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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 소설 작업실

[자작단편] 도시의 섬, 609호

by 멀티공작소 2010. 12.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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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생각 없이 그저 생각나는 대로 몇 십분에 써 갈긴 글. 아마도 스스로 자학을 하고 있던 것은 아니었을까. 그때에,,,)





① 길거리에서 몬로를 만나다.

 

어느 우중충한 오후.

길을 걸어가고 있었다.

그날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아니 무슨 일 때문에 그곳을 걸어가고 있었는지.... 기억 없음.

맞은편에서 머리가 - 더 정확히는 머리카락이 - 금색으로 물들어있는 여자.... 음, 17세쯤의 소녀다.

걸어오고 있다.

목욕탕을 다녀오는 듯 파란 바구니 통에 수건과 싸구려 샴푸와 때수건, 보통은 이태리타월이라고 부르는, 이태리에는 없지만. 그런 잡동사니들을 들고는 나와 가까워지고 있었다.

내가 빤히 그녀의 얼굴을 보고 있자 그 애도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두 사람의 거리는 점차로 가까워졌고 근접해지자 그 애는 내게 정면으로 다가와 불쑥 내뱉었다.

 

“뭘 그렇게 봐?”

“보면 안 되나?”

 

이상하다는 표정.

 

“우리 어서 만났었나?”

“아니, 전혀. 기억에 없는데....?”

“내 방 보고 싶어?”

“조금은....”

“그럼 따라와.”

“그럴까?”

 

그래서 난 그 애의 집으로 갔다.

 

 

② 누구나 만드는 거. 그러나 먹을 수 없는 거.

 

나와 그 애는 속옷만 입은 채 침대에 나란히 누워 엎드려 책을 보고 있었다.

우리는 같이 잤지만 섹스를 한 것은 아니다. 단지 속옷만 입고 자는 버릇은 비슷했다. 그리고 그 애는 한술 더 떠서 집에서는 늘 속옷만 입고 지낸다.

그 애는 ‘100일 만에 끝내는 영어’란 책을 읽고 있었고 난 그저 그런 제목도 낯선 만화책.

우린 아무 말도 안했다. 마치 수도하는 수도승처럼.

간혹 그 애가 ‘I'm fool.... I'm fool.... 나는 풀이다..... 찐득한 풀이다’ 하고 읊조렸다.

엎드려 있던 자세가 왠지 싫증나서 백팔십도 뒤집어 책을 공중으로 떠받치듯 들고 넘겨보았다. 책은 그럴 가치가 있다. 만화책이라도.

벽에 잔뜩 그려져 있는 색색의 그림들이 우루루 쏟아져 내릴 것 같다. 자극적이다. 음, 저런 그림을 뭐라고 부르는 이름이 있는데..... 힙합하는 얘들이... 뭐라더라? .....기억안남.

그리고 몇 분 뒤 기억남. 그래피티. 맞아 그거다.

 

“배고프다.”

 

그 애는 회화 책을 휙 집어던지고는 속옷 바람으로 터덜터덜 싱크대 쪽으로 가서 냉장고를 뒤지고 찬장을 뒤지고 하더니 잡다한 야채들을 널려놓고는 볶음밥을 만들기 시작했다.

적어도.... 냄새는 좋았다.

 

“음식 잘해?”

“별로....”

“난 배고프지 않아.”

“내가 먹을 거야.”

 

점점 밖이.... 어두워지고 있다.

 

 

③ 그 애의 자궁 속

 

“왜 영어책을 보고 있지?”

 

그 애가 ‘100일 만에 끝내는 영어’란 책을 10시간째쯤 보고 있을 무렵 내가 문득 물었다.

그 애는 돌아보지도 않고 억양이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외국에 갈 거거든.”

“외국? 어디?”

“어디든.”

“부럽군.”

 

그 애는 여전히 속옷 바람으로 뒹굴면서 책을 봤다.

 

“집에 안가?”

 

나에게 그 애가 물었을 때 난 이상하다는 듯이 그 애를 바라보았다.

