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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 소설 작업실

[자작소설] G+ (Ep1. 도서관 책 속의 그녀)

by 멀티공작소 2010. 6.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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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너레이션 플러스(Generation Plus)

Episode 1

도서관 책 속의 그녀



『예지몽
(豫知夢)은 미래에 대한 개인적인 것과 국가적인 것의 예시를 받은 것인데 일반인보다는 주로 종교인이나 미래에 대한 길을 제시하는 사람들이 많이 꾸게 된다. 신부님, 목사님, 스님, 무속인, 역술인등이 직업적으로 많이 꾸게 되며 내용이 개인적으로 함부로 발설할 부분이 아니기 때문에 아무나 함부로 꿀 수도 없다고 본다. 예지몽과 계시몽은 구분하기 애매하나 그야말로 선택 받은 사람들만이 미래에 대한 길을 제시받는 꿈으로 대부분 이런 꿈을 꾸게 되면 인생이 180도로 돌변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내가 자주 이용하는 시립도서관에 대해 말한다면... 그곳은 상당히 복잡한곳이라고 할 수 있겠다.

흔히 도서관이라 하면 그 이미지 그대로 조용하고 정숙한 느낌을 떠올리는 것이 당연한 일이겠지만 사실 도서관이라는 공간은 그런 이미지와는 달리 실제로는 몹시도 혼잡한곳이다.

우선 많은 사람들이 오고가고 많은 사람들이 머물러 있기도 하며 -물론 머무르는 시간의 차이는 있지만- 그리고 무엇보다 사람들은 그 안에서 끊임없이 뭔가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모든 연령층의 학생들이 방학을 했을 시기에는 그 정도가 더욱 심해진다.

내가 도서관을 주로 찾는 이유는... 물론 책을 대여하기 위해서다.

도서관에서 책을 대여해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세상에는 정말 온갖 종류의 책이 출판되고 또 책꽂이에 꽂혀진다.

가끔 책꽂이들 사이사이로 걸어 가다보면 어지러움 증이 느껴지곤 할 때가 있다. 그건 실제 어지럽기 보다는 수많은 책들에 둘러싸여 있다보면 굉장한 위압감에 짓눌리는 것 같은 느낌이 들기 때문일 것이다. 실로 세계는 그 책들의 양이 얘기해주듯 내가 모르는, 또는 알지 못하는 부분들로 가득 채워져 있다는 사실을 새삼 느끼기 때문이다.

도서관에 책을 빌리러 갈 때의 나는 미리 어떤 책을 빌려야겠다고 생각하는 경우는 거의 드물다. 가서 이런 저런 분류되어있는 책들을 살피고는 적당한 책을 선택해서 읽는 것이다. 하지만 내가 찾는 분류된 목록은 지극히 한정되어있어서 그것은 다양함과는 거리가 좀 있긴 하다. 그러나 오늘은 좀 달랐다. 나는 이미 대여할 책의 제명을 머리 속에 담은 채로 온 것이었다.

그것은 얼마 전에 우연히 출판관계의 사람과 만나게 된 자리가 있어서 몇몇 사람들이 함께 얘기를 나누는 중 어떤 얘기를 들었기 때문이었다.


「국내에서 출판된 책 중에 단 1권만이 팔린 전무후무한 책이 한권 있어.」


사람들은 그 얘기에 너무나 신기해했다. 하긴 그건 좀 상식적인 생각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이다. 어떻게 그런 일이 벌어질 수가 있단 말인가.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의문을 제기하자 사내는 - 이름이 잘 떠오르지가 않는다 - 마치 고대 왕조의 비밀이라도 고백하는 말투로 우리들에게 얘기를 해줬다.


「물론 일종의 사고인 셈이라 할 수 있지. 처음 초판을 찍었는데 그만 인쇄소의 실수로 뒤쪽 한.... 10페이지 정도의 내용이 인쇄가 안 된 채 서점으로 배포가 된 거야. 출판사에서는 부랴부랴 전권 회수를 했지. 그런데 이미 두 권이 벌써 판매가 돼버린 거야. 어쩔 수 없는 일이긴 했는데 그중 한권은 사간 사람이 출판사에 항의를 하게 되서 간신히 회수가 됐는데 나머지 한권은 아무도 연락이 없었던 거지.」


「그럼 책은 다시 인쇄를 한 거야?」


「그게 또 아이러니하지. 그 일이 있은 직후 출판사가 부도가 나서 망해버렸거든.」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혹시 그 책 제목을 좀 알 수 있을까요?」


내가 호기심으로 그에게 묻자 그는 잠깐 가만히 생각하고는 대답을 해줬다.

김성경이라는 작가의 ‘감각나무의 사계’ 그것이었다.

제목만으로는 그 책이 도대체 무슨 책인지 감이 오지가 않았다. 소설인가? 이론서인가? 아니면.... 어쨌든 나는 실 날 같은 우연을 기대하며 오늘 도서관에서 그 책을 찾아보려고 온 것이었다.

세상에서 단 한권뿐인 책. 흥미로웠다.

도서관에서 책을 찾는 일은 생각보다 어렵다. 컴퓨터로 검색을 하고 지정한 위치로 가도 온갖 책들이 뒤섞여있어서 그리 녹녹치가 않은 것이다.

나는 우선 컴퓨터로 제목과 작가를 입력해서 찾아보았다.

그리고 단 2,3초도 안돼서 컴퓨터는 김성경의 ‘감각나무의 사계’를 토해내었다.

난 솔직히 몹시 놀랐다. 이건 마술 같았다.

세상에나, 세계에서 단 한권뿐인 책이 이런 조그만 시립도서관 구석에 쳐 박혀 있었다니...

