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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층 빌딩의 한 방에서 살인이 일어난다. 피해자는 간병 서비스 분야의 회사인 '베일리프'의 사장. 그가 살해 당한 곳은 사장실이고 경찰은 같은 회사의 전무를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해 체포한다. 하지만 그는 살해 사실을 전면부인하고 있다. 만약 그가 범인이 아니라면 살해 당시의 사장실은 완벽한 밀실이 된다.
그렇다면 진범은 누구이고, 그는 도대체 어떤 방법으로 살인을 한 것일까....?
초반부터 분단위의 시간흐름을 긴박감 있는 몽타쥬로 묘사하며 시작하는 <유리망치>는 기시 유스케의 장기인 방대한 지식 쏟아붓기를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는 추리소설이다.
여타 수많은 추리소설 속에 등장하는 밀실 살인은 언제나 '완벽한' 이라는 전제를 가지고 수수께끼를 던지며 독자들은 그 수수께끼를 풀어가는 과정을 따라가는, 그리고 결국은 '아하! 그거였군!' 으로 퍼즐을 완성해내는 재미로 빠져 들게 된다.
기시유스케의 이 소설도 그러한 궤적을 따라가고 있지만 조금 더 그가 면밀하게 신경 쓴 부분은 바로 '헛다리집기' 내지는 '유인하기' 다.
살인 용의자로 지목된 전무의 변호사 준코와 그녀의 의뢰로 콤비를 이루는 에노모토라는 두 주인공은 범인이 누구인가라는 것에 초점을 두기보다는 어떻게 살인이 이루어 졌는가에 좀더 공을 들인다.
물론 밀실트릭을 깨버리는 것이 범인(진범)을 밝혀 내는 고리와 중요하게 연결되어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애초 준코가 에노모토에게 의뢰를 하러 간것이 그가 방범 컨설턴트를 하는 사내였고 -그는 경찰도 탐정도 아니다- 의뢰내용도 어떻게 침입을 했는가를 밝혀내는 것에 목적이 있다. 그리고 이야기는 그러한 것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여러가지 가능성을 해답으로 제시하고 하나씩 하나씩 밝혀지는 오답을 줄로 지워 나간다.
그런데 이 가능성들이라는 것이 -비록 오답이긴하지만- 하나같이 모두 나름의 절묘한 개연성을 지니고 있어 결과에 대한 흥미와 긴장은 커지고 정답에 대한 열망은 더 흡입력을 가진다. 바로 그것이 이 <유리망치>이야기가 가지고 있는 힘이고 작가 기시유스케의 테크닉이란 생각이 든다.
그렇게 완벽한 밀실살인트릭을 깨버리는 추리로 이끌려가던 이야기는 정작 '드디어, 알아냈다!' 하는 순간 정답풀이의 주인공을 범인의 몫(시점)으로 돌려 버린다. 이야기의 마지막을 꽤 적지않은 분량으로 범인이 살해하기까지의 과정으로 디테일하게 따라가며 전해주는 대목은 한편의 단편소설을 보는 것 같으며 극중극 같다.
한 사람이 어떠한 궤적을 밟으며 결국에는 어떻게 살인이라는 극한 상황까지 이르게 되는가, 그리고 어떤 욕망이 결국 이러한 나름의 완벽한 밀실살인을 구상해 내는데에 이르는지를 보여주는 그 과정은 어쩐지 묘한 슬픔까지 느끼게 해준다.
깨지기 쉬운 '유리망치' 는 한없이 약한 인간의 모습같고 자신이 처한 원치않는 상황, 그리고 그로인한 삐뚤어진 욕망은 그것이 또 다른 인간을 죽일 수도 있는 무기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기시 유스케는 범인 아키라의 이야기를 말해주는 대목에서 보여주는 것은 아닐까....
예전 '검은 집'이나 '천사의 속삭임'을 읽었을때도 느꼈던 것이지만 기시 유스케는 엄청난 자료광같다는 생각을 다시 한번 이 소설을 읽으면서 느낀다. 그래서 그의 소설을 읽을 때면 생소한 용어들에 갸웃할 때도 있지만 그 자료들이 충실하여 확실히 풍성하고 탄탄함을 느끼게 해주는 것이 또한 그의 소설이 갖는 매력 중 하나가 아닐까.
"....유리로 만든 망치가 진짜로 위험한 흉기가 되는 것은 부서진 후입니다."
- <유리망치>中 에노모토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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