 

“집? 그런 거 없어.”

“(피식) 웃겨.”

 

그 애는 책을 집어던지고는 후다닥 외출복 차림을 했다.

“어디가?”

“데이트.”

“새벽 1시에?”

“자고 싶으면 자!“

 

그렇게 차가운 음성은 처음이다. 심장이 얼어붙는 것 같다.

 

“다시 들어와?”

“당연하지. 여긴 내 자궁이니까.”

 

그 애는 재빨리 숄더백을 들고 나가버렸고 그 애의 금빛 머리칼이 어둠 속으로 묻혀갔다.

담배가 피고 싶다. 그리고? 마스터베이션을 해볼까? 그 애의 자궁 속에서 사정을 하고....

음, 아무리 봐도 미친 생각 같다.

 

 

④ 가끔 지겨워!

 

아침에 눈을 떴을 때

그 애는 여전히 속옷 차림으로 내 옆에서 쿨쿨 자고 있었다.

외출했다가 돌아온 사람 같지 않았다. 그냥 계속 옆에 있었던 사람 같았다.

몽롱한 상태로 화장실로 가서 약 30초가량의 긴 소변을 보았다.

다시 나왔을 때 그 애는 깨어나 있었다.

AM 9:00

하루는 다른 날과 같이 시작 되었는데 할 것이 없다. 뭘 하지?

그 애도 그런 것 같다.

돌연히 벽에 걸려있는 단정한 교복이 보였다.

 

“이건?”

 

반쯤 눈을 뜨고 있던 그 애가 잠시 나와 교복을 번갈아 보고는 말했다.

 

“보면 알잖아?”

“네 꺼?”

“이곳에 있는 건 다 내꺼야. 여기에는 내꺼 아닌 게 없어.”

 

강조하듯 말하고는 벽 쪽으로 휙 몸을 돌리며 그 애가 내 뱉듯이 말했다.

 

“바보같이.”

 

난 잠시 감상하듯 교복을 바라보고 있다가 창 쪽으로 가서 밖을 내다보았다.

찬바람이 불어왔다. 춥다.

오전 9:10의 도시전경은 볼 상 사납다. 그리고 특별히 볼 것도 없다.

 

“뭐 좀 먹겠어?”

 

내가 묻자 그 애는 여전히 벽 쪽을 보고 누운 채

 

“너나 먹어.”

 

라고 말했다.

명탐정같이 잠시 사물을 골똘히 보며 생각하다 다시 침대로 스물 스물 기어들어갔다.

그런 거 아닌가?

때론 먹는 것도 지겨운 거.

 

 

⑤ 아부

 

“내가 전생에 마릴린 몬로였다는 거 알아?”

 

그 애는 어느 날 문득 생각난 듯 나에게 그렇게 물었다. 그런 질문을 듣고 보니 그 애의 모습이 어느 정도 젊은 시절의 마릴린 몬로를 연상케 하는 구석이 있는 것도 같다.

 

“그래? 그거 대단한데? 아직까지 네 죽음의 명확한 원인이 밝혀지지 않아서 미스터리한 부분이 있는데 네가 얘기하면 간단한 거겠네.”

 

자신이 죽은 원인을 자신이 말한다? 어쩐지 으스스한 느낌이다.

그 애는 내 얘기에 한숨을 내쉬었다.

 

“그게 그렇게 간단하지가 않아....”

“어째서?”

“전생에 대해서 세세하게 기억이 나는 건 아니니까..... 그렇지만 분명히 마릴린 몬로였다는 것은 알고 있지.”

 

그 애는 창밖을 보며 멍한 표정으로 말하더니만 내 쪽으로 얼굴을 돌리고 물었다.

 

“왜? 안 믿겨져?”

“아니, 믿어. 나도 그렇게 생각이 들어.”

 

난 이집에서 결코 쫓겨 날일은 없을 것이다. 이렇게 아부에 능숙하니까.

 

 

⑥ 시체구경

 

“시체, 눈으로 본적 있어?”

“시체? 죽은 사람 말이야?”

