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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 소설 작업실

[창작단편] 비누의 요정

by 멀티공작소 2010. 7.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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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비누’ 다. 그리고 나는 그녀를 ‘비누의 요정’ 이라고 부른다.

 

그녀와 내가 처음 만난 것은 지금으로부터 한 6개월 전쯤 이라고 생각이 된다. 그리고 그날은 기분이 상쾌해지는 비가 내리고 있는 날이었다. 같은 비라도 그것은 보는 관점에 따라서 천차만별이라는 것을 난 알고 있다. 내가 느끼기에 그 날의 비는 상쾌했다. 분명하다. 어쨌든 그날 난 처음으로 그녀를 만났다.

 

 

사람을 만나게 되면 어쩔 수 없이 첫인상이라는 것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그녀의 대한 첫인상은? 이런, 내가 왜 그녀를 요정이라고까지 표현을 하겠나? 그것으로 대강 알 수 있잖은가? 그래도 필요하다면 그녀에 대해서 몇 가지 얘기해 보도록 하겠다.

우선 가장 중요한 것은 그녀가 독신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내게 있어서 상당히 중요한 사항이다. 왜냐면 난 그녀의 몸 외에는 그 누구에게도 접촉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그럴 바엔 차라리 분쇄기 같은 것에 갈려 빨리 사라져 버리는 게 오히려 행복할 것이다. 다음.

  

그녀는 아름다운 외모를 가지고 있다. 여기서 여성의 아름다움이라는 것에 대한 것을 잠깐 언급하고 넘어가야겠다.

여성의 아름다움이라는 것은 앞서 말한 비에 대한 느낌처럼 너무도 저마다의 관점과 취향이 다르기 때문에 쉽게 객관적 기준을 삼기가 모호한 부분이 있다. 안 그런가? 미스코리아로 선발된 여자를 100명의 사람이 모두 예쁘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그리고 실제 생활에서도 경험해 봤으리라 생각되지만 누구의 눈에, 또는 느낌에 저 여자는 정말 매력적이야, 하고 보일지라도 또 다른 어떤 사람은 같은 여자를 두고서 에이 별론데, 하고 말하는 것을 누구든지 한번쯤은 경험해 봤으리라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여성의 아름다움이라는 것도 결국 지극히 상대적인 관점에서 파악을 해봐야 할 필요가 있다.

 

 그럼 그녀에 대해서 얘기해 본다면 말하는 - 당연히 눈치 채시리라 생각하지만 - 나의 관점에서 봤을 때 그녀는 완벽한 100점짜리 여자라 말하고 싶다. 그렇게 말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보다 나는 그녀의 모든 것을 너무도 많이 알고 있고 정확히 알고 있기 때문이다. 당연하지 않겠는가? 어떻게 세상에 비누보다도 더 사람의 몸을 잘 알고 있는 것이 있을 수 있겠는가? 이렇게 얘기한다면 혹자는 바디 크렌저만 쓰는 사람도 있다, 고 반박할지 모르겠지만 내가 지금 얘기하고 있는 사람은 일반인이 아닌 그녀에 대한 얘기다. 적어도 내가 아는 그녀는 절대로 바디 크렌저 따위는 쓰지 않는다. 그녀가 사랑스런 이유는 바로 그녀가 너무도 비누를 사랑하고 좋아한다는 점도 무엇보다 커다란 플러스 요인이 되는 것이다.

어쨌든.

그녀가 자신의 의복을 벗고 욕실에 들어오는 그 순간은 나에게 있어서 너무도 행복한 순간이다. 그녀는 우선 샤워기의 물을 틀고 천천히 온수와 냉수를 적당하게 맞춘 후에 가볍게 몸을 적신다. 그런 후에 나의 몸을 쥐고 온 몸에 부드럽게 문지르기 시작한다. 세상에 어떤 남녀관계의 오르가즘도 이 보다 더 짜릿할 수 없다고 감히 얘기한다.

그녀는 우선 자신의 가느다란 팔에 나를 문지른다. 그리고 마치 어느 시에서처럼 길어서 슬퍼 보이는 목부터 시작해서 천천히 내려와 적당히 부풀어 있는 유방에 장난스럽게 원을 그리며 문지르고는 평평하게 단련된 윗배와 아랫배를 문지른다. 그리고 잠깐 뛰어 넘어 그녀의 길고 매끈한 두 다리로 나를 이동시킨다. 그리고서는 그곳에 또 나를 문지른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녀는 그녀의 음부에 나를 이동시킨다. 물에 젖어 촉촉한 채로 나를 기다리는 그녀의 성기는 내가 이동하는 최종 종착지이다. 그리고 나는 그곳에서 가장 짜릿한 오르가즘을 거의 매일 경험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짧은 - 내게는 너무도 짧게 느껴진다 - 순간이 끝나면 그녀는 나를 내려놓고 자신의 뽀얀 피부 곳곳을 손으로 매만지며 골고루 비누가 퍼지게 만든다. 그리고 다시 쏟아져 나오는 샤워기에 씻겨 내린다.

, 이 순간만큼 내게 고통스런 순간이 있을까? 내 몸 일부분의 조각들이 그녀의 육체에서 씻겨 내려갈 때 정말 나는 뼈가 깎이고 살이 찢기는 고통에 몸부림을 치고 싶다. 하지만 그것도 순간의 고통일 뿐이다. 그것이 끝나면 난 오랜 고독에 마치 고문 같은 고통을 또 감수해야만 한다.

 

 

 

내게 한 가지 다행스러운 것은 그녀가 욕실의 문을 닫아 두지 않는 다는 것이다. 그녀는 왠지 항상 욕실의 문을 열어 놓는다. 나를 위한 배려는 아닐까 항상 생각한다.