난 마치 진귀한 보물이라도 발견한 것인 양 소리라도 지르고 싶었지만 꾹 참고는 분류되어있는 책꽂이로 움직였다.

아마도 그 책은 소설은 아닌 모양으로 분류는 뜻밖에 종교서적으로 되어있었다.

책은 의외로 눈에 띄는 곳에 있어서 찾기가 쉬웠다. 그리고 거의 손때가 탄 곳도 없이 갓 인쇄소에서 나온 듯 깨끗한 상태로 책 옆으로 커다란 시립도서관 스티커만이 붙어있었다.

책의 첫 느낌은 굉장히 심플하게 보였다. 표지에는 커다란 고목이 그려져 있었는데 그것은 여느 나무들과 크게 달라보이진 않았다.

이게 감각나무인가?

나는 호기심에 일단 그에게서 들은 것이 사실인지가 궁금해서 책의 끝부분을 펼쳐보았다.

그리고 정말로 책의 마지막 20페이지 정도의 분량은 잡티하나 없이 깨끗한 종이가 누런 색깔을 띤 채로 비어있었다.

그것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자니 어쩐지 경이롭기도 하고 또 어색한 느낌도 들었다. 여지껏 이런 책은 한 번도 본 일이 없는 것이다. 차라리 뜯겨져 나간 책은 본적이 있을지언정.

그때 내 눈에 책 속에 뭔가가 보였다.

그것은 글씨가 있는 마지막 페이지와 인쇄가 안 돼 있는 시작 페이지의 사이에 끼워져 있었다.

사진? 사진이었다.

20대 초반이나 중반쯤 된 여자의 증명사진이 끼워져 있었다.

뜻밖의 발견에 잠시 주위를 둘러보고는 -나도 모르게- 사진을 손으로 빼내서 조심스럽게 살펴보았다.

여자는 무표정하게 정면을 바라보고 있었고 어깨쯤 내려오는 단정한 단발차림으로 꽤 호감 가는 인상을 가지고 있었다. 아마도 책을 읽은 위치를 표시하는 걸로 사진을 이용하다가 빼는 것을 그대로 잊은 채로 반납을 한 모양이라고 생각했다.

사진을 가만히 보고 있자니 지나치는 사람들이 힐끔대고 보는 듯해서 나는 일단 다시 사진을 끼워 넣고 책을 덮고는 대출 담당자가 있는 쪽으로 걸어갔다.

대출 증을 내자 도서관의 여직원은 마술지팡이 같은 바코드기계로 찍어보고는 입력을 하고 나에게 책을 다시 건네주었다.

나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그녀에게 말했다.


「저기.... 혹시 이 책을 대여했던 사람들이 몇 명 정도나 되는지 알 수 있을까요?」


도서관 여직원은 잠시 내 질문에 고개를 갸웃하고는 이유도 특별히 묻지 않고는 컴퓨터모니터를 살폈다.


「음..... 1분인데요? 네, 딱 한분이네요.」하고 여직원은 강조하듯 나를 보고 말했다.


나는 고맙다는 간단한 인사를 하고는 천천히 도서관을 나왔다.

한명이라..... 그렇다면 그 딱 한명은 아마도 책 속에 사진, 그녀일 것이다.

한권이 팔린 책, 그리고 한사람만이 대출한 책... 아무래도 이 책은 1이라는 숫자와 밀접한 인연이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나는 계속 두 번째로 이 책을 손에 쥐고 있다.





집으로 돌아와 난 먼저 책 속의 사진을 꺼내서 책상 앞에 있는 벽에다 사진을 붙여놓고 가만히 다시 살펴보았다.

사진속의 그녀는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로 나를 가만히 응시하고 있었다.

주민증에 들어갈 만한 크기의 사진이었지만 사진속의 그녀는 무표정한 얼굴과는 다르게 뭔가 기묘한 느낌을 풍기고 있었다. 뭐랄까..... 뭔가를 호소하고 있는 듯한, 그런 표정.

그녀는 뭘 얘기하고 싶어 하는 걸까?

사진을 바라보면서 점차 내 머릿속 상상력은 날개를 달고 이리저리 춤을 추듯 하염없이 날아다니기 시작했다. 그러다 추락해서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을 때에는 이미 시간이 새벽을 지나가고 있었다.

뭔가 불가사의한 사진이다.

그렇게 결론을 내리고는 난 잠으로 빠져들었다.






「사진? 책 속에? 어떤 사진인데요? 예뻐요? 왜 사진을 껴 놓은 거지?”


난 한숨을 쉬었다.


「한 가지씩 물어봐. 숨 넘어 가겠다.”

「헤헤!」


그녀는 혀를 쏙 내밀고는 계속 들여다보던 휴대폰도 탁 덮고는 궁금한 듯 말했다.


「혹시 유혹하는 거 아닐까요?」

「유혹?」

「왜 있잖아요? 일부러 손수건 떨어뜨리는 것과 같은 그런 거. 남자를 꼬시기 위한... 어떤 수법일지도 몰라.」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못 말리는 학생이군.


「200% 확신하지만 그런 건 아냐. 도대체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할 수가 있는 거지?」

「이래서 세대 차이라구요. 사람이 이성을 꼬시는 데에는 그 어떤 법칙이나 규칙도 적용이 안 되는 거예요. 어떤 방식이든지 결과만 좋으면 좋은 거라구요. (잠시 생각) 그러고 보니 그거 괜찮은 방법인데? 만약 특허가 없는 거라면 내가 써먹어도 될까? 나도 자주 이용하는 도서관이 있는데 어떤 남자가 발견할지 아주 흥미롭네!」


휴....

나는 다시 한번 한숨을 쉬고는 고개를 흔들었다. 도저히 그녀에게 난 상대가 안 된다.