“그럼 산 사람을 시체라고 부르나?”

 

그 애는 나를 흘기듯 보고는 간단한 옷을 걸쳤다.

 

“아니, 본적 없어.”

 

나는 침대에 누워 있었다.

 

“한번쯤 봐두는 것도 괜찮아. 어차피 언젠가 자신에게 닥칠 미래의 일이잖아?”

“그래, 맞는 것 같아.”

“따라와.”

 

그녀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밖으로 나갔다.

이곳은 참 이상한 곳이다.

사람도 없고 소리도 없고 불빛조차 없다.

무인도다.

보통의 무인도와는 다르다.

적적한 고독도, 사람에 대한 그리움도 없다.

전생이 마릴린 몬로였던 그 애와 나뿐이다. 그래서 좋다.

그 애는 후레쉬를 비추고 나를 안내했다.

계단으로 해서 5층으로 내려간 그 애와 나는 한 집 앞에 섰다.

문짝도 이미 달아나 버렸다.

 

“이곳에 살고 있는 시체가 제일 볼만하지.”

 

이곳에 살고 있는 시체? 재밌는 표현이다.

낡고 어두운 실내로 들어가 그 애는 후레쉬를 비추며 뒤따라가는 내게 손짓을 했다.

 

“봐.”

 

그 애가 후레쉬를 비춘 곳에 정말 시체가 있었다.

한 20대 후반쯤의 여자.

반듯이 누워 있었고 양팔을 늘어뜨린 채 꼼짝도 안하고 있었다. 당연한 일이지만...

 

“아는 여자?”

“설마...”

 

마치 장엄한 장례식장에 와 있는 듯한 느낌.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그 애가 나직이 눈을 감고 말했다.

나도 따라했다.

 

“또 보여줄까? 여기는 다양한 시체들이 많은데.”

“음, 아니. 이제 사양할게.”

“그럼 다음번엔 고양이 장례식을 보여줄게.”

“고양이 장례식?”

“여기서 얼쩡거리는 고양이가 한 마리 있는데 얼마 뒤에 아마 죽을 거야.”

“예언가 같아.”

 

나는 웃었다.

 

“몰랐어? 난 가끔 예언도 해.”

 

그 애는 나에게 비난하듯 말했다.

 

 

⑦ 원을 긋는 그 애

 

“돈을 주고 여자랑 자봤어?”

 

어느 날 문득 그 애가 화장실에서 묻는다.

 

“아마 자봤을걸?”

 

나는 좀 희미하게 대답했다.

그 애는 물을 내리고는 천천히 걸어 나와 물끄러미 잠시 나를 바라봤다.

 

“내가 돈을 준다면 나랑도 잘 거야?”

“그렇겐 할 수 없지.”

“왜?”

“법에 저촉되는 짓이잖아? 넌 미성년자니까.”

 

그 애는 고개를 갸웃했다.

 

“왜 내가 미성년자라고 생각하지?”

 

후,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벽에는 교복이 걸려있고 책꽂이에는 교과서가 꽂혀있고.....”

 

나는 책꽂이를 가리켰다.

 

“그리고 뭣보다도 넌.....”

 

그 애의 눈동자가 무표정하게 나를 향하고 있다.

 

“쌓여진 기억보다 쌓아갈 기억이 많아 보이니까.....”

 

내말이 끝나자 그 애는 마치 다리에 힘이 빠져버린 듯 침대에 털썩 걸터앉았다.

 

“인정.”

“고맙군.”

 

그 애는 잠시 말이 없었다.

아마도 내가 했던 얘기를 곰곰이 다시 생각해 보고 있는 듯하다.

잠시 있다가 그 애는 다시 침대에서 일어서서 분필 -갑자기 저건 어디서 나온 걸까?- 을 들고는 벽 쪽으로 가서 큼지막한 원을 하나 그렸다.

나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그 애를 쳐다봤다.

원을 다 그은 그 애는 나를 보고 퉁명스럽게 말했다.

 

“내가 미성년이면 이원에서 나는 어느 지점에 있는 걸까?”

