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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로운 영화관

캐리(Carrie, 1976) - 강렬한 피의 이미지

by 멀티공작소 2011. 8.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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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더운 여름이고 보니 공포 영화의 서늘한 긴장이 그리워질 즈음, 문득 예전에 봤던 브라이언 드 팔마 감독의 <캐리(Carrie)> 가 떠올라 다시 보게 되었다.

스티븐 킹의 원작 소설인 <캐리>는 소설로 읽어 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영화로 본 이미지들이 기억에 많이 남은, 또 개인적으로 이제까지 보았던 호러 무비 중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공교롭게도 이것도 역시 스티븐 킹의 소설이 원작인- <샤이닝(The shining)>과 함께 최고로 여기는 작품이다.

1976년 작. 너무나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 다시 보게 된 <캐리>는 어떤 느낌일까?

역시 다시 보아도 영화 <캐리>는 독특하고 인상적인 호러 영화임에 분명 하다고 느낀다.

 

 


영화가 시작되면 카메라는 은밀한 (물론 남자의 시각으로 봤을 때다) 느낌이 베어 나오는 여고생들의 탈의실과 샤워룸을 서정적인 음악과 함께 슬로우 모션으로 흐른다. 여고생들은 자신들의 젊은 에너지를 분출시키듯 웃고, 떠들면서 그곳을 뛰어 다닌다. 그리고 카메라는 드디어 주인공 캐리의 모습을 비춘다.


학교 샤워 실에서 샤워를 하던 이 사춘기 소녀는 자신의 몸에서 흐르는 피를 보고 끔찍한 공포를 느낀다. 뒤늦게 찾아온 초경.
풋풋하던 샤워실의 느낌은 곧 캐리의 초경으로 피가 터져 나오면서 순식간에 공포스런 분위기로 전환된다. 소녀는 자신의 생리적 현상을 전혀 알지 못했고, 체육 교사의 배려로 간신히 진정한다. 그리고 초경과 함께 찾아온 기묘한 능력. 흔히들 염력이라고 부르는 이 능력은 생각만으로 사물을 움직일 수 있는 능력이다. 그런데 이 두 가지 상황은 곧 소녀에게 끔찍한 경험을 더 하게 된다. 인간은 결국 주위 환경에 영향을 받으며 반응할 수 밖에 없는 나약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샤워 중에 생리혈을 보게 된 캐리는 몸에 상처가 난 것으로 착각해 공포에 떨고)


스티븐 킹의 소설을 영상으로 옮긴 브라이언 드팔마 감독은 영화 전체에서 피의 이미지를 강하게 각인 시키는데 주력한다. 그리고 영화에서 피의 이미지는 캐리의 엄마로 인해 철저하게 죄악시 되어 묘사된다. 영화는 첫 장면에서부터 감독의 그러한 의도를 전면에 내세운 것이다.

 

그런데 이 첫 장면에서 사실 무섭게 묘사된 것은 캐리의 초경에 의한 피의 이미지도 있지만 그것을 대하는 동년배 여학생들의 반응이다. 그들은 여성의 생리라는 것을 모른 채 피를 보고 공포에 떠는 캐리에게 탐폰과 생리대를 집어 던지며 그녀를 비웃고, 괴롭힌다. 요새 말로 캐리는 바로 학교에서 왕따 여고생인 것이다. 이 집단 따돌림이 일어나는 일련의 상황이 영화를 더욱 긴장감 있게 만들고 벌어지는 상황의 원인을 제공하는 것이다.

 

 

(▲독실함을 넘어서 광신적인 캐리의 엄마는 주위 모든 사람과의 관계를 죄악시하고 캐리에게 자신의 생각에 따르기를 딸에게 강요한다)

 

(▲타미는 여자 친구의 '수'의 부탁으로 캐리에게 파티의 파트너가 되기를 부탁 하는데)

 

(▲캐리에게 유일하게 친근한 접근으로 도움을 주는 체육 교사)                    

 

이제 서서히 캐리는 자신의 변화를 원한다. 성장하는 이들이 모두 그러하듯 그녀는 자신이 누려야 할 것들을 찾고 싶은 것이다. 그런데 이런 캐리에게 끔찍한 장애물이 다가온다. 학교라는 울타리에서 만들어지는 소속 집단의 악의적 대우다. 동성의 동년배들은 그녀를 철저하게 유린시킬 장치를 마련한다. 그리고 파티장에서 실현한다. 또 한번 피가 쏟아지고 이제 캐리는 참지 않는다. 그렇게 즐겁고, 유쾌하고 일면 사랑스럽기까지 했던 파티장은 순식간에 살육의 지옥으로 변하고 만다.

