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적당한 일련의 상황이 갖추어 진다면, 인간의 마음 속에 내재한 어두운 단면들이 기꺼이 밖으로 기어 나올지도 모르지. 그것들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 <타락의 여름, 우등생> 중 바이스코프의 말
정체를 숨긴 나치 전범과
그를 찾아낸 어린 소년
이야기는 토드라는 13세의 소년이 아서 덴커라는 한 노인의 집을 방문하면서 시작이 됩니다.
갑작스런 소년의 방문에 노인은 의아해 하지만 이내 소년의 목적이 무엇인지 얼마 지나지 않아 알게 됩니다.
토드는 아서 덴커라는 노인의 이름이 가명으로 사실은 그의 본명이 듀샌더고 나치 친위대(SS)로 활동한 나치 전범이라는 비밀을 알고 있는 것이죠. 갑작스런 소년의 일격에 듀샌더는 애써 부인하지만 오래 버티지 못하고 결국 토드가 밝힌 모든 사실을 그대로 인정합니다.
그렇다면 토드는 곧바로 경찰이던, 아니면 다른 기관이던 듀샌더의 정체를 알려서 숨어있는 나치 전범을 찾아낸 소년 영웅으로의 영웅놀이를 즐기면 될 것인데 뜻밖에도 소년은 그러지를 않습니다. 오히려 토드는 듀샌더에게 그가 유태인을 학살했던 이야기들을 들려달라고 졸라댑니다. 안 그러면 신고를 하겠다는 협박까지 더하면서 말입니다.
과거의 악몽으로 시달리는 듀샌더는 소년의 거부할 수 없는 협박에 결국 굴복하고 소년은 계속해서 노인을 찾아와 그가 행했던 끔찍한 이야기들을 듣습니다. 그리고 예상되다시피 두 사람의 관계는 점차 예측불허의 기묘한 상황으로 흐르기 시작하죠.
‘스티븐 킹의 사계’ 라는 제목으로 나온 두 권의 책은 봄, 여름, 가을, 겨울 계절별로 소제목이 붙어 있으며 두 편씩 책 한 권을 이루고 있습니다. 이중 봄 편의 <리타 헤이워드와 쇼생크 탈출>과 가을 편의 <스탠 바이 미>가 영화화가 되었고 (두 편 모두 잘 만들어진 볼만한 영화죠) 여름 편인 <우등생>, 그리고 겨울 편인 <호흡법>이 있습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네 편 중 <호흡법>에 대한 인상이 가장 강렬했었는데 이 소설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 기회에 하기로 하고 이번은 <우등생>에 대한 얘기만 해볼까 합니다.
꽤 두툼한 분량임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은 스토리 위주의 전개를 강조하는 스티븐 킹의 소설답게
빠른 가독성이 있습니다. 그만큼 몰입이 되어 진다는 것이겠죠.
서두에 요약한 대로 노인과 소년인 토드와 듀샌더의 관계는 그렇게 시작이 됩니다. 하지만 인간 관계가 늘 그렇듯 불안정한 요인을 갖고 시작한 관계는 점차 파국으로 치닫죠. 그 과정을 흥미롭게 보여주는 것이 바로 이 소설의 매력이라고 할 수 있을 듯 합니다.
즉, 이렇게 두 사람 관계의 주도권, 즉 그 헤게모니를 누가 쥐고 있는 가를 따라가는 것이 스티븐 킹이 심어놓은 소설적 재미라는 것입니다.
처음 커다란 비밀을 알아내고 의기양양 듀샌더를 협박하며 궁지의 몰린 쥐를 요리조리 가지고 노는 듯한 재미에 취해 있던 소년 토드는 점차 관계가 진전되면서 전세가 역전되어가는 상황에 처하고 맙니다. 반면, 예상치 못한 토드의 협박에 갑작스럽게 당혹스러워했던 듀샌더는 자신의 과거사를 펼치는 과정에서 현재는 잊고 지내던 과거 자신의 내면에 있는 어둠을 서서히 회복해가는 것과 동시에 자신을 협박했던 어린 토드를 향한 복수심을 교묘하게 펼쳐나가기 시작합니다.
이렇게 소년과 노인의 기묘한 관계는 상황이 거듭해서 역전에 역전을 거듭하면서 새로운 방향으로 흐르기 시작합니다. 바로 두 사람의 연대로 흐르는 것이죠. 그리고 그 밑바닥에는 바로 인간의 내면에 잠재된 악한 본성이 깨어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내면에 잠재된 어두운 본성
작가 스티븐 킹은 2차 대전 중에 있었던 나치의 잔혹한 학살자와 그것을 흥미로워하고 동경하는 소년의 만남과 회고를 통해 바로 인간이 내면에 갖고 있는 악한 본성이라는 것이 어떻게 밖으로 그 이빨을 드러내는지를 보여 주고 있는 것입니다.
즉, 이 이야기의 가장 큰 주제의 맥락은 ‘모든 인간의 속에 잠재되어 있는 어두운 요소들은 언제든 상황에 굴복하는 순간 표출 될 수 있다는 것’ 이라는 겁니다.
결국 이야기에 처음 등장하여 어린 소년의 치기를 보이며 똑똑한 면모를 보이던 토드는 점차 듀샌더의 과거 행적을 들으면서 어느새 그의 악한 면모에 젖어 들고 결국 내면에 잠자던 악한 본성이 깨어 나면서 겉으로는 바르고 똑똑한 우등생의 모습을 보이지만 이면에는 먹이를 찾아 살인을 저지르는 또 다른 학살자가 되어 버리고 맙니다.
듀샌더 역시 토드와의 만남이 도화선이 되어 마음 먹은 대로 학살을 저질렀던 내면 속의 과거의 괴물을 다시 깨워내고는 토드와 똑같은 살인을 저지르기 시작합니다.
부제에 적힌 그대로 두 사람 모두 서로의 만남을 계기로 타락의 나락으로 다시금 떨어져 내리는 것이라 할 수 있겠죠.
주인공인 두 사람 모두가 각각 학살과 살인에 대해 묘한 쾌감과 매력을 느끼는 모습에서 인간이 갖고 있는 악한 본성이라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이야기는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아마도 공포 소설의 귀재 스티븐 킹은 이 이야기로 ‘가장 무서운 것은 인간’ 이라는 느낌의 공포 소설을 만들어 낸 것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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