「혹시 사진 뒤에 연락처라든지 그런 건 없었어요?」

「전혀.」

「사진 가지고 있어요?」

「아니. 내 책상 앞에 붙여놨는데?」


순간 말하고는 나는 속으로 ‘아차’ 싶었다. 아니나 다를까 그녀는 얼굴을 찌푸리며 나를 쏘아봤다.


「책상 앞에? 왜요? 그 여자가 그렇게 맘에 들던가요?」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 그런 건 아니고 그냥....」


내가 얼버무리듯 말하자 그녀는 그때부터 입을 다물었다. 그녀가 이렇게 입을 다물고 시선을 외면하는 건 뭔가 속이 뒤틀렸다는 의미다. 경험으로 알 수 있다.

그녀보다 12살이나 위인 나였지만 이럴 때는 속수무책이다. 어떻게 하든지 그녀의 뒤틀린 심사를 풀어줘야 한다.


「‘감각나무의 사계’ 라는 책 들어 본일 없지? 당연히 그럴 거야. 왜냐면 그 책 한국에서는 단 한권뿐인 책이거든.」


그러면서 나는 그 책에 대해 들었던 얘기를 쫘악 풀어 놓았다. 그녀는 그런 얘기들을 굉장히 좋아한다. 이것 역시 경험으로 안다.


「그런 책이 있었다니 신기하네요.」


얘기를 듣고는 입을 여는 것을 보니 안심이 됐다.


「다 읽었어요?」

「음, 아직. 하지만 오늘 밤 새벽 1시쯤이면 다 읽지 않을까 싶네.」

「그 여자는 다 읽었을까요? 책 속에 있던 그녀 말예요.」


책 속에 있던 그녀?

그 표현에 나는 웃음이 났다.


「글쎄.... 」

「아직도 난 그 여자의 사진이 거기 있었다는 게 우연 같지가 않아. 아마도.... 음..... 무슨 메시지 같은 게 아닐까?」

「그거 X파일 같잖아. TV보는 시간 좀 줄이라구.」

「그 여자를 만나보고 싶지 않아요?」

「그 여자를? 만나서 내가 뭐하게?」

「왜 사진을 껴 놓았냐고 물어보죠. 그리고 책에 관한 얘기도 하고.... 인쇄되지 않은 페이지들에는 어떤 글이 쓰여 있었을까 같이 고민도 해보고, 유추도 해보고 재밌을 것 같지 않아요?」

「별로.」

「흐흥」


그녀는 묘한 콧소리를 내고는 다시 휴대폰을 열고는 어디론가 문자를 보내고 있었다.


「혹시라도 그녀를 만나게 되면 내게도 알려줄래요?」

「만나게 될 리가 없잖아?」

「책 속에서도 만나는데 하물며 밖이라고 다를까. 만나면 꼭 이예요. 알았죠?」


나는 알았다고 대답했다. 하지만 그런 일이 일어날 리가 없잖은가, 라고 생각했지만 그런 일은 일어났다. 엄밀히 말하면 그녀를 만난 것은 아니었지만. 기묘하게. 이래서 세상은 재밌는 곳이다.






나는 자주 혼자 극장엘 가곤했다.

내가 자주 가는 극장은 내가 사는 신도시 중심가에 위치한 개봉관인데 복잡한 시내에 있는 극장보다는 한적한 이런 곳이 내 맘에 들고 요새 극장들은 대부분 멀티플렉스 -복합 상영관- 이기 때문에 웬만한 프로들도 다 볼 수 있다.

화창한 오후에 어두침침한 극장에 몸을 기대고 있는 것은 어찌 보면 굉장히 비 생산적인 행위 같지만 알게 뭐람? 보고 싶은 영화가 상영 중이 길래 내 발걸음은 자연스럽게 극장으로 향했다.

표를 끊고 상영까지 한 30여분의 시간이 남아 있어서 입구 밖의 대기의자에 앉아 온갖 영화들의 팜플릿들을 꼼꼼히 읽어 보고 있는데 문득 뭔가가 내 머릿속을 파고들었다.

뭐지, 이 느낌? 방금 무엇인가가 내 시선에 잡혔다.

나는 내 신경에 집중했다. 뭐였지? 팜플릿에 있었나? 아니다. 지금 뭔가를 봤는데.....

나는 팜플릿에서 눈을 떼고 주위를 살폈다. 누군가가 내 시선에 잡혔다.

조금 전에 내 맞은편으로 엘리베이터가 열리고 한 여자가 내렸다. 그리고 그녀는 내 맞은편에 있는 의자에 앉았다. 그녀의 얼굴, 바로 사진속의 그녀다. 이런....

나는 잠시 황당한 표정으로 그녀를 쳐다보고 있었다. 맞은편에 앉아있던 그녀도 영화 팜플릿을 보고 있었는데 내 시선이 느껴졌는지 내 얼굴을 흘낏 쳐다봤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그녀는 불쾌한 기색으로 시선을 피했다. 아마도 집적대는 느낌이 들었나 보다. 나도 머쓱해져 일단 시선을 돌렸는데 눈은 팜플릿을 보고 있었지만 신경은 온통 그녀 쪽으로 쏠려 있었다. 그녀 역시 시선은 돌리고 있었지만 내 쪽으로 신경을 쓰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가 있었다. 그녀 쪽은 거부반응이었다.

한 30여초 정도 있다가 그녀는 기분 나쁜 표정으로 일어서서 상영관 안으로 들어갔다. 내 쪽으로는 눈길 한번 주지 않고.

나는 그녀가 앉아있던 자리를 쳐다보며 뭘 어떻게 해봐야 할지 잘 떠오르지가 않았다. 뭔가 말을 걸어보긴 하는 게 나중에 후회가 없을 것 같은데 처음 말을 붙일 문장이 잘 떠오르지가 않았다.