 

스플래터 무비는 아니지만 영화 속에서 피의 이미지는 전체를 강렬하게 지배하고 있다. 피에서 시작해서 피로 끝나는 이 영화는 그렇게 사람이 피를 접하면서 갖게 되는 공포와 연민과 분노 등을 따라가 보여 준다.

<캐리>는 앞서 언급한대로 꽤 오래 전에 봤었던 영화인데도 이번에 다시 보면서 새삼 새로운 느낌을 받는다. 그 사이 수많은 호러 물을 접한 까닭도 있고 어느 정도 내용도 기억하는지라 예전과 같은 처음의 공포를 느끼지는 못했지만 이 영화 캐리는 분명 거칠게 잘 만든(?) 호러 영화라는 것이다.

처음 봤을 때 후반부의 깜짝 쇼를 전혀 예상치 못해 엄청 놀랐던 기억이 인상적인 것도 있지만 다시 본 <캐리>는 굉장히 비주얼의 설계가 잘 이뤄져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우선 캐리와 엄마가 살고 있는 집 내부 장면들의 조명 설정과 미장센이 인상적인 그림으로 온다. 마지막 캐리 엄마의 죽음도 의미심장 하다. (영화를 보면 알 수 있는-)


다른 영화들에 비해 조촐한 엔딩 크레딧을 보면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굉장히 저예산으로 만들어진 듯한 영화임에도 심리적인 공포물로서 과도하게 설명적이지도 않고, 선명한 의미의 이미지를 과격한 몽타주(라스트 파티장의 몽타주를 본다면)로 거칠게 편집한 수작으로 느껴진다. 또한 원작 소설과 비교해 보아도 여러 가지 형식적인 시도를 했던 소설에 비해 영화가 훨씬 더 호러 물로서의 이미지는 강렬하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든다.

 

 

 

 (▲캐리와 엄마의 '최후의 만찬' 그림 앞에서의 식사 시간. 다가올 비극의 복선일까?)

 

(▲파티에서 파티의 여왕으로 선출된 캐리의 행복한 모습. 이 모든 것이 사실은 음모로 진행 되는 것인데...)

 


 

 


그 외 개인적으로 인상적인 몇 가지가 있다면,

주인공 캐리의 역할을 연기한 씨씨 스페이식의 그 튀어 나올 듯한 눈으로 보여주는 연기는 정말 압권이다. 이 영화에서의 캐리라는 캐릭터의 이미지 자체가 상처받은 동물 같은 모습이기에 씨씨 스페이식의 갸냘프고, 어딘가 병적인 이미지와 그녀의 연기가 잘 매치되는 모습이 아이러니하게 영화를 더욱 공포스럽게 만든다.  

그리고 음악.

흔히 공포 영화에 덧입혀지는 음악은 어딘가 모르게 과잉이라는 느낌이 들 정도로 짜증이 날 때가 있는데 <캐리>에서는 그런 것이 느껴지지 않아서 좋다. 오히려 이 영화에서는 음악의 몽타주로 분위기의 전환을 도와 주고 긴장을 더해 주는 느낌을 준다는 것이 마음에 든다.

끝으로 간단한 아쉬움 하나를 든다면 스토리 상으로 동성 친구인 '수'에 대한 묘사다.
소설에서는 수와 캐리의 관계의 정도라든가, 수가 캐리에게 느끼는 연민이 설정되어 묘사되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영화에서는 분량의 문제 때문인지 거의 설정이 되있지 않아 라스트 수가 등장하는 장면에서 어쩌면 좀 의아한 마음이 들 수도 있을 듯 하다.
성장기 소녀의 이야기에서 -장르가 무엇이든- 동년 세대의 주인공에 대한 느낌과 정서가 이 영화에서는 오로지 왕따로만 그려져 있어 공포라는 장르상 그런 선택을 한 것이었겠지만 폭넓은 시각의 부제는 어쩐지 좀 아쉬운 느낌이 든다...


P. S.

영화 <캐리>를 제대로 감상하려면,

주위의 불을 끄고, 의자에 비스듬히 기대어 앉아 캐리라는 인물에게 집중하면서 스토리를 따라가 주면 된다. 그러면 아마도 조금씩 파고 드는 스산한 긴장감이 마지막에는 깜짝 놀라는 하나의 장면을 만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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