 

나는 벽에 그려져 있는 비교적 정확한 원을 바라보면서 잠시 멍해졌다.

어느 지점?

어느 지점이나 다 똑같다. 원이란 것은 돌면 제자리다.

나는 힘없이 고개를 저었고 그 애는 씩 웃더니 내 옆에 와서 앉았다.

 

“내가 돈을 주면 나와 자겠어?”

“하지만 넌 나와 잘 마음이 있는 게 아니잖아?”

“물론.”

 

그 애는 내 모습이 우스운지 까르르 웃고는 침대에 벌렁 드러누웠다.

 

“그리고....”

 

난 원을 가리켰다.

 

“이건 궤변이야.”

 

그 애는 내말에 짧게 말했다.

 

“인정.”

 

 

⑧ 다수와의 텔레파시

 

눈을 떴을 때 그 앤 침대 위 내 옆에서 새근새근 잠이 들어있었다.

지금이 몇 시쯤일까?

창밖을 보고 파란 빛깔의 어둠으로 물들어 있는 것을 보니 새벽녘쯤 되어있는 것 같았다.

옆에 엎드려서 누워있는 그 애의 얼굴위로도 그 파란빛이 묻어있었다.

난 우두커니 누운 채로 그 애의 얼굴을 한참을 바라보고 있었다.

창 밖 빛깔의 변화에 따라 그 애의 얼굴에 묻어있는 빛도 미세하게 변하고 있었다.

그것은 어쩐지 그 애가 살아있는 사람이라는 느낌을 들게 해주었다.

그런데 갑자기 뭔가 잊었던 것을 알아냈다는 표정 같은 것을 지으며 그 애가 눈을 뜨고 나와 눈이 마주쳤다.

 

“뭘 그렇게 보고 있지?”

“네 얼굴.”

“내 얼굴이 이상해?”

“아니, 예뻐.”

 

아닌 게 아니라 그 애의 외모는 정말 예쁘다. 아름답다, 귀엽다, 가 아니라 예쁘다, 다.

여느 때 같으면 내말에 뭔가 말대꾸를 했을 그 애는 이 말에는 아무 표정 없이 내 눈을 바라보기만 했다.

새벽 공기의 한기가 몸으로 느껴지는지 그 애는 이불을 코 바로 밑까지 끌어올렸다.

 

“언제 들어 온 거야?”

“30분전쯤?”

“들어온 시간에 비해서 본다면 넌 금방 잠드는 스타일이군.”

“그런 편이지. 아냐, 그래.”

“난 잠드는데 시간이 좀 걸리는 사람이지.”

“왜?”

“잠자기 전 생각을 많이 하니까.”

 

그 앤 가만히 눈을 다시 감았다.

 

“어디를 갔다 오는 건지 물어봐도 될까?”

“그 말은 이미 물어본 거잖아?”

 

나는 피식 웃고 말았다.

 

“그런가?”

 

그 애는 눈을 감은채로 속삭이듯 말을 했다.

 

“새벽 1시가 되면 많은 사람들의 텔레파시가 와.”

“텔레파시?”

“텔레파시. 그러면 난 나가 봐야 돼. 안 그러면 그 사람들이 너무 불쌍하니까. 나만 이곳에서 행복한건 어쩐지 공평치 못하잖아? 그러니까 나가야 되는 거야. 그러면 그들도 행복해지지. 너도, 나도, 우리 모두가 행복해지니까 그게 공평한 거야. 사람은 누구나 공평하게 행복할 권리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

“누구나 행복할 권리는 있다고 생각하지. 그러나 그것은 현실적으로 될 수가 없는 일이야. 제로섬 게임 같은 거라고.”

“제로섬 게임?”

“플러스 마이너스 0이 되는 게임. 누군가 행복한 거라면 그 어딘가의 누구는 반드시 불행한 거라고. 현실적으로 모두가 행복할 수는 없는 거야.”

“상관없어. 어차피 현실이 아니니까.”

“?”

 

그 애는 그대로 잠에 다시 빠져버리고 말았다.