사진 잃어 버리셨죠? 흠, 이상해. 저 ‘감각나무의 사계’ 라는 책 읽으신 적 있죠? 왠지 엉뚱한 수작을 피우는 말 같군.

휴. 어쨌든 난 일단 상영관 안으로 들어갔다.

스크린에서는 특유의 지방광고들이 과장된 성우의 목소리와 함께 흘러나오고 있었다. 난 잠시 좌석을 훑어보고 그녀의 위치를 찾았다. 그녀는 중앙에 위치한 두 번째 열에 앉아있었다. 나는 일단 용기를 내서 그녀 쪽으로 다가갔다. 그녀 옆에 서자 그녀는 불안한 눈빛으로 나를 올려다봤다. 스크린으로 내 머리가 동그랗게 그림자를 만들고 있었다. 나는 헛기침이 나왔다.


「혹시.... 책 속에 사진을 껴놓지 않으셨어요? ‘감각나무의 사계’라는 책인데요.」


이런, 마치 정신병자의 얘기처럼 들리는군.

그녀는 나를 보면서 잠시 생각을 하고는 ‘아뇨, 그런 적 없는데요?’ 대답을 했다.


「시.... 실례했습니다.」


나는 사실 ‘그럴 리가요? 제가 봤는데요?’하고 말을 하고 싶었지만 도저히 입 밖으로 나오지가 않았다. 뭐가 그렇게 어려운 얘기라고.

그런데 이상했다. 틀림없이 그녀의 얼굴이 맞는데 왜 아니라고 할까? 기억을 못 하는 것인가? 아니면 내가 외모를 착각을 한 건가?

나는 그녀에게 멀찍이 떨어져 앉은 좌석에서 그녀의 뒤통수를 쏘아보며 고개를 저었다.

일단 외모를 착각한다는 건 분명 아니다. 책상 앞에 붙여진 사진을 날마다 봤었기 때문에 얼굴을 또렷이 머릿속에 담고 있다. 저 여자는 틀림없이 그녀의 얼굴이다. 그렇다면 그녀가 기억을 못하고 있다는 것이 타당한 얘기다.

뭐야, 그만두자. 별것도 아닌 일로. 기껏 해봐야 책 속에 사진 쪼가리 하나 껴져 있었던 건데 너무 오버한 것 같군. 영화나 보자고.

나는 스크린을 바라봤다.


「저기.....」


나는 소리가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녀가 어느새 내 옆쪽으로 와있었다. 그녀의 태도를 생각해 본다면 의외였다.


「아까 제게 말씀하셨던 거요..... 책 이름이 ‘감각나무의 사계’ 맞나요?」


아, 이제야 기억이 났나보다.


「그래요. ‘감각나무의 사계’ 맞아요.」

「그 책에 사진이 껴져 있었다구요?」

「네, 그쪽 사진이 있었어요. 증명사진이..... 」

「틀림없이 제 얼굴이 맞나요?」

「?」

「그러니까 제 말은..... 전 그 책을 읽은 적은 없거든요.」

「그렇다면 이상한 일이네요. 제가 보기엔 그 사진은 분명히 그쪽의 얼굴이에요. 200% 확신합니다.」


그녀는 피식 웃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도 그건 제 사진은 아니에요. 전 그런 책을 읽은 기억도, 책에 사진을 껴놓은 적도 없으니까.」

「희한한 일이네요.」

「다만......」


그녀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그 책의 표지를 본적이 있어요. 동생 방에서. 책상위에 놓여있었죠. 그렇다면 그건 동생의 사진일거예요.」

「동생?」

「그래요. 내 여동생. 우리는 쌍둥이였죠.」






「쌍둥이?」


그녀는 곰 우리 앞에서 문자를 보내다 나를 쳐다봤다. 곰은 과자라도 던져주기를 바라는 눈빛으로 우리 둘을 보고 있었다.

나는 한숨을 쉬었다.


「도대체 누구에게 그렇게 문자를 계속 보내는 거야? 동물원에 왔으면 동물들을 봐야지. 그리고 동물 앞에서 동물을 안보고 문자를 보내는 일에 몰두하고 있는 건 동물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구.」

「쳇! 또 시작이네.」


그녀는 웃음을 지었다.


「하던 얘기나 계속 해봐요. 그러니까 그녀들은 쌍둥이였다는 거죠?」

「엄밀히 말한다면...... 쌍둥이였었다는 거지.」

「쌍둥이였었다? 그럼, 지금은 아니다....? 무슨 말예요, 그게.」


나는 그녀를 보고 웃었다. 나 역시 극장에서 그녀에게 그렇게 물었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잠시 스크린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다가 말했다.


「제 얘기를 좀 들어주시겠어요?」


그녀는 뭔가 하고 싶은 말이 있어 보였다.


「그럼 밖으로 나갈까요?」

「아뇨. 여기가 좋아요. 여기가 편하니까.」

「하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몇 명 없잖아요? 다들 멀리 떨어져 있고. 들리지 않을 거예요.」

「흠, 그럼 좋습니다.」


스크린에서는 막 예고편이 끝나가고 있었다.


「동생과 나는 일란성 쌍둥이에요. 외모로도 거의 구별이 가지 않았었지만 우린 성격조차 비슷한 점이 많았었죠. 집안 식구들 조차 잘 구별을 못해서 소동이 벌어진 적도 많았어요. 고등학교 때 한번은 동생이 가벼운 교통사고로 입원을 한 적이 있었어요. 동생의 담임선생님이 병문안을 왔었죠. 그 다음날 복도에서 그 선생님을 우연히 제가 마주치게 됐는데 깜짝 놀라시면서 ‘아니? 벌써 퇴원을 한 거야?’ 하시는 거예요. 이정도 일은 다반사였죠.」


난 슬며시 웃었다. 그럴만하겠군.


