아이가 에이즈를 일으키는 HIV 양성 보균자라는 사실을 고백하는 것이 아닌가?


자,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당신이 만약 이런 상황이라면 당신은 어떻게 할 것인가?


만화 속 프레드는 그러한 물음에 쉽지 않은 선택을 한다. 그는 그녀를 에이즈라는 이유로 포기하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여기서부터 편견과의 싸움을 시작한다. 에이즈라는 것에, 스스로도 그렇고 타인들도 갖고 있는 그런 편견.


이야기 속에서 보이는 두 남녀의 사랑은 (특히 성적인 측면에서) 참으로 힘겨운 외줄타기 같은 느낌이다. 그토록 힘겹지만 두 사람은 담담하게 서로가 갖고 있는 서로의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려 한다. 이런 것이 사랑 아니겠는가?


에이즈란 소재를 다루고 있지만 이야기는 지극히 사적이고 내면적이다. 그리고 이 이야기를 보는 사람들에게 그들의 모습은 어쩐지 연민을 가지고 다가온다.

그들이 서로 평생 사랑하며 살아간다면 그들은 평생 콘돔을 착용한 채 콘돔이 찢어지지 않도록 신경 쓰는 “영원한 콘돔 형” (P106)을 선고 받은 채 관계를 가져야 하고 조그마한 건강의 적신호에도 그들은 함께 초조해 해야 한다. 남자는 에이즈에 감염된 게 아닌가 하는 불안함, 여자는 그런 남자에게 감염을 시켰다는 죄책감에 말이다.

이런 커플을 보고 있으니 어찌 연민이 가지 않을 수 있겠는가?




<에이즈에 걸릴 가능성을 코뿔소와 마주칠 가능성에 비유하는 의사의 말 직후 바로 이어지는 컷들. 두 사람, 특히 프레드의 심리적 상태를 나타내는 절묘한 그림이다> 

 



하지만 여전히 그들은 자신들에게 연민보다는 당신들의 편견을 먼저 거두어 줬으면 하는 바람을 갖고 있는 듯 보인다. 그 편견은 단순히 에이즈라는 질병 자체에 갖는 사람들의 오해도 있지만 그보다는 에이즈에 걸린 여자와 사랑을 하며 살고 있는 남자, 그들 커플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각에서 느껴지는 편견을 좀더 말하고 싶은 듯 보인다.

만화의 첫 장면부터 그는 항변하는 것이다. 

두 사람을 빗댄 듯 한 부조화라는 개념에 대해 “과학은 도무지 융통성이 없다”(P6)고 투덜대고 결국 두 사람은 “빌어먹을 의사들!”(P8)로 서로의 마음이 통한다. 하물며 사람들은 그 과학조차 확실히 알지 못한 채 온갖 분위기에 휩쓸릴 때가 많지 않던가?




<어쩐지 안정감을 주는 듯한 구도. 나른한 느낌이 묻어나는 것 같다>


만화 속 프레드는 아무래도 그러한 편견과 오해에 많이 질린 듯 보인다. 그들을 보는 사람들의 반응이 “하나는 우호적인 반응으로 이해하고 격려해주는 쪽이고, 또 하나는 이해하는 척 경계하는 쪽” 인 것이 아쉽고 자신들에 대해서 “사랑마저 계산기로 두드리려고”(P42) 하는 것처럼 말하는 게 불만스럽다. 그러면서 그는 자신의 만화로 “설명을 보고나면 이 병이 불건전하지도 위험하지도 않다는 걸”(P43) 사람들이 인정하게 되길 바라며 연인 카티와 함께 “행복해지는 것, 또 아이를 행복하게 해주는”(P82) 일만 생각하길 원한다.


말미에 나오는 “세상 모든 일이 원하는 대로 이루어지길 바라지 말라. 그저 되어가는 대로 받아 들여라” (P177) 라는 고대 그리스 철학자 에픽테투스의 말은 그대로 이 이야기의 결론을 잠정적으로 말해 주는듯하다. 비록 프레드는 “에픽테투스는 에이즈가 아니었다.” 는 말로 다소 투덜대는 반응을 보이지만 실제 전반적인 만화의 톤은 그것이 주조를 이루는 듯 보이기 때문이다.  


<푸른 알약>은 에이즈에 대해, 에이즈에 걸린 여자와 함께 살고 있는 자신에게 긍정적인 시선으로 편견을 없애고 바라봐 줄 것을 바라는 요청서다.
정작 가장 고통 속에 있을 법한 자신의 사랑하는 여자와 아이, 그리고 작가 자신은 뚜렷한 의지와 열망으로 똘똘 뭉치며 살아가려 하고 있다. 가방에 푸른 알약을 가지고. 또한 무엇보다 가장 큰 치료제, 사랑이라는 이름의 치료제를 가득 가지고 말이다.

그들의 그런 모습이 있기에 사람들은 그들을 있는 그대로, 긍정적인 시선으로 봐야 하는 것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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