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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도서관

변신과 성장의 자아찾기 - [그래픽노블] 진과 대니

by 멀티공작소 2010. 7.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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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간의 스포일러 있습니다. 유의 하세요^^)

 

진 루엔 양의 그래픽 노블 <진과 대니>는 가장 먼저 깔끔한 그림체가 눈에 들어 옵니다.

언뜻 보면 원색적인 색감에 꼭 아동 만화 같은 단순한 형식을 취하지만 그 안에 흐르는 내용(스토리)은 제법 묵직합니다.


작가가 구성한 이야기의 외피는 우선 너무나 유명한 서유기의 손오공에 대한 신화가 하나, 그리고 진 왕과 웨이첸 썬의 에피소드가 둘, 그리고 마지막으로 대니와 그의 사촌으로 등장하는 친키 사이에 벌어지는 에피소드로 이 세 이야기는 따로 흐르는 듯하다가 결국 하나로 이어지는 구성을 취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 이야기들이 하나로 이어지는 과정에 깜짝 반전의 장치를 더해 놓았고요.

사춘기 나이의 중국계 미국인을 주인공 캐릭터로 삼다보니 진과 대니의 에피소드는 거의 미국 학교에서의 에피소드가 주를 이룹니다. 그 나이대의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환경은 아무래도 학교일 수밖에 없겠죠.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 시기에 이 환경에서의 생활을 피할 수 없는 것이기에 작가는 가장 익숙한 학교라는 공간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선택한 것이라 생각됩니다.




또한 학생 시절에 사람은 가장 자신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게 됩니다. 사춘기라는 인생의 시기이기도 하고 미래라는 불투명한 시간의 혼돈이 늘 의식에 자리 잡게 마련이니까요. 그러다보니 자신의 존재, 그리고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게 되고 스스로가 과연 무엇을 할 수 있는가에 대한 많은 고민을 하는 시기라는 것이 바로 이 작품의 주요한 요소로 작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시간과 공간의 설정으로 <진과 대니>는 바로 변신성장이라는 두 개의 중요한 화두를 작품 속에 담고 있습니다.

그럼 그 두 개의 화두가 왜 필요한 것인가? 그것은 결국 한 인간의 자아(정체성)를 찾는 과정에 필요한 요소라고 작품은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지요.

 


그것을 표현하기위해 작가는 여러 가지 비유를 이야기 속에 담습니다.

어린 진 왕이 트랜스포머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것이며 (아시다시피 트랜스포머의 가장 대표적인 기능은 바로 변신이죠), 좋아하는 미국 여자아이에게 잘 보이기 위해 헤어스타일을 바꾸는 모습, 그리고 진 왕 스스로가 완전한 미국인 대니로 변신을 하는 것이죠.

그것을 더욱 강화해 주는 것은 바로 손오공의 이야기입니다.

 

서유기의 손오공은 뛰어난 변신술과 각종 도술을 배워 원숭이 왕으로 살다가 결국 천계에서 사고치고(?) 돌무더기에 갇히죠. 그리고 삼장법사를 만나 불경을 찾아 떠납니다. 결국 작가는 이 고전 신화인 서유기에서 손오공의 변신과 성장을 그대로 이 작품 속에 비유적으로 녹인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서유기의 손오공이 변신과 성장을 통해 진정한 스스로의 모습과 가야할 길을 찾았듯 중국계 미국인으로 자아의 혼란을 겪는 작품 속 주인공인 진 왕도 변신과 성장을 통해 조금씩 스스로의 정체성을 알아 가는 것이라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작가의 위트가 엿보이는 한 컷. 서방정토로 불경을 찾아 떠난 손오공 일행이 이 컷 속에는 마치 성서의 아기 예수 탄생에 찾아온 동방 박사들 같은 모습으로 표현되었죠. 불교와 기독교의 만남? 재밌습니다.> 


그러면 여기서 생각해 봐야할 부분이 나옵니다.

왜 스스로를 알아야 하는가? 스스로의 정체성이란 것을 왜 찾아야 하는가?

어쩌면 정말로 중요한 지점은 바로 이 ‘왜?’를 알아야 하는 것이겠죠. 이것은 언뜻 생각해보면 아주 쉬운 질문이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론 굉장히 어려운 질문으로 보입니다.

‘나는 무엇인가?, ‘나는 왜 나에 대해서 알아야 하는가?

굉장히 형이상학적으로 들리는 물음이니까요.

비록 사춘기 시절이 아니더라도 이 질문은 가끔씩 스스로 되묻게 되는 질문입니다.



이 작품 속에서 손오공은 천계에서 원숭이라는 멸시를 당한 후 돌아와 스스로의 냄새를 의식하고는 신발을 신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후에 법사를 만나 그를 위기에서 구하고 비로소 같이 여행을 떠나기 전, 법사가 말하죠.

 

“이 여행에는... 신발이 필요 없단다. (P161)

 

<원숭이인 자신을 감추기 위해 착용했던 신발. 하지만 그것은 결국 본래의 자신을 감추는 벗어내야 할 스스로의 껍질같은 것이 아닐까요?>


단단한 스스로의 껍질을 벗기 위해서는 스스로를 먼저 인정하고 알아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결국 그 껍질도 스스로가 만든 것이기에 벗을 수 있는 것이죠. 나는 찾는 다는 것은 그런 의미가 아닐까요.

스스로를 알아야 한다는 것은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와 같은 또 다른 질문에 해답을 찾는 길이라 생각합니다. 그러기에 사람은 자신의 정체성을 알아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이겠죠.

 

한약방 할머니의 달콤한 속삭임처럼 “네 영혼을 버릴 마음만 있으면 무엇이든 될 수 있”(P31) 다는 얘기가 어쩌면 그럴 듯하게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스스로를 속이고 원하는 무엇이든 쉽게 되겠다는 마음은 결국 본래의 자신을 잃어버리고 또 다시 자신을 속이게 되는 악순환을 반복할 뿐이라 생각됩니다. 그것은 거짓된 삶이라는 것이죠. 작품 속 진 왕이 대니로 변신해서 거짓된 삶을 살아가는 것처럼 말입니다.

 

이렇게 이 작품은 여러 가지 비유적인 표현을 써서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전달합니다.  자신의 삶을 사랑하고 자신의 목표와 열정을 깨달아가는 것에는 늘 스스로의 자아를 알아가는 것이 필요한 것이라 얘기해 주는 것이죠. 작품 속에서 말하듯 그러한 스스로를 알아가는 과정에는 나름의 변신과 성장이 필요한 것이고요.

 

비록 이 작품이 미국(서양)에서 스스로의 정체성으로 방황하는 중국계 소년(동양)을 주인공으로 해서 조금은 한정적인 내적 스케일을 표현했는지는 몰라도 작품에서 던지는 진지한 물음과 비유, 표현은 앞서 얘기한 것처럼 진중하고 의미심장한 부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한 질문을 작품을 보며 스스로에게 던져 본다면 다시 한번 자신을 생각해 보는 유익한 부분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삶에서의 선택은 늘 자신이 합니다. 순간 순간의 사소한 것이든, 큰 것이든 결국 스스로의 몫이겠죠. 그래서 스스로의 생각과 판단은 늘 중요합니다. 하지만 스스로를 잘 알지 못하면 자주 시행착오를 겪는 것이 또 사람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내가 누구인지 아는 것은 그래서 중요한 것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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