「여기저기 순식간에 나타날 때가 많아서 친구들은 농담으로 우리를 초능력자로 불렀었죠.」

「텔레포트... 맞죠?」


내가 농담처럼 말하자 그녀의 희미한 미소가 불빛에 비췄다.


「그래요. 하지만 사람들은 몰랐죠. 진짜로 특별한 능력이 있었다는 건.」

「네? 그럼 정말로 텔레포트를 했었다는 말인가요?」


그녀는 내 반응에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런 건 아니에요. 그리고 내가 아니고 동생에게.」


나는 잠자코 그녀의 얼굴을 응시했다. 스크린으로는 이미 본편 영화가 시작되고 웅장한 음악이 터져 나오고 있었다. 그녀는 잠시 스크린을 보다가 다시 말했다.


「동생에게는 남들과는 다른 특별한 능력이 있었죠. 꿈으로 앞일을 내다보는 능력.... 그거였어요. 예지몽(豫知夢).」


나는 흥미로웠다.


「정말로 동생이 꿈으로 예언을 했었단 말인가요?」


그녀는 잠시 적당한 단어를 찾는 것처럼 생각을 했다.


「그래요. 앞일을 내다봤죠. 꿈속에서.」


꿈으로 예언을 하는 쌍둥이 여동생이라.... 기묘했다.


「예언이라고 했지만 뭐랄까.... 좀 제한적인 거였어요. 자신의 일에 국한된 그런 거였죠.」

「그렇다 하더라도 대단하게 생각 되는데요?」

「저도 그렇게 생각했어요. 아무나 그럴 수 있는 건 아니었으니까. 그런데.... 동생은 뭐랄까.... 좀 특이했어요.」

「네..... 저도 확실히 좀 특이하다고 생각이 드네요.」


그녀는 내 말에 웃으면서 고개를 저었다.


「아뇨, 그런 측면이 아니라..... 동생은 자신의 앞일을 알면서도 그것을 그대로 받아들였어요.」

「네?」


잘 이해가 가지 않았다.


「좀 전에 얘기한 교통사고건만 하더라도 동생은 미리 알고 있었고, 미리 알고 있었으니까 얼마든지 사고는 피할 수가 있었는데 그러지 않았어요.」

「왜 그랬을까요?」

「언젠가 동생이 나한테 얘기한 적이 있었죠. ‘운명은 피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라고. 그리고 설사 당장에 피할 수는 있을지 몰라도 결국 어떤 식으로든지 다시 반복되기 때문에 겪어서 헤쳐 나가야 되는 거라고...」

「음.」


그녀가 얘기한 동생의 말은 어쩐지 철학자의 말 같았다. 운명은 피할 수 없는 것이다. 겪어서 헤쳐 나가야 한다...

그녀는 잠시 스크린을 바라보다가 씁쓸히 웃으며 말을 이었다.


「아마도 그런 생각을 가졌기 때문에 동생은 죽음도 그냥 받아 들였을지 몰라요.」






「음... 동생은 죽었군요. 그래서 이제는 그녀가 더 이상 쌍둥이가 아니라고 말 한 거고.」


그녀는 휴대폰의 단추를 누르고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녀의 휴대폰에서 ‘딩동’하는 소리가 났다. 멀리 아프리카에서 건너온 동물이 규칙적으로 풀을 씹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녀는 자신이 죽을 것을 알고 있었겠네요?」

「아마도 그랬겠지.」

「그럼 피해야 하는 거 아닌가? 그렇게 생각 안 해요? 죽는 것과 단순하게 교통사고를 당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다르잖아요? 아니면 그것조차도 운명으로 받아들여 순응해야 하는 뭔가가 있었던 건가?」


그녀의 말에 나는 픽 웃었다.


「상당히 예리한 구석이 있군.」

「이제야 아셨나?」


그녀는 혀를 낼름 내밀었다. 귀엽다. 흠흠, 이런 것 때문에 그녀를 좋아하지 않을 수 없다.

그녀는 내게 물었다.


「그녀는 어떻게 죽은 거예요?」






「살해당했어요.」

「살해?」


나는 그렇게 소리치고는 나도 모르게 손으로 입을 막았다. 다행히 극장은 커다란 푹풍우 소리로 꽝꽝 울리고 있던 터라 다른 사람들에겐 들리지가 않았다.

나는 잠시 스크린 안에서 몰아치고 있는 푹풍우를 감상하다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누군가가 그녀를 죽였단 말인가요?」

「그래요. 누군가가....」

「누구였죠?」

「아직까지 범인이 잡히지 않았어요.」


그녀는 스크린을 가만히 주시하면서 담담한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다.

둘은 잠시 스크린을 응시한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사진을 돌려 드릴까요?」


내가 그녀에게 묻자 그녀는 조용히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렇게 까지 하실 필요는 없을 거 같아요. 대신 부탁이 있어요. 동생이 읽었던 그 책 내용이 궁금해요. 끝까지 읽으시면 저에게 얘기를 좀 해주시겠어요? 그리고 한 가지만 더..... 몸이 좀 차가워 진 것 같은데 따뜻한 캔 커피 좀 사다 주시겠어요?」


그러지 않아도 나도 좀 한기가 느껴져 알겠다고 하면서 난 극장로비로 나갔다. 그리고 매점에 들러 캔 커피를 사서 다시 자리로 돌아왔을 땐 그녀는 이미 자리에 없었다.





기린의 우리가 보이는 벤치에 앉아 그녀는 자신에게 온 문자를 확인하고 있었다.