어쨌건 그로인해 나는 그녀의 많은 것들을 더 잘 알게 된다. 그녀의 말소리를 듣고, 그녀가 거실에서 오고가는 것을 볼 수 있으며 그녀가 무엇을 하고 무엇을 생각하는지 그런대로 알 수가 있는 것이다.

그렇게 그녀의 생활을 하나하나 보고 있는 건 움직일 수 없는 내게는 큰 기쁨이다.

그녀가 웃을 때는 나도 함께 웃었고 그녀가 우울해 할 때는 나도 우울하다. 그녀가 콧노래를 흥얼거리면서 요리를 하는 모습은 너무도 사랑스러워서 그것만으로도 나는 비누로서의 최고의 행복을 누리고 있다고 자부한다.

그녀가 가끔씩 세면대의 거울을 보면서 여드름을 짜내는 모습조차도 나는 너무 사랑스럽다. 그렇게 6개월여를 그녀와 생활하면서 나는 세상 무엇보다도 행복할 수 있었다. 어제 저녁 전까지만 하더라도 말이다.

 

 

 

어제 저녁.

그녀는 누군가와 상당히 긴 통화를 하고 있었다.

며칠 전부터 우울해 보였던 그녀는 어제 저녁엔 그 긴 통화를 하면서 조금씩 어깨를 들썩이고 있었다. 상당히 조그만 소리로 어둠 속에서 통화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난 그 내용을 정확히 알 수 없었다. 그렇지만 어둠 속에 가느다란 실루엣으로 보이는 그녀의 모습은 분명 여리고, 상처받고, 슬퍼하고 있다는 것을 난 분명히 느낄 수가 있었다. 그리고 가끔씩 강한 어조로 “당신은... 당신은...”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그녀의 그런 슬픈 모습이 너무나 애처로워 한없이 공감하면서도 솔직히 엄청나게 화가 치솟았다.

난 상대가 누군지 대강 예상이 되었다. 그녀의 화장대 위에 놓여있는 앙증맞은 액자 속에 그녀와 나란히 웃고 있는 그 놈이리라. 그 돼지같이 볼품없고, 지방 덩어리만 가득한 개자식 때문에 그녀가 그런 아픔을 겪고 있다는 것이 난 몹시도 분하고 서러웠다.

당신은 울 필요 없어. 그리고 슬퍼할 필요도 없어. 당신에게는 내가 있잖아? 누구보다 당신을 사랑하고 있는 비누가 있잖아? 난 비누의 요정에게 그렇게 소리치고 그녀를 안아주고 싶었다. 그러나 난 지금 그럴 수가 없었다.

 

 

 

어젯밤의 긴 통화를 끝낸 그녀는 욕실로 들어왔다.
그녀의 손에 큼지막한, 어떻게 보면 무자비하게 큰 가위가 손에 들려 있었다. 나는 그녀가 엉뚱한 행동을 하지 않기를 바랬다.

그녀는 갑자기 입고 있던 옷을 모두 벗어버리고는 거울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가위를 쳐들었다. 그리고는 자신의 긴 생머리를 조금씩, 조금씩 잘라내기 시작했다. 그녀의 부드러운 머리칼이 세면대 속으로 조각 조각나서 떨어져 내렸다. 그리고 그녀는... 울고 있었다.

그렇게 머리카락을 잘라낸 그녀는 곧바로 샤워기에 물을 틀고는 자신의 몸을 적시기 시작했다.

나는 다행이라고 생각하고는 또 다시 그녀의 손에 이끌려 충실하게 그녀의 몸을 씻겨 내렸다. 그것으로 나는 그녀에게 닥친 슬픔까지도 모조리 씻어 내릴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랬다.

그런데...

그런데...

그때 내게 비극이 다가왔다.

긴 시간동안 그녀의 몸을 닦아 내리던 내 몸이 이제는 거의 막바지에 이르고 있었던 것이다. 물로 씻겨 내려간 내 일부분들이 다시 내게 돌아오지 않는 이상 난 이제 더 이상 형태를 유지할 수가 없게 되어 버렸다. 그리고 그녀 또한 그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그녀는 나를 손에 쥔 채 오랫동안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한없이 슬픈 표정을 또 다시 짓고 있었다.

 


나의 마음도 너무나 아팠다.

이제 그녀와 나의 이별의 순간이 다가온 것이다. 나는 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현실의 벽은 어쩔 수 없는 것이다. 난 닳아 없어지는 비누고 그녀는 너무나 아름다운 살아있는 여자였던 것이다.

내 임무는 그렇게 다했고 난 이제 물거품이 되어 인어공주처럼 사라질 순간이 온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끝까지 나에 대한 배려를 잊지 않았다. 그녀는 성격처럼 알뜰하게 나의 몸을 끝까지 사용해주었던 것이다. 얼마나 아름다운 그녀인가? 그리고 얼마나 비누를 사랑하는 요정인가?

나는 그렇게 그녀의 알뜰하고 집요한 사랑으로 내 최후의 임무를 마치고 하수구멍 속으로 마지막 일부분까지 모두 소용돌이쳐 집어넣어 버렸다.

긴 하수도의 관을 통과해 내려가면서 나는 생각한다.

이제 그녀는 새로운 비누를 쓰게 될 것이다. 내 자리는 안타깝지만 이제 다른 비누가 차지하게 될 것이다. 아마도 내 생각에는 바로 어젯밤 통화를 했던 그 지방 덩어리 가득한 놈팽이가 아닐까 생각한다. 그건... 나 역시 그랬었으니까.

비누의 요정이여, 안녕...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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