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올드 앤 굿 무비에서는 1999년작 아메리칸 뷰티에 대해 이야기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어떤 내용?
미국의 평범한 중산층 가정의 가장이며 직장인인 레스터 버냄(케빈 스페이시).
그에게는 부동산 중개업을 하는 캐롤린(아네트 베닝)이라는 아내와 고등학생인 제인(도라 버치)이라는 외동딸이 있습니다.
이렇게 보면 그저 평범한 가정의 평범한 식구들의 평범하게 살아가는 모습이 그려질텐데 실상 이 가정의 분위기는 그렇지가 않습니다.
아내 캐롤린과는 이미 섹스리스에 의미도, 소통도 없는 부부생활을 이어가고 있고, 딸 제인과는 제인의 10대 소녀 특유의 냉소적인 기질로 대화도 없고 서로 말도 통하지 않는 그러한 상황.
무엇보다 이런 환경 속에서 40대의 레스터 자신이 의욕도 없는 하루 하루의 삶이 의미없이 그저 무기력하게 흘러가는 그런 속에서 살고 있다는 것이죠.
그런 그에게 어느 날 우연히 제인의 학교로 딸의 댄스 공연을 보러갔다가 딸의 친구인 안젤라(메나 수바리)를 보게 되고 이때부터 그는 안젤라와의 성적 판타지를 상상하며 아이러니하게 삶의 의욕을 찾기 시작합니다.
다니던 직장도 상사를 협박해 두둑히 연봉과 퇴직금을 받으며 때려쳐 버리고 옆집으로 이사 온 리키(웨스 벤틀리)에게서 구한 대마초를 피우며 안젤라의 맘에 들기 위해 근육을 키우고 딸과 아내 앞에서도 당당하게 굴기 시작하죠.
그런 레스터의 변화에 캐롤린과 제인은 황당해 하고 오히려 반작용을 일으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또 그들 나름대로 자신의 삶의 문제로 힘겨워하고 있는 것이 있었거든요.
이렇게 레스터의 가정과 그들을 중심으로 주변의 여러 인물들이 관계를 맺고 뒤섞여 가면서 영화의 이야기는 흘러 갑니다...
▶오해와 아이러니가 빚은 비극의 시작
영화 속에는 많은 오해와 아이러니가 등장합니다.
특히 리키의 아버지가 리키와 레스터의 관계를 바라볼 때에 그런 상황들이 많이 발생하는데요.
안젤라에게 강한 욕망 느낀 레스터가 근육을 키우기 위해 운동을 시작하면서 벌이는 여러 행동들이 리키와 레스터를 바라보는 리키 아버지의 오해를 불러 일으키게 되고, 리키를 몰카나 찍는 변태로 생각하면서도 야릇하게 끌리면서 결국 그와 어울리게 되는 제인의 아이러니한 행동이 그러하고, 캐롤린의 불륜 행각이 마침 햄버거 가게에서 알바를 하고 있는 레스터에게 발각되는 상황 등등...
영화 속에는 이런 인물들간의 여러 오해와 상황이 빚는 아이러니로 스토리가 점점 파국으로 치닫게 됩니다.
이렇게 오해와 불신이 생기는 이유를 가만 살펴보면 우리가 요즘 흔하게 얘기하는 소통의 부재가 느껴지는데 등장하는 인물들이 하나같이 진심 섞인 언행을 통해 그렇게 쌓여진 오해를 풀어 내려는 노력들은 잘 하지 않는 것 같아요.
아니면 그러한 노력들을 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결국 되돌릴 수 없는 어
떤 선을 넘어 버렸다고 생각했던 것일까요?
인간은 나약한 존재기에 스스로의 능력을 넘어서는 부분이 닥치면 결국 운명이라는 말로 치부해 버릴 때가 많은 것이 사실이지만, 영화 속 인물들을 보면 좀 안타까운 느낌이 들 때가 많습니다.