「으흥.... 그렇단 말이지..... 그래, 책은 다 읽었어요?」

「그럭저럭. 인쇄가 안 된 부분을 빼면.....」


그녀는 다시 답장을 하는 듯 바쁘게 휴대폰위의 손가락을 움직이면서 말했다.


「그 책 지금 가지고 있어요?」


불쑥 그녀는 그렇게 물었다.


「책? 오면서 읽느라 가지고는 있어. 근데 왜?」

「괜찮다면 내가 좀 보고 싶어서.」

「You가 읽기에는 그렇게 흥미로운 책은 못 될 텐데?」

「고딩을 너무 무시하지 말라 구요.」


그녀는 가르치는 말투로 그렇게 말하고는 내 가방을 자신이 열어서 책을 가져갔다. 나는 그녀의 행동을 그저 멀건이 보고만 있었다. 책을 꺼내든 그녀는 펼쳐보지도 않고 자신의 가방으로 쑤셔 넣으며 말했다.


「자, 이제 뱀들이나 보러 가자 구요.」

「뱀?」

「뱀을 좋아해요. 예쁘잖아요? 화려한 색깔하며... 빨리 가자구요!」


뱀을 좋아하는 여고생이라. 하여간.





- 봐요지금좀만나요.

그녀에게서 문자가 온건 다음 날 오전이었다. 그녀가 나에게 문자를 보내는 건 참으로 드문 일이라 몹시도 낯설었다. 심지어 가슴이 두근거리기까지 했다.

우리가 만나는 장소는 늘 그 허름한 BAR라서 별 고민 없이 나는 그곳으로 향했고 그녀는 이미 우리가 앉는 지정석에서 홀짝거리며 녹차를 마시고 있었다.

BAR에서 녹차? 참내.


「학교에 가 있어야 할 시간 아닌가?」

「개교기념일.」


그녀는 그렇게 짤막하게 대답했다. 그리고는 가방에서 책을 꺼내서 탁자에 올려놓고 내 쪽으로 쑥 밀었다.


「다 읽은 거야?」

「당연하지. 난 책을 한번 붙들면 그 자리에서 다 읽어버린 다구요.」

「안 다구. 밥 먹을 때도, 화장실 갈 때도... 」


그녀는 핸드폰을 꺼내 어딘가로 또 문자를 찍어대기 시작했다.


「재밌었어?」

「뭐가?」

「뭐겠어? 책 말이야.」

「흐흥」


콧소리.


「긍정인거야? 부정인거야?」

「별로.」

「흐흥」


이번엔 내가 콧소리를 냈다.


「혹시 인쇄 안 된 부분도 봤어요?」


그녀의 물음에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책을 보는 자세가 안 되셨군. 끝까지 봐야지.」

「뒤에 뭐가 또 있는 거야?」


그녀는 내 물음에 대답 없이 문자 보내는 일에만 열중하고 있었다.

나는 책을 펼쳐 들고 인쇄가 되어있지 않은 부분을 하나하나 넘겨보았다.

거의 마지막쯤에 뭔가가 빼곡한 글씨로 적혀 있었다. 정갈한 느낌으로 쓰여 있는 글씨는 영어였다.


「이게 뭐지?」

「레드 재플린(Red Zepplein). 천국으로 가는 계단(Stairway to Heaven). 1971년.」

「그쯤은 나도 알아. 가사잖아? 근데 이게 왜 여기 적혀 있느냔 말이지.」


그녀는 나를 보고 픽 웃었다.


「누군가 적었겠죠.」

「누구? 그 여자가?」

「그럼 누구겠어요? 책 속의 그녀지.」

「허어.」


나는 잠시 어리둥절한 기분으로 종이에 쓰여 있는 가사를 들여다보았다.

그녀가 문자를 다 보내고는 나를 보면서 고개를 쑥 내밀었다.


「이상한 거 없어요?」

「뭐가?」

「그 가사.」

「글쎄....」


내가 머뭇거리자 그녀는 답답한 듯 말했다.


「가사를 꼼꼼히 잘 보라구요.」


나는 핀잔을 받는 게 좀 기분 나빴지만 가사를 잘 읽어 보았다. 평소에 노래만 듣다가 이렇게 가사를 하나하나 읽으려니 어쩐지 눈에 잘 들어오지가 않았다. 그나마 깔끔한 글씨체 덕에 그런대로 읽어 나갔다.


「어?」


내가 뭔가 이상한 듯 소리를 내자 그녀는 잠깐 나를 힐끗 쳐다보고는 아무렇지 않은 듯 계속 다시 휴대폰에 열중하고 있었다.

나는 다시 한번 그녀의 말대로 꼼꼼하게 가사를 살펴보았다. 분명했다.


「글자들이 빠져 있군.」

「딩동댕. 정답.」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뭐지? 실수로 빼먹은 걸까? 아니면.....」

「의도적인 것일까?」


그녀가 고개를 갸웃하며 나를 놀리듯이 말했다. 그리고는 자신의 아담한 가방에서 뭔가를 꺼내 펼쳤다. 노트였다.


「그런 건 한 번에 보고 알 수 없어요? 그렇데 둔하다니....」


그녀가 나를 흘겨보며 말했고 나는 그 얘기가 좀 부당하다고 생각했지만 따지지 않고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 노트를 보며 내가 말했다.


「이건 뭐지?」


그녀가 펼친 노트위에는 몇 개의 영문자가 적혀져 있었다.


「자꾸 묻지만 말고 자신이 생각을 해보세요. 좀.」


끄응. 나는 노트를 들여다봤다. 잠시 문자를 들여다보며 생각한 나는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이건 이 가사에 빠져 있는 글자들이군. 그렇지?」


그녀는 노트를 자신 쪽으로 가져가더니 마치 과외 선생처럼 조목조목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그래요. 가사에 빠져 있는 글자들. 보면 m은 ‘she can get what she came for.....'에서 ’came' 에 빠져 있는 글자고, u는 ‘she's buying a stairway to heaven...' 에서 빠져 있는 글자예요.」


나는 그녀의 노트를 고개를 꺾으며 들여다보고 끄덕였다.