우리는 현실에서 사는 것일까, 아니면 비현실에서 사는 것일까.

난 그 애에게 그런 것을 물어보고 싶었지만 그 애는 잠을 자고 있다. 그리고 하나 더 다수와의 텔레파시가 통해지는 느낌은 어떤 것일까.

궁금하지만 물어 볼 수가 없다.

내일, 내일이면.....

 

 

⑨ 100일쯤 지나서

 

아마도 이곳에서는 현실의 시간이라는 것이 도통 감지되지가 않는다.

유일하게 해를 보고는 대략 짐작을 해 볼뿐이다.

오늘은 어쩐지 내가 이곳에 온지 100일쯤 지난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 느낌은 꽤 강렬한 것이었다. 왜 자꾸 그것이 의식되는 것일까?

 

“내가 여기 온지 100일쯤 됐나?”

“잘 아네.”

“어떻게 확신을 하지?”

“그런 거면 그런 거지. 그리고 난 알 수 있지. 이곳의 시간을 주무르고 있으니까.”

“그렇군.”

 

난 문득 얼마 전에 봤던 시체 생각이 떠올랐다.

 

“지난번에 봤던 시체는 어떻게 됐을까?”

“궁금해?”

“응, 궁금해.”

“가서 살펴보지, 뭐.”

 

그 애는 읽고 있던 ‘100일 만에 끝내는 영어’를 휘 던져놓고는 후레쉬를 챙긴 후 나와 함께 복도로 나갔다.

계단을 내려가면서 내가 물었다.

 

“그 책은 거의 다 본거야?”

“그 책?”

“100 일 만에 끝내는 영어”

“응, 방금 다 봤어.”

“정확하군.”

“비교적.”

 

그 애와 나는 시체가 있던 호실로 들어갔다.

그리고 그 애가 시체가 있던 자리에 불빛을 비췄을 때 예상한 것처럼 시체는 없었다.

 

“없는데?”

“그러네.”

 

난 그 애를 보면서 어쩐지 불안한 느낌으로 말했다.

 

“누가 치운 건가?”

“사라진 거야.”

“사라져? 어디로?”

“그거야 나도 모르지. 언젠가, 어딘가로 무엇이든 사라질 수 있는 거야.”

 

그 말은 뭔가 예언 같다.

 

“너도 사라질 거야?”

 

그 애는 내 물음이 다소 뜻밖이었는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본 후 슬픈 표정을 지어보였다.

 

“아마도”

 

그리고 그렇게 빨리라고는 생각 못했었는데 다음날 그 애는 돌연 사라졌다.

 

 

⑩ 섬에서의 추방

 

그 애가 사라진 건 내가 화장실에 들어가 있을 때였다.

내가 왜 화장실에 들어가 있었을까.

난 그때 아마도 세면대의 거울을 바라보며 뭔가를 가만히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그때 무엇을 생각했었는지 떠올리려고 해도 도통 떠오르지가 않는다. 마치 머리회전이 멈춰버린 사람처럼.

그리고 화장실을 나왔을 때 그 애의 모습은 609호 안 어디에도 없었다.

순간적으로 난 뭔가가 잘못됐음을 알았다.

그 애는 낮에는 단 한 번도 이곳을 벗어난 적이 없다.

창문을 서른 번을 더 봐도 지금은 분명 창창한 해가 떠있는 낮이다.

도대체 어딜 간 걸까?

나는 온몸에 힘이 빠지는 듯 지쳐서 침대에 걸터앉았다.

그 애는 이제 다신 여기서는 볼 수 없다.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은 그거였다.

그 애는.....

추방. 그 단어가 떠올랐다.

그걸 당한거야, ‘추방’

그런데 왜 그렇게 된 걸까? 어디서부터 그 애는 그렇게 되도록 만든 걸까?

나는 계속 현실적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시체는 그 애가 치운 건가? 아니지 어쩌면 그 애가 시체를 가져다 놓은 것인지도 모르지.....