나의 시각과 다른 사람의 시각이 언제나 다를 수 있음에 관계 속에서 생기는 오해와 불통의 문제는 풀어내지 않고 넘어가기만 하면서 쌓아 두기만 하면 결국... 다다를 곳은 한 곳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세익스피어는 그러한 상황들을 희극적으로 풀어 낼때가 많았던 반면, 이 영화 <아메리칸 뷰티>는 그것을 비극으로 풀어내고 있습니다.
▶비극과 파국으로 치닫는 중산층 가정을 그리다
샘 맨더스 감독이 영화 속에서 그리고 있는 이 평균적인 중산층 가정의 모습이 앞서 언급한 많은 오해와 갈등으로 몰락해 가는 모습은 담담하게 보이면서도 느껴지는 바가 많습니다.
레스터의 가족들과 이웃의 리키의 가족들을 가만 들여다 보면 참으로 공감대가 많이 형성되는 것은 이 영화 속 중산층 가정의 모습이 미국 뿐 아니라 어디서나 통용될 수 있는 보편적 정서가 느껴지도록 보여지고 있기 때문인데요.
사춘기 자녀와의 충돌이나, 또 권태기에 빠진 부부, 이러한 모습은 현재의 우리네 주위에서도 흔하게 볼 수 있는 모습이며, 권위적인 아버지, 가정의 문제에 무력한 어머니, 겉으로는 수긍하지만 속에서는 언제든 반항이 폭발할 것 같은 자식의 모습, 또한 낯익은 모습일 것 입니다.
이러한 문제적 중산층 가정의 모습이 비록 미국 만의, 그리고 과거만의 문제는 아닌 것이 오늘의 현실과도 맞닫아 있는 것이겠죠.
자본주의 사회가 발달하면서 자본과 과학기술은 풍요로워지고 사람의 양적 삶은 팽배해지는 반면, 어쩌면 질적인 삶의 가치는 점차 파괴되고, 사람들간의 관계는 많은 불신으로 몰락해 가는 모습.
아마도 이 영화 속에서 보여지는 가정들의 비극과 파국으로 치닫는 몰락이 그리고자 했던 것은 그런 것이 아니었을까요.
▶당신은... 어떤가요?
영화가 시작되자마자 자신의 무력함을 호소하는 레스터의 모습은 현재를 살아가는 여러 사람들이 느낄 수 있는 무력함과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게 무기력을 말하며 시작한 그가 딸의 친구에게 성적 욕망을 가지면서 에너지를 충전해가는 모습을 보면 그 동기는 불순하게 시작되긴 했지만 사실, 영화가 쭉 흘러가면서 변모하는 레스터의 모습은 어느새 동기는 옅어지고 사람에게 정말로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로 더 무게 중심이 이동해가는 것도 이 영화가 보여주려는 것과 근접해 있는 것 같은데요.
특히 라스트 즈음해서 안젤라와의 에피소드, 그리고 그녀와의 마지막 대화를 가만히 보면 그 시퀀스 속에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많은 테마들이 함축적으로 들어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듭니다.
안젤라가 대화 말미에 묻죠.
『 "아저씨는 어떤 가요? (How are you?) "
레스터는 잠시 생각해보고는 답합니다.
"정말로 오랜만에 듣는 질문이구나.... 난 아주 행복해."
(It's been a long time since anybody asked me that.... I'm great.) 』
하지만 그런 깨달음 즈음에 뒤통수치는 한방의 아이러니가 또한 이 영화의 한수라고도 할 수 있을 것 같군요.
영화를 보면서 위의 안젤라의 질문이 저에게는 좀 의미심장하게 와 닿았습니다. 그 다음 레스터의 대답도 그렇고요.
요즘 자신이 누군가에게 저런 질문을 받을 때가 있었던가? 그리고 나는 어떤가?
영화 <아메리칸 뷰티>는 이러한 사람과 그 관계에 대한 성찰이 돋보이는 영화입니다.
단순히 중산층 가정의 몰락을 통해 비판 의식만을 드러내는 것이 아닌 인간에 대한 삶과 죽음의 의미까지 확장이 되어가는 스토리죠.
이 영화를 끝까지 보게 된 후 자신의 지금 서 있는 곳이 어디인가를 한번 생각해 보게 됩니다. 그리고 묻습니다.
"당신은 어떤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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