「그렇군.」

「그렇게 쭉 빠진 글자를 나열하면 이렇게 나오는 거죠. mubgnuoyiohc!」

「그런데?」


내가 그녀의 얼굴을 보며 묻자 그녀는 한숨을 내쉬었다.


「이 글자들 잘 보면 뭔가 느껴지지 않아요?」


나는 글자들을 가만히 살펴보았다. 그러다가 나는 그녀를 보고 고개를 저었다. 그녀는 내 모습이 멍청해 보였는지 ‘풋’ 웃고는 말했다.


「그 글자들을 그대로 보면 아무것도 아니지만.... 이렇게 반대로 보면....」


그녀가 노트에 다시 글자들을 적었다.

'choiyoungbum'


「자, 이제 어때요?」


내가 여전히 묵묵부답으로 있자 그녀는 ‘어휴’하며 답답한 듯 가슴을 쳤다. 그리고는 볼펜을 빼들더니 노트에 사선을 그었다.


「보라구요!」

'choi/young/bum'


「이건.... 사람 이름 같은데? 최, 영, 범?」

「그래요. 최영범. 그녀는 의도적으로 글자들을 그렇게 빼 놓은 거라구요.」

「의도적.... 그렇다면....」

「그녀가 예지몽을 꾼다고 그랬죠?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안다고 그랬죠? 그녀는 알고 있었던 거예요. 누가 자신을 살해 할지를. 그래서 이렇게 일종의....」

「다잉 메시지로군!」


내가 재빨리 말하자 그녀는 킥 웃음을 지었다.


「이제 알겠어요?」

「그렇다면 그녀를 살해한 범인의 이름이 최영범 이란 말이네.」

「빙고!!」


그녀가 흥겨운 목소리로 외쳤다.

나는 그녀의 반응에 웃다가 안색을 바꿨다. 그리고 감탄한 듯 말했다.


「야~ 그런데 어떻게 그런 걸 다 알 수가 있었던 걸까?」


그녀는 별거 아니라는 듯 말했다.


「글자가 빠진 거야 보면 알 수 있는 거고.... 그것을 반대로 봐야 한다는 건 레드 제플린은 ‘backward masking’(음악을 반대로 돌리면 다른 메시지가 들리게 하는 기법)을 사용한 그룹이니까....」

「이야~~」


내가 다시 한번 과장되게 감탄하자 그녀는 오히려 얼굴을 찡그렸다.


「그만해요. 유치하게시리....」

「잠깐, 그러면 이럴게 아니라 범인을 잡아야 하는 거 아냐?」

「어떻게?」


그녀가 무표정한 얼굴로 내게 물었다. 나는 그녀의 얼굴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다시 노트의 글자들을 바라보다가 힘이 쭉 빠져 소파로 털썩 기댔다.


「젠장. 여기서 막히는 거잖아? 한국에 있는 최영범이란 사람들을 다 조사할 수도 없는 일이고... 그녀의 언니 연락처라도 그때 알았다면.... 」


그런데 의외로 내 앞에 앉아있는 18세 여고생의 표정은 밝아 보였다. 갑자기 그녀는 가방을 둘러메고 천천히 일어서더니 말했다.


「가요!」

「응? 어딜?」

「이름을 알았으니 범인의 얼굴을 보러가야죠?」

「어?」


나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그녀를 올려다봤다.






그녀를 따라 쫄래쫄래 간 곳은 홍대 앞 번화한 거리였다.

나는 이곳에 도대체 그녀를 죽인 범인인 최영범이란 사람이 어디에 있다는 것인지 도통 알 수 없었지만 그녀는 계속해서 시원한 얘기 없이 나를 이리저리 이끌더니 번화한 뒤쪽의 어느 건물 앞에 멈춰 섰다.


「다 왔네요.」


건물을 올려다보며 그녀가 말했고 나도 그녀를 따라 올려봤다. 깔끔한 느낌의 간판이 보였다.

‘천국으로 가는 계단’

카페의 간판이었다.


「아하....」

「들어갈 필요 없겠네.」


그녀가 가리킨 곳을 보니 입구에서 말끔한 한 사내가 손에 수갑을 찬 채로 나오고 있었다. 날카로운 인상을 한 그는 몹시 피곤한 기색이었지만 굉장히 잘 생긴 인상이었다. 그리고 그의 옆에는 40대쯤의 덩치가 큰 사내가 그의 팔을 붙들고 있었다.

그들은 건물 앞에 세워져 있는 패트롤카에 올라타기 시작했다.

그녀가 차로 다가가 덩치 사내에게 아는 척을 했다. 그러자 사내는 반가운 표정으로 그녀에게 뭐라 말을 하고 손을 들더니 차에 올라 그대로 출발을 했다.

차가 내 옆으로 지나가자 그녀가 내게 다가와 크게 기지개를 켰다. 나는 어찌된 일인지 영문을 몰라 그녀에게 물어보려 하자 그녀가 손을 들어 제지했다.


「일단, 배가 고프니 밥부터 먼저.」


할 수 없이 나는 아무 말 않고 그녀를 맥도날드로 데려갔다.


「자.」


나는 그녀의 손보다도 더 큼지막한 빅맥을 갖다놓고 물었다.


「이제 얘기 좀 해봐. 어떻게 된 거지?」


그녀는 빅맥을 한 웅큼 베어 물고 잠시 우물우물 하면서 내 속을 타게 하더니 콜라를 한 모금 빨고는 숨을 내쉬었다.