갑자기 지금의 현실이라는 것이 무겁게 머리를 짓누르는 것 같았다.

그리고 난 그때 깨달았다.

이제 나도 곧 ‘추방’ 당할 것이라고.

이곳은 혼자 있는 곳이 아니다. 항상 둘이 머물러야 하는 곳이다. 이유는 모른다. 그렇게 만들어져 있는 곳이다. 그 애가 추방을 당한 것이라면 이제 나도 곧 추방당한다.

이미 내 머릿속은 지극히 현실의 문제들로 폭발 일보직전으로 치닫기 시작했다.

그리고 결국은 내 생각대로 난 현실로 이동을 했다.

그 길거리로 다시 돌아가게 된 것이다.

전생의 마릴린 몬로였던 그 애를 만났던 그 길거리.

 

 

⑪ 에필로그

현실은 무게감이 있다. 묵직하고 버겁다.

나는 차안에서 신호를 기다리다가 문득 그런 생각을 했다. 날씨가 꽤 더운 탓으로 차창을 다 열어 놓고 있었는데 높은 하늘을 보다가 갑작스럽게 그런 생각을 한 것이다.

신호를 기다리고 있다지만 차들은 도로를 빽빽이 메운 채 막혀있어서 계속 꼼짝을 못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간간히 경적소리가 귀를 자극하고 사람들의 표정엔 짜증이 한껏 어려 있다.

신호가 보행신호로 바뀌자 내 차의 앞으로 사람들이 지나가기 시작했다.

그중에는 한 무리의 교복차림 여고생들이 있었는데 그들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던 나는 돌연 망치로 머리를 맞은 듯한 느낌을 받았다.

뭐지? 내가 지금 뭘 보고 이러는 거지?

나는 막 내 앞을 스쳐지나가고 있는 여고생 무리를 유심히 보다가 그 중 한 여학생을 다시 바라봤다.

저애다, 저애로 인해서 이런 느낌을 받았어.

난 나도 모르게 차문을 열고는 차 밖으로 나갔다.

저애..... 뭐지? 왜 저애를 보고 이러는 거지?

내 행동에 현실감이 사라진다. 뭔가, 저애와 난 뭔가가 있다.

난 그 애의 뒤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이미 난 내 행동을 제어 할 수가 없었다.

그 애의 팔을 나도 모르게 잡았고 깜짝 놀란 그 여고생은 뒤돌아서 나를 바라봤다.

 

“왜 이러세요?”

 

난 가슴이 꽉 막힌 듯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여고생은 나를 가만히 보다가 힐끔 아래를 보고 그제야 아아, 하는 표정을 지었다.

 

“지갑을 떨어뜨렸네요.....”

 

여고생은 지갑을 줍고는 나를 향해 고개를 꾸벅 숙였다.

 

“알려주셔서 고맙습니다.”

 

그 애는 그대로 뒤돌아 다시 가려고 했다.

 

“저기....”

 

내가 간신히 입을 열자 그 애는 다시 돌아봤다.

 

“.....우리, 혹시 어디서 만난 적 있지 않았나?”

 

여고생은 내말에 잠깐 생각을 해보고는 고개를 저었다.

 

“잘 모르겠는데요... 저를 보신 기억이 있으세요?”

“그.... 글쎄..... 실은 나도 잘 떠오르지가 않아서....”

“전 기억이 안 나는데..... 아마 잘못보신 걸 거예요. 그럼....”

 

그 애는 붙임성 있는 표정으로 꾸벅 인사를 하고는 다시 기다리던 친구들과 재잘거리며 길을 가기 시작했다.

난 한동안 그 애의 뒷모습을 계속 바라보고 있었다.

아냐, 우린 서로 본적이 있어. 그래, 언젠지, 어디서였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애의 모습은 이제 사람들로, 그리고 어둠으로 가려져 보이지 않게 되었다.

나는 경적이 계속 울리는 가운데 내 차로 걸어가면서 생각을 했다.

이제 이 도시에 섬이란 건 없는 거야. 사라진 거야. 너와 나처럼 말이야, 라고.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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