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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도서관

<고백>, 살인에 대한 다섯 개의 시선

by 멀티공작소 2011. 2.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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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의 한 중학교 봄방학 종업식.

종업식을 맞아 여자 담임교사는 교실에 있는 반 아이들에게 담담한 어투로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이번 학기를 마지막으로 학교를 떠나게 된 자신의 사직과 일본의 소년법과 ‘세상을 바꾸는 철부지 선생님’ 에 대한 이야기와 HIV에 감염된 남자와의 사이에서 미혼모로 얻게 된 딸, 그리고 싱글맘으로서 일을 해야 했던 자신의 이야기 등등.

교실의 아이들이 이러한 이야기를 얼마나 집중하여 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교사인 모리구치 유코의 고백은 점차 충격적인 고백으로 이어집니다. 그녀의 어린 딸 마나미는 학교 수영장에서 죽음을 당했고, 사건은 ‘사고사’ 로 처리가 됐지만 사건의 진실은 바로 ‘살인’ 이라는 것, 그리고 그녀의 딸을 살해한 범인이 바로 지금, 이 교실 안에 있다는 것을.

 

"마나미는 사고로 죽은 게 아니라

           우리 반 학생에게
                 살해당했기 때문입니다
."

 

일본에서 영화로도 제작된 미나토 가나에의 소설 <고백>은 그렇게 한 중학교 여교사가 그녀의 딸을 살해한 인물에게 행하는 복수극을 펼쳐나가기 시작합니다.

전체 스토리의 맥락은 분명 복수극이라는 서사를 이어가지만 이 소설은 단순히 ‘눈에는 눈, 이에는 이’ 라는 사건을 중심으로 보여주는 외피보다는 사건에 연관된 각각의 인물들의 내면에 흐르는 상황의 동기와 심리에 더 치중을 합니다. 그렇게 생각해 볼 수 있는 이유는 이 소설이 가진 형식에 기인합니다.

 

여섯 개의 챕터로 이루어진 각각의 챕터는 딸 마나미의 죽음에 얽혀있는 다섯 명의 각 인물 -여교사를 포함한- 들의 시점으로 서술되어집니다. 제목 그대로 ‘고백’ 형식의 문체로 서술하고 있는 것이죠. 그러한 형식을 사용함으로 작가는 사건에 대한 인물의 심리와 전후 사정의 인과(因果)를 독자에게 다양한 시점으로 설명하고 있는 것이죠.

때론 대화체로, 때로는 일기체로 서술되는 이 소설의 형식은 사건의 진실에 대한 이해를 쉽게 해주기도 하지만 좀 더 깊이 있게 각 ‘인물’ 에 대한 생각을 이해하도록 만들어 주면서 독자로
하여금 사건의 내막을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는 놀라움을 보여 주기도 합니다.


 

작가가 선택한 이러한 형식의 서술은 이 작품 전체가 비극적인 사건과 복수라는 스토리 라인을 다루고 있음에도 상당히 차분하고 이야기에 집중하게 만드는 몰입도를 높여주는 역할을 하고 있어 탁월한 선택이었다고 여겨집니다. 그리고 이렇게 다수의 관점으로 움직이는 형식상의 장점으로 이 소설은 사건 자체의 외면적인 모습과 그 이면에 존재하고 있는 내면의 흐름을 함께 보여주면서 스토리를 진전시켜 나가는 효과를 거두고 있는 것이죠.

 

앞서 설명한 대로 이 소설의 스토리는 처음부터 명확한 결론을 주면서 시작합니다.

범인도 밝히고, 또 딸에 대한 복수를 어떤 식의 물리적 방법으로 행했는지도 다 설명하죠. 즉 사건의 외면으로 보여 지는 살인의 동기와 방법과 그 결과, 그리고 딸을 살해한 범인에게 복수한 방법까지 세세하게.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첫 장의 이 시점은 바로 딸을 잃은 모리구치의 설명이라는 것입니다. 그녀의 ‘고백’이 끝난 후 독자는 이제 다른 각각의 인물의 시점을 따라가며 그들의 이야기를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인물들의 새로운 ‘고백’ 속에서 독자는 앞에서 알지 못했던 새로운 이야기들을 만나게 되는 것이죠.

 

소설 <고백>은 그렇게 스토리를 진행하면서 다양한 문제의식을 배치해 놓습니다.

처음부터 ‘청소년의 범죄’ 라는 화두를 끄집어내면서 ‘소년법’ 을 언급하고, 부모의 아이를 향한 이기적 사랑을 보여 주기도 하며, 학교라는 테두리의 집단적 광기. 사회와 가족, 그리고 청소년들의 내면에 잠재되어 있는 불안정한 정서와 결여된 윤리 의식. 이러한 중요한 것들 말입니다.

물론 소설은 이러한 요소들을 드러내놓고 ‘캐치프레이즈’ 로 내걸지는 않으면서도 자연스럽게 스토리에 융화시켜 감정적으로 느끼게끔 ‘고백’ 을 합니다. 그것이 이 소설의 최대 장점이라 할 수 있겠죠.

 

한편으론 이 소설의 ‘고백’ 들은 지독히 이기적인 내용들로 읽혀지기도 합니다. 드는 생각이 사람의 고백이라는 것이 그 사람의 내면의 목소리인 것은 분명하지만 그것은 자신의 생각에서 뻗어 나오는 것이기에 스스로의 생각과 기준이 지배적으로 작용을 한다는 느낌도 들기 때문이죠.
슬프게도 그것은 언제든지 조작과 변명의 기회들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어서 자신의 행동의 당위성을 표출할 수도 있는 이기적인 장치가 될 수도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듭니다.
어쩌면 작가 ‘미나토 가나에’ 는 그러한 사람의 ‘고백’ 이라는 것의 맹점 소설 속에서 구현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드는 군요. 소설 밖 현실 역시 파렴치한 인간들도 저마다 할 말은 있다는 것, 그런 것 말입니다.

 

청소년이 됐건, 성인이 됐건, 범죄라는 것은 인간이 가지고 있는 윤리 의식이 사람 안에서 진공 상태로 될 때 일어난다는 생각이 듭니다. 잘 무장되었다고 생각되는 성인들의 의식 속에서 조차도 가끔 윤리는 자리를 잃어 버릴 때가 있는 법이죠. 

<고백>은 청소년 범죄를 다루면서 그러한 윤리 의식이 사람 안에서 어떻게 작용하고 자리 잡고 있어야 하는 지를 보여주는 소설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하물며 많은 것의 기준들이 세워지는 청소년기에는 더 말할 나위도 없겠죠. 

변명과 이기적인 고백을 하기에 앞서 자신들은 그것을 먼저 생각해 봐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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