「후아.」

「그만 좀 말해봐. 어떻게 찾아 낸 거야.」

「듣고 나면 싱거울 텐데?」

「그럼 소금 좀 치지. 뭐....」


그녀는 나를 흘겨봤다.


「문제는 간단해요. 너무 간단해서 하품이 나올 지경이니까. 먼저 생각을 좀 했죠. 최영범 이란 인물을 찾으려면 그녀의 신상을 좀 알아야겠죠? 그래서 도서관으로 갔어요.」

「도서관?」

「그래요. you가 그 ‘감각나무의 사계’를 빌렸다는 도서관. 그곳에는 적어도 그녀의 이름이 있을 테니. 알기 쉽잖아요? 당신과 그녀가 유일하게 그 책을 빌린 사람이니까....」

「당신? 오빠라고 부르라니까?」


그녀는 내 말을 무시하고 얘기를 계속했다.


「그래서 알았죠. ‘성화연’이라는 그녀의 이름을.」

「아~~ 하지만.... 그렇게 쉽게 다른 사람의 신상을 알려 주진 않을 텐데?」

「후후후후.」


그녀가 기분 나쁜 소리로 나직이 웃었다.


「그래서 공권력이 필요한거죠. 아까 그 사람 끌고 가던 아저씨 봤죠?」

「그 불곰 같은 아저씨?」


그녀가 인상을 썼다.


「우리 막내 삼촌이시라구요! 경찰이시구!」

「아, 미안!」

「흠, 어쨌든 그래서 그녀의 신상은 대강 알았고 이름을 알게 됐으니 자연 그 살인사건에 대한 부분도 알았고 그녀의 주변인물중에 최영범이란 사람도 쉽게 찾았죠.」


나는 어쩐지 맥이 탁 풀려버리는 느낌이었다. 모든 것이 어쩐지 어이없는 과정으로 흘러가 버린 느낌이었다.


「그런데 정말 그 최영범이란 사람이 그녀를 죽인 게 확실한 거야?」


그녀는 햄버거를 놓고 자신의 휴대폰의 문자를 확인하더니 나를 쳐다봤다.


「그건 경찰이 알아서 밝혀내겠죠? 그게 경찰이 하는 일 아닌가요?」


나는 목에 가시가 걸린 것처럼 껄끄러운 느낌이 들었다.

그녀는 그런 내 기분에 아랑곳 않고 햄버거를 먹다가, 문자를 보내다 하면서 부산스러웠다.


「그 사람, 최 영범이란 사람은 그녀와 어떤 관계지?」


그녀는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연인관계. 몇 개월 전 얘기지만. 내 생각에는 아마도 그녀가 그 사람을 무척 좋아했었다고 생각돼요. 그렇게 묵묵히 죽음을 받아들인 것 보면.」

「그런가?」

「하지만 일말의 복수심은 있었겠죠. 배신을 당한.」

「알만하군.」


나는 좀 우울한 기분이 들었다.


「휴....」


내가 한 숨을 내쉬자 그녀는 나를 쳐다봤다.


「왜 그래요?」

「그녀가 어떻게 죽었는지 혹시 들었어?」


그녀는 잠시 나를 빤히 보다가 위를 올려다보더니 결심한 듯 말했다.


「극장에서. 교살 당했데요.」

「극장?」


내가 다소 놀라며 되묻자 그녀는 또 말했다.


「한 가지 더 까무라칠 얘기 할까요?」

「....」

「도서관 책 속에 사진을 껴 놓았던 그녀는...」


나는 멍한 표정으로 그녀의 말을 듣고 있었다.


「....언니가 없어요. 쌍둥이도 아니고.」





나는 내가 겪는 일에서는 될 수 있으면 논리적으로 생각하는 습관이 굳어져 있는 사람이다. 그래서 그녀의 얘기를 듣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계속해서 몹시 혼란스러움을 느꼈다. 지하철에서도 계속해서 그때 그 극장에서 느꼈었던 한기가 어쩐지 되살아나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난 계속해서 이 모든 일을 논리적으로 생각해보려고 애를 썼다.

집으로 돌아와서도 나는 책상 앞에 앉아 골똘히 벌어진 일들에 대해 인과성에 근거한 앞뒤를 맞추려고 생각을 했다. 그때 낯익은 내 주변의 풍경에 뭔가 이상이 생긴 느낌이 들었다. 뭔가가 내 익숙한 시야에서 변해있는 게 있었다. 나는 내 방과 책상, 주변을 유심히 살폈다. 그러다가 책상 앞 정면을 봤을 때 비로소 알았다.

사진! 책 속에 껴있었던 사진. 그리고 내가 빼내서 앞에다 붙여 놓았던 그녀의 사진. 그게 없었다.

나는 혹시 뒤편으로 떨어진 것 아닌가 해서 구석구석 찾았지만 어디에도 보이지가 않았다. 나는 마치 귀신한테 홀린 것처럼 정신이 멍했다. 분명히 나는 그녀의 사진을 붙여놓고 다시 떼어낸 기억이 없었다. 아니면 내가 기억을 못하는 것일까?

나는 한동안 안절부절 하다가 결국 생각하는 것을 포기하고 말았다.

그날 밤, 나는 잠을 자다가 꿈을 꿨다. 아니, 꿈을... 꿨었던 것 같다. 그녀가, 도서관 책 속에서 내게 나타났었던 그녀가 등장했었던 것 같은데 그녀는 내게 이렇게 말했었던 것 같다.


-제 사진은 찾아 갑니다.



<Episode 1 끝>




※쓴지 꽤 오래 된 소설입니다. 시리즈 물 같이 써 보려고 캐릭터에 신경을 많이 썼었는데... 기억이